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어느새 맞은 올해의 마지막 일요일 밤, 간만에 나와 마주해 앉아 본다.

지난 두어 주 동안 장인 누워 계시는 병원을 오가는 길, 어느 순간 문득 아내에게 던진 말이 있었다. ‘행여 내가 아파 눕거든 당신이나 아이들이나 딱 두 번만 찾아오셔! 병원을 찾는 첫 날과 퇴원하는 날 아니면 그냥 가버린 날, 그렇게 딱 두번 만. 나중에 내가 딴 소리하더라도 듣지말고…’ 이 말은 오래된 내 진심이다.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도 이미 웃으며 던졌던 말이다.

이즈음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많다. 장인과 부모님 특히 내 아버님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게다가 올해가 다 저물어 가는 때이고 보니 그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아내가 주일예배에 참석한 시간, 모처럼 즐긴 산책길에서 떠올린 ‘홍목사의 잡기장’에서 읽었던 글 한 줄. “늙으면 외롭게 사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홍목사, 그와 내가 인생 길에서 함께 했던 시간은 고작 채 이년을 채우지 못한 세월이었다만 그는 내 평생 잊지못할 선생 가운데 하나이자 벗이자 감히 말하건대 신앙의 동지이다.

나 보다 무려 열 살이나 위인 그가 연말 소식을 이렇게 전해왔다. “우린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되었네요….” 그렇게 시작되는 편지였다.

나는 아내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 양반이 이젠 나하고 맞먹으실려고 하네! 내가 왜 함께 늙어? 난 아직 청춘인데!”

오늘 산책길에서 마주 친 내게 내가 던진 말, “그래, 이젠 자네도 진짜 익숙해질 나이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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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상태

모처럼 누린 사흘 연휴도 끝나가는 시간이다. 사흘 동안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일들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사흘 연휴를 맞아 미리 계획했던 일들은 그저 집적거리만 했을 뿐 마무리된 일들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연휴를 맞기 직전 맞은 돌발적 상황들에 대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은 그럭저럭 잘 해낸 것도 같다.

일테면 장인 어른의 수술과 회복 중에 다시 맞게 된 중환자실 이전 과정이랄지, 이젠 어리광 단계에 들어 선 내 아버님과 함께 한 시간이랄지, 오랜만에 긴 시간을 함께하는 딸아이와의 시간 등을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연휴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름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일들과 코 앞에 다가온 가게 이전에 대한  계획을 마무리 하는 일 등은 관련 자료와 서류 등을 꺼내만 놓은 채 눈길 조차 보내지 못하고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연휴가 끝나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피로가 온 몸을 덮쳐 낮에 잠시 졸다가 머리 속에 떠오른 말 ‘임계상태’였다.

물도 아니고 수증기도 아닌 상태, 부글부글 뭔가 터질 듯 한데 그냥 이대로 다시 식어 버릴 것 같은 상태, 그렇게 시작된 생각의 연속으로 뜻 맞는 벗들에게 편지 한 장 띄웠다.

비단 내 개인적 삶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임계상태’는 아닐게라는 생각에서였다.

부모님, 아들 며느리, 딸 그리고 형제들과 조카들 올망졸망한 조카손주들 모두 모여 나눈 성탄 만찬은 풍성했다.

먼저 만찬 자리를 뜬 우리 부부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단 몇 분 사이에도  80년 넘는 세월을 맘대로 오고 가며 오늘 일인 양 웅얼거리시는 장인을 뵙고 돌아온 늦은 밤, 내 이메일함에 담긴 성탄 카드 한 장.

My dear friend,

As usual, you are “Right On!”

I am thankful for you, the cleaner, who cleans my clothes.

I am thankful for you, the person, and your dear wife, too, for you are good, kind, thoughtful persons, making a better world,…one interaction, one letter,…at a time.

I am thankful for your letters, which make me think and smile, and think again.

Blessings,

가게 손님 한 분이 보낸 메세지에 연휴가 끝났음을 감사한다.

그래, 임계상태란 무릇 일상일지도 모른다.

연휴에

연휴를 맞는 아침은 늘 이르다.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는 까닭을 모르겠다. 이른 아침,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 한 장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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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화요일이어서 많은 생각 끝에 성탄절 이브인 월요일에도 세탁소 문을 닫기로 했답니다. 모처럼 사흘 연휴를 갖게 되었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런 저런 걱정이나 잡념없이 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시간을 보내려 한답니다.

아내와 나, 아들 며느리와 딸과는 어제 저녁 일찌감치 성탄 기념 저녁식사를  함께 했답니다.

지난 주에 홀로 사시는 장인이 아침에 일어나다 넘어지셔서 응급환자로 병원을 찾게 되었답니다. 크리스티아나 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이신 장인 병실에서 함께 만난 아이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제가 했던 말이랍니다.  ‘오늘 저녁식사가 올해 우리 가족 성탄 만찬이다’라고 말입니다.

어제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문득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랍니다. ‘걱정의 대부분은 그저 내 머리 속 생각 뿐이었군!’

수술 후 회복 중이신 장인이나, 그런 장인 소식을 저희 부부 입을 통해 들으시는 장인보다 더 나이 많으신 제 부모님이나,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젊디 젊은 내 아이들이나,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며 서로를 생각하는 가족들을 보며 든 제 생각이었답니다.

한 해가 저무는 때입니다.

부질없는 머리 속 걱정을 내려 놓고 감사로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입니다만 당신에게도 덕이 된다면.

당신의 세탁소에서


 

As Christmas falls on Tuesday this year, after much thought, I’ve decided to close the cleaners on Monday, Christmas Eve. So I could have three days off. Be that as it may, I don’t have any special plans. I intend to spend time with gratitude for taking a rest without this concern or that or distracting thoughts.

My family, my wife, son, daughter-in-law, daughter and I, had an early Christmas dinner together last night.

Last week, my father-in-law, who lives by himself, fell down in the morning and was taken to the hospital as an emergency patient. After visiting him, who was recovering from an operation at the Christiana Hospital, we had dinner together and I told them, “This is our family Christmas dinner this year.”

While I was listening to them at the table, one thought came across my mind: “Most of the concerns were just the thoughts in my mind!”

My father-in-law, who is recovering from the operation, my parents who are senior to my father-in-law and hear about him from my wife and me, my son, daughter-in-law and daughter who look at their grandparents, every one of them without distinction cares about one another and does their part at their place. That’s a family. The thought came to my mind, while I was looking at my family.

This year is drawing to a close.

I wish that all of us will put futile concerns in our heads aside and close the year with gratitude.

Of course, these are the words which I want to speak to myself. But, I hope that they will be beneficial to you, too.

From your cleaners.

장인의 카드

연말에다가 곧 다가 올 가게 이사 준비 등등, 오늘은 밀린 서류 정리를 해 볼 요량이었다.

이른 아침, 홀로 계시는 장인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은 아주 간단했다. ‘넘어졌어. 못 일어나.’

그렇게 우리 부부는 온종일 장인과 함께 했다. 장인은 몇 번이고 내게 말했다. ‘거기 그 봉투 엊저녁에 김서방 줄려고… 잊지 말고 가져 가!’

뭐라고 딱 표현 할 길 없는 어수선한 하루가 저무는 순간,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꺼내 읽은 글 하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낚시질 할 때마다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나는 낚시에 대해선 솜씨도 있고, 또 많은 동료 낚시꾼들처럼 낚시에 대한 본능적인 직관 같은 것이 있어서 때때로 그 본능적인 직관이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항상 낚시를 하고 나면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명의 첫 햇살처럼 넌즈시 계시처럼 다가온다. 내게는 분명 하등동물과 같은 본능적인 직관이 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더 인간 답거나 현명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낚시꾼에서 멀어져 갔고, 이제는 낚시꾼이 아니다.

I have found repeatedly, of late years, that I cannot fish without falling a little in self-respect. I have tried it again and again. I have skill at it, and, like many of my fellows, a certain instinct for it, which revives from time to time, but always when I have done I feel that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I had not fished. I think that I do not mistake. It is a faint intimation, yet so are the first streaks of morning. There is unquestionably this instinct in me which belongs to the lower orders of creation; yet with every year I am less a fisherman, though without more humanity or even wisdom; at present I am no fisherman at all.

그래, 사람은 모두 한땐 솜씨 좋은 낚시꾼이었던 시절이 있을 터이고, 또 언젠가는 낚시질 자체가 허무해 지는 시절을 맞기 마련이다.

시인 강은교의 <월든> 번역은 진짜 월척이다. 세월은 시인에게도 비껴가지 않았을 듯.

이미 낚시꾼이 아니어도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장인은 아직 괜찮다. 나이 들어 현명해 지지는 못할 지 언정 사람다움으로.

산책

Newark에서 세탁소를 처음 열던 날, 아버지가 내게 던지셨던 말이다. ‘이 곳 이름이 Newark이니 New Ark이구나. 이 곳이 네 삶의 새 방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느새 서른 해 훌쩍 넘긴 저쪽 세월 이야기가 되었다.

이즈음 나는 그 세월 동안 자주 지나치면서도 알지 못했던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찾아 산책을 즐기곤 한다.

평생 운동 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내가 새삼스레 운동으로 하는 산책은 아니다. 깜작할 사이에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서서 지난 시간들을 다시 만나기고 하거니와, 때론 나와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다가 올 시간들과 언젠가 만나게 될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산책을 하며 만나는 시간들은 아름답고 고요한 풍광들로 하여 감사로 휘감길 때가 많다. 하여 산책은 오늘 내 삶을 기름지게 한다.

오늘 아침, Newark 저수지 길을 걸으며 떠오른 오래 전 아버지의 기원 – 그저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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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에

최근에 본 일본 영화 Departures. 십여 년 전 영화이건만 내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무릇 모든 삶이 존엄하 듯, 모든 죽음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 내 평소 생각이다. 그런 내게 영화는 죽음을 존엄하게 만드는 것은 산 자의 몫이라는 강한 울림을 주었다. 영화는 또한 죽음을 존엄하게 기억하는 산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존엄을 일깨워 주었다.

직업상 신분계급이 여전히 남아있는 일본사회에서 주검을 다루는 염습사(殮襲師)는 여전히 천대받는 직업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전 첼로리스트였던 주인공의 현 직업이 바로 염습사였고, 영화는 그가 첼로리스트보다 더욱 멋지게 죽음과 삶의 존엄을 연주하는 염습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영화의 울림은 잔잔하게 제법 오래 동안 내게 머물렀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을 받던 중 투신하여 떠난 전직 기무사 군인의 주검을 두고 제 배 채우려는 정치쇼를 벌리는 일단의 무리들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다. 오늘 그들의 직업이란 일본사회에서 한 때 천한 직업으로 괄시 받았다던 염습사(殮襲師)보다 못하다.

그들의 삶이란 단지 냄새나는 주검일 뿐, 존엄과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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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에

어릴 적 어머니는 말했다. “니 놈은 어찌 그리 뻐스만 타면 자냐!”.

“이젠 생각이 나지 않아서…”라는 말씀을 입에 다신 어머니는 이즈음도 뻐스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고, 아범은 뻐스만 타면 졸았어!’라고 하신다.

버스를 뻐스라 하면 늙은이겠지만 어찌하리, 나 역시 이미 늙은이이고 내 입엔 뻐스가 베인 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내가 함께 뻐스를 타곤 했던 기억은 어머니의 친정 곧 내 외가 나들이를 했을 때였다. 내가 혼자서 외가를 찾곤 했던 첫 무렵이 국민학교 오륙 학년 쯤일 터이니 그 이전의 이야기일일 게다.

당시 뻐스는 차체 벽면을 따라 길게 평상의자가 놓여 있었고, 대다수의 승객들은 차안에 서서 가는 형태였다. 신촌에서 한남동을 가는 것이었는데 서울역 어간에서 한 번 갈아 타야만 했었다.

그런데 나는 서서 가거나 앉아 가거나 상관없이 뻐스만 타면 잤단다. 그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그리고 오늘, 나는 동네 백화점 food court에 앉아 또 졸았다. 단지 food court에서만이 아니었다. 샤핑하는 아내를 기다리는 사이 사이 간의 의자에 앉기만 하면 졸았다.

“아이고, 또 주무셨어요?” 아내의 비아냥 반 물음에 난 내게 묻는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그 때도  난 느꼈을까?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나른한 잠에서 오는 행복함을.

그리고 문득 눈에 들어 온 백화점 천장 밖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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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자

단언컨대 내 장모는 여전히 꽃이다. 오늘도 그녀를 그렇게 기억하는 이들이 있음으로.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 이홍 목사님의 기억이 그러하였고, 그 기억에 고개 끄덕이는 공동체들로 하여 오늘 장모는 여전히 꽃이 되었다.

장모 돌아가신 지 두 해, 이홍목사님과 교회는 잊지 않고 이 주기 추도예배를 드렸다. 우리 부부는 목사님과 그 교회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예배에 함께 했다.

사실 돌아가신 장모나 점점 기력이 쇠하여 지는 장인에게나 딸인 아내나 사위인 나보다 그 교회 식구들이 더욱 가까운 가족이어서 우린 그저 부끄럽고 미안해야 마땅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까닭은 잊혀진다는 것 아닐까?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웠던 여인, 미운 사람을 안고 살지 않았던 여인으로 기억하는, 그리고 그런 여인과 함께 했던 세월에 감사하는 이들이 있는 한, 내 장모는 여전히 꽃다운 삶이다.

살아 생전 장모가 유일하게 미워했던 사람이 장인이었다는 나와 동갑내기 이홍목사님의 지극히 인간적인 우스개에 이목사를 향한 내 존경은 더해졌다.

예배 후 찾은 장모 계신 곳. 내 어머니와 아버지, 장인, 아내와 나의 자리가 모두 예약되어 있는 곳을 두루 둘러보다.

단 한 사람만에게라도 꽃같은 삶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삶이었으면…

오늘 하루의 삶에 감사를 느끼게 해 준 이홍목사님과 침례교회 식구들을 생각하며.

특별히 장모의 그림자를 아름답게 수놓아 주신 이목사님께 감사를.

12/ 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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