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미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그녀는 실제 미술 선생으로 오랜 교단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이다.

그녀의 남편 역시 미술 선생이었고 우리 두 아이 고등학교 시절의 미술선생님이기도 하다. 내 눈에 미술에는 영 재간이 없어 보이는 우리 아이들을 많이 부추겨 주신 선생님이다. 그 시절 내 아이들이 그린 소묘들은 지금도 내 방에 걸려 있다. 내 아이들 만큼도 못한 내 눈에는 그게 참 대견해서이다.

다시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제 70대인 미술선생님은 우리들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늘 화장기 없는 민낯이다. 까맣던 머리칼들은 이젠 백발이지만, 한번도 그녀가 염색을 한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런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이 아름답다. 내가 어릴 적 한국에서 미모로 이름 꽤나 날리던 여배우의 친 언니라는 수식어는 그녀에게 가당치도 않은 아름다움이다.

어제 낮에 그녀가 내 가게에 들렸었다. 그녀는 최근 십 수년 만에 방문했던 한국에 대한 이야기들과 여기 사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말했고, 우리 부부는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차이와 다름과 낯설음 등에 대해 더욱 강조했던 것은 오히려 내 쪽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엊저녁에 필라델피아 작은 소극장 Painted Bride Art Center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필라델피아 한국문화 재단과 남부 뉴저지 한국학교가 공동 주관한 Heart of Korea라는 연주회 공연에서였다. 우리 부부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였다.

집단 북 치기 공연을 시작으로 한복 패션 쇼, 태평무, 홀로 큰 북 치기, 판소리, 진도 북 춤, 가야금, 칼춤, 사물놀이 등이 이어졌는데, 역시 우리넨 흥으로 타고 났나 보다.

그 곳에서 생각지 않던 얼굴들도 몇 만났다. 그 중 하나 이즈음 한국 현대사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었다. ‘남편은 어쩌고 왜 혼자시냐?’는 내 물음에 그녀가 한 대답이었다. ‘함께 하려 했는데 남편은 피츠버그에서 일어난 유태계 참사 추모하느랴 그 곳에 가서요….’

그랬다. 역사 선생님과  미술 선생님의 남편은 유럽계, 내 며늘 아이는 아프리카계… 우린 모두 이따금이지만 한국계로 서로 통한다. 어쩜 흥으로… 모든 길들이 서로 만나곤 헤어지듯이.

공연이라 카메라를 들고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어, 오늘 오후 동네 공원길을 걸으며 어제 생각으로 길들을 담았다.

이제껏 걸어 왔고, 지금 걷고 있고, 언제 일지 모를 그날까지 걸으며 만났거나 만나거나 만날 모든 사람과 사물들을 위하여

10/2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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