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템

크게 음미할 틈도 없이 숨가쁘게 책장을 넘겼다. 손에 잡힐 듯 엊그제 같은 세월에 대한 기록이어서 일게다. 역사의 기록, 그 행간에 숨어 있는 숱한 얼굴들과 어느 곳에도 남겨지지 않을 이름들이 숱하게 스쳐 갔다.

돌이켜 우린 – 아니, 내 세대는- 참으로 선동적 구호와 함께 살아왔다. 슬로건의 시대였다.

책들을 덮으며 내심 빙그레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구호에 동원되고, 슬로건에 대상이 되었던 , 역사의 기록 그 행간에 이름없이 숨겨진 이들이 끝내 역사의 흐름 그 큰 줄기를 이끌어 나간다는 사실을 다시 득템한 까닭이다.

한국 현대사를 쓴 서중석의 마지막 바램.

<이제 어느 때 보다도 민주주의와 인간존중의 사회, 평화와 통일을 위해 능동적으로 참여해 삼천리 강산을 모든 인간이 더불어 인간답게 사는 땅으로 일구어 내야 하겠다.>

그 바램 역시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는 주인공들의 힘을 믿기 때문일게다.

북한현대사를 지은 이들은 해방 이후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기 까지를 돌아본 후 이런 말을 남긴다.

<이 체제는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간에 인민의 동의 속에 작동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체제가 장기간 존속할 수 있는 요인은 단순히 물리적 강제력이나 교육, 선전과 같은 지배체제의 일방적 메커니즘만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사회문화, 대외관계 등 모든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바야흐로 상호 이해가 절실한 때이다. 더는 구호에 물든 눈으로 내일을 축성하지는 말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