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생각 또는 생각의 틀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더우기 신앙이나 신념이라는 말로 포장된 생각들을 바꾸는 일이란 가히 혁명과 같다. 게다가 노인들의 생각에 이르면 이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된다.

그게 이젠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되었다.

하여 웬만해서는 내 또래나 웃어른들과는 신앙이나 신념에 이르는 주제의 이야기들은 그저 피하고 사는 편이다. 어차피 바꾸지 않을 생각들을 나누고 다투는 일을 토론이라고 포장하더라도 서로 간의 아까운 시간 낭비라는 생각 때문이다.

만나는 이들의 폭이 워낙 좁다보니 나보다 나이 어린 이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적다만, 어쩌다 기회가 있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은 나이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곤 한다.

신앙이라는 면에서는 여전히 내 또래보다 더 중세(中世)에 갇혀 사는 젊은이들도 만날 수 있거니와, 신념에 이르러서도 케케묵은 이념이나 견강부회나 곡학아세의 틀에 갇혀 저 홀로 독야청청인양 목청 높이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건 딱히 나이와 상관 없는 일이다.

어쩜 내 모습이기도 하고.

다만, 이따금 나 홀로 추스려 다잡는 생각 하나. 세상 지고지선 그 절대란 절대 없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사람이나 체제를 절대라는 위치에 올리는 일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니다’라는 그 생각 하나.

철들어 굳어진 그 생각 하나 늙막에 내 고집으로 안고 살아야 할 터. 신앙이나 신념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