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Newark에서 세탁소를 처음 열던 날, 아버지가 내게 던지셨던 말이다. ‘이 곳 이름이 Newark이니 New Ark이구나. 이 곳이 네 삶의 새 방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느새 서른 해 훌쩍 넘긴 저쪽 세월 이야기가 되었다.

이즈음 나는 그 세월 동안 자주 지나치면서도 알지 못했던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찾아 산책을 즐기곤 한다.

평생 운동 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내가 새삼스레 운동으로 하는 산책은 아니다. 깜작할 사이에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서서 지난 시간들을 다시 만나기고 하거니와, 때론 나와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다가 올 시간들과 언젠가 만나게 될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산책을 하며 만나는 시간들은 아름답고 고요한 풍광들로 하여 감사로 휘감길 때가 많다. 하여 산책은 오늘 내 삶을 기름지게 한다.

오늘 아침, Newark 저수지 길을 걸으며 떠오른 오래 전 아버지의 기원 – 그저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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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에

최근에 본 일본 영화 Departures. 십여 년 전 영화이건만 내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무릇 모든 삶이 존엄하 듯, 모든 죽음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 내 평소 생각이다. 그런 내게 영화는 죽음을 존엄하게 만드는 것은 산 자의 몫이라는 강한 울림을 주었다. 영화는 또한 죽음을 존엄하게 기억하는 산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존엄을 일깨워 주었다.

직업상 신분계급이 여전히 남아있는 일본사회에서 주검을 다루는 염습사(殮襲師)는 여전히 천대받는 직업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전 첼로리스트였던 주인공의 현 직업이 바로 염습사였고, 영화는 그가 첼로리스트보다 더욱 멋지게 죽음과 삶의 존엄을 연주하는 염습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영화의 울림은 잔잔하게 제법 오래 동안 내게 머물렀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을 받던 중 투신하여 떠난 전직 기무사 군인의 주검을 두고 제 배 채우려는 정치쇼를 벌리는 일단의 무리들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다. 오늘 그들의 직업이란 일본사회에서 한 때 천한 직업으로 괄시 받았다던 염습사(殮襲師)보다 못하다.

그들의 삶이란 단지 냄새나는 주검일 뿐, 존엄과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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