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다가 곧 다가 올 가게 이사 준비 등등, 오늘은 밀린 서류 정리를 해 볼 요량이었다.
이른 아침, 홀로 계시는 장인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은 아주 간단했다. ‘넘어졌어. 못 일어나.’
그렇게 우리 부부는 온종일 장인과 함께 했다. 장인은 몇 번이고 내게 말했다. ‘거기 그 봉투 엊저녁에 김서방 줄려고… 잊지 말고 가져 가!’
뭐라고 딱 표현 할 길 없는 어수선한 하루가 저무는 순간,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꺼내 읽은 글 하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낚시질 할 때마다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나는 낚시에 대해선 솜씨도 있고, 또 많은 동료 낚시꾼들처럼 낚시에 대한 본능적인 직관 같은 것이 있어서 때때로 그 본능적인 직관이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항상 낚시를 하고 나면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명의 첫 햇살처럼 넌즈시 계시처럼 다가온다. 내게는 분명 하등동물과 같은 본능적인 직관이 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더 인간 답거나 현명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낚시꾼에서 멀어져 갔고, 이제는 낚시꾼이 아니다.
I have found repeatedly, of late years, that I cannot fish without falling a little in self-respect. I have tried it again and again. I have skill at it, and, like many of my fellows, a certain instinct for it, which revives from time to time, but always when I have done I feel that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I had not fished. I think that I do not mistake. It is a faint intimation, yet so are the first streaks of morning. There is unquestionably this instinct in me which belongs to the lower orders of creation; yet with every year I am less a fisherman, though without more humanity or even wisdom; at present I am no fisherman at all.
그래, 사람은 모두 한땐 솜씨 좋은 낚시꾼이었던 시절이 있을 터이고, 또 언젠가는 낚시질 자체가 허무해 지는 시절을 맞기 마련이다.
시인 강은교의 <월든> 번역은 진짜 월척이다. 세월은 시인에게도 비껴가지 않았을 듯.
이미 낚시꾼이 아니어도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장인은 아직 괜찮다. 나이 들어 현명해 지지는 못할 지 언정 사람다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