새해에도

보름만에 맑은 정신이 드신 장인을 보다. 그저 무덤덤하게 던지시는 ‘왔어!’라는 인사말에서 평소의 장인을 만나다.

두루 사람들에게 살갑지 못한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장인과 나는 그리 긴 말을 나누고 살지 않았다. 덤덤히 고만한 간격과 거리에서 서로 있는 것만으로 안심하고 살았다.

그런 장인이 보름 전 수술을 받은 후 정신이 다소 오락가락했다. 때론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나를 맞기도 했지만 내게 낯설게 긴 말을 건네거나 터무니없이 살갑게 다가 오시기도 했다.

병원에서 nursing home으로 옮겨서는 그 오락가락하는 기미가 조금 더 심해져 아내와 나는 모처럼 진지한 부부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해 마지막 날에 장인의 오줌을 받아내고, 새해 첫 날 간호원을 도와 장인의 기저귀를 갈며 새삼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새해 첫 날 오후에 nursing home에서 다시 긴급환자가 되어 병원으로 옮기셨던 장인이 만 이틀만에 평소의 그로 돌아왔다.

음식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인 후 새해 첫 날이면 내 손으로 만두 빚어 부모님과 처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다 한 분 먼저 가시고 한 분은 병원에 누워 계신 올 정월 초하루, 만두 빚을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아직 맑은 정신으로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 보시는 내 부모님들을 위해 정월 초하루 아침 아내는 동네 호텔 브런치 모임 자리를 마련했었다. 노인들은 몹시 좋아하셨다.

부모님을 모셔다 드린 후,  장인을 다시 찾았을 때만 하여도 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 했었지만 염려할 지경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 다시 병원을 찾게 된 장인이었다.

오늘, 장인이 무덤덤하게 던지신 ‘왔어!’라는 한마디에 그간에 쌓인 피로가 몰려 왔다.

바라기는 새해에도 내 부모님과 장인 뿐만 아니라 나와 그저 무덤덤하게 눈빛 나누던 모든 이들이 그저 그 자리에서 이제껏 처럼 딱 고만한 간격과 거리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한 해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