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아침 일터로 나가는 길, 한 동안 보지 못하던 아이들 학교 버스를 만난 월요일 아침부터 오늘까지 나흘 동안 찜통 더위가 이어졌다.

오늘 아침도 해는 떠오르면서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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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열기 속 하루를 염려하며 일터 앞에선 내 머리 위로 캐나디언 구스가 이글거리는 태양을 비웃으며 낮게 날아갔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지쳐 돌아온 내게 세상물정에 빠른 뒷뜰 나무는 낙엽을 떨구어 보여준다.

한여름 또 잘 보냈다.

그게 또 대견하여 늦은 밤, 월트 휘트먼의 나의 노래를 읊조린다.

나는 믿는다, 풀 한 잎이 별들의 여정에 못지 않다고,
개미도 똑같이 완전하고, 모래 한 알도, 굴뚝새의 알도,
청개구리도 최고의 걸작이며,
기어오르는 검은 딸기나무가 천국의 응접실을 아름답게 꾸미고,
내 손안의 아주 작은 관절 하나가 온갖 기계를 비웃을 수 있고,
풀 죽은 머리로 어적어적 여물을 먹는 암소가 그 어떤 조각상보다도 낫다고,
생쥐 한 마리가 숱한 이교도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고도 남을 기적이라고.

구월을 기다리며

많이 듣고, 많이 보되 말은 줄이고, 글을 남길 땐 생각을 한번 더 곱씹어 보자는 다짐으로 살기 시작한 일은 근자에 이르러서이다. 나이 들어 늙어 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꼰대’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때문인데, 그게 딱이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흉내라도 내는 연습엔 게으를 일이 아니다.

이즈음 온라인 모임으로 만나는 ‘필라세사모’ 친구들이  9월 말 쯤 한국의 김진향 교수라는 이를 초청해 유펜 대학에서 강연회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다. 늘 그렇듯 모임에 얼굴만 내밀다 마는 나는 이번에도 아무 하는 일 없이 ‘수고들 많으시다’는 인사만 건낼 뿐이다. 게다가 ‘김진향’이라는 이름이 낯선 나는 더욱 뒷전에서 웅크린다.

그러다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팟캐스트 파일과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김진향 선생이  한 강연들을 들었다.

우선 위키 백과에 기록된 김진향 선생에 대한 소개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남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상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경험을 했다.

그에 대한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하는 강연의 주된 내용은 ‘북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하는 그는 이야기를 듣는 이들에게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묻는데 그 물음에는 듣는 이들이 북한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북한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그의 전제에 동의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북한에 대해서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남한에 대해서도 이 점은 같다. 내 유소년과 청년 시절의 추억에 남아 있는 남한과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임에도 나의 잣대는 그 간극을 측량하기엔 너무 작다.

이젠 한반도에서 살아온 세월보다 미국에서 산지가 오래되어 가지만, 나는 여전히 이민자이고 때론 이방인이어서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이 땅 만큼이나 남과 북이 낯 설 때가 있다.

하여, 나는 오늘도 배워야 한다.

또 하나, 이건 내 복이다.

한국 현대사 특히 해방 이후 빨치산 연구를 하신 이선아교수의 강연을 듣게 된 일이다.

아프게 잊혀져 가는 역사와 그 시간 속에서 잊혀져 간 이들을 되뇌어 새기는 일이 결코 쉬운 일 아니다. 그것이 생업이거나 학문적 고집일 때, 나는 그를 존경해야 마땅하다.

비록 온라인 모임에서 듣게 되는 강연 이지만  내가 9월 한달을 기다리는 까닭이다.

예술에

이웃집 코스모스가 활짝 핀 주일 아침에 내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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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저녁, 세탁소 영업을 마친 우리 부부는 Delaware Art Museum엘 갔었답니다.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박물관 관람을 위해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올해로 네 번 째를 맞이하는 Delaware Korean American Festival 행사 준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실 이 행사를 위해 제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내가  매해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답니다. 주말학교인 델라웨어 한국학교에서 한국계 어린 다음세대들을 가르치는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매해 이 행사에 참여합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아내는 자신의 한국 전통 무용 공연을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란 아내의 전통 무용복을 세탁하고 다려주는 일이랍니다.

그 날도 오는 9월 29일,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추수감사절인 추석을 맞아 열리는Delaware Korean American Festival행사 준비 모임에 참석한 것은 아내였고 저는 단지 아내의 운전기사였을 뿐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날 저녁  Delaware Art Museum 입구 hall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예술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어록들이 제 시선을 빼앗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음악이던 미술이던 일반적으로 예술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대해 아주 무식 하리만큼 문외한 입니다. 그러니 예술에 대해 남긴 유명인들의 가르침을 본래 뜻대로 제가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유명한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 의 명언 ‘예술이란 영혼에 붙어있는 일상의 먼지들을 씻어내는 일이다.’ 라는 말도 그 중 하나였답니다.

저는 그 피카소의 말을 몇 번 되 뇌이다가 어느 스님이 남긴 말을 떠올렸습니다.

<행복의 예술은 이 순간에 완전히 만족하는 것입니다. 다른 때나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지 마세요. 참된 행복은 오직 여기 이 순간에 있습니다.>

예술이던 행복이던 뭐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일상 속, 매 순간 순간들을 귀하고 소중하게 맞을 수만 있다면, 그 순간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예술일 터이고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여름도 어느새 끝 무렵 입니다. 일상 속에서 예술을 느끼며 행복을 누리는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Last Friday evening, my wife and I went to the Delaware Art Museum after work. We didn’t go there to see the museum in the evening out of the blue. We went there to participate in the preparatory meeting for the fourth annual Delaware Korean American Festival.

Frankly, I don’t do anything for the festival. But my wife, Chong, has involved in the festival actively every year. She has been participating in it every year with the Korean American children who she has been teaching at the Delaware Korean School, which is a weekend school. As she did last year, she will perform a Korean traditional dance at the festival again this year. All I do is to clean and press her Korean traditional clothes for the dance.

On that day, I was just a driver, and it was my wife who participated in the meeting for the festival which will be held on September 29 in celebration of Chuseok (traditional Korean Thanksgiving day).

That evening, well-known people’s quotes about art, which decorated the wall of the hall at the entrance of the Delaware Art Museum, caught my attention.

Frankly, I don’t know the first thing about the area which is called art, whether music or paintings. So it was hard for me to understand the real meaning of the quotes. One of them was Pablo Picasso’s: “Art washes away from the soul the dust of everyday life.”

While I was reiterating Picasso’s words in my mind a few times, what a Buddhist monk said flashed across my mind: “The art of happiness is to be fully content in this moment. Don’t seek happiness at any other time in any other place. It only lies here in this moment.”

Art or happiness may not be so difficult to catch or feel. If we can meet and value every moment in everyday life preciously, all that we see and hear at that moment may be art and happiness, I think.

Now summer is nearing its end. I wish that you will feel art and enjoy happiness in everyday life in every single day.

From your cleaners.

차이에

다가오는 동네 잔치 준비 모임장소에서 모처럼 만난 A가 B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크게 놀랐다. 내 놀람은 A와 B가 서로 가까이 알고 지낸다는 그 사실 자체에서 오는 것이었다.

A와 나는 30년 넘게 한 동네에서 살고 있지만, B는 다른 동네 사람이다. A와 B는 모두 이민 온 지 사십여 년이 다 된, 그야말로 성실한 삶을 이어온 이제 막 칠순 나이에 들어 선 이들이다.

나는 두 어른들을 선생이라 부르며 존경한다. 그러나 두 양반과 나는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들에서 엇나가는 점들이 많다.

특히 신앙에 대한 관점과 우리들의 모국인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 차이가 극명하다.

A의 관점에서 나는 좌이고, B의 관점에서 나는 우편이다. 때론 셋 사이의 간격은 닿지 못할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그런 A와 B가 서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안 오늘이었다.

때론 생각의 차이란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일까? 그것이 신앙과 사상일지라도.

함께 걸어가야 하는 삶에서.

세월

이즈음 들어 이따금 겪는 일이다.

어쩌다 주일 예배에 참석해 주일학교 아이들 노는 모습에서 내 유년이 떠오른다거나, 활기찬 청소년들을 보며 느닷없이 내 생각이 일천구백 육십 년대 어느 날로 돌아가곤 한다.

어제 결혼식장에서는 나는 일천 구백 팔십 년대 내 이민 초기로 돌아가 있었다.

신랑은 내 아들 녀석의 친구, 부모들은 이민 초기에 만난 오래된 지인들이다. 그 무렵 그들은 갓 신접살림을 차린 싱그러운 젊음이었다.

신랑의 아비는 아들과 새 며느리에게 말했다. “얘들아,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머리에 하얀 세월을 이고 있는 그나 나나 어느새 덕담을 즐길 나이가 되었다.

가족

연 이틀 비가 쏟아진다는 예보에 많이 망설였었다. 오래 전 예약해 놓은 숙박업소 취소 가능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이번 산행에 맞추어 예정 시간에 집에 도착한 딸아이는 그냥 계획대로 산행에 나서자고 했다. 이른 아침 하늘은 꾸물거리고 있었지만 아직 비를 내리지는 않았다. 아들내외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하늘은 우리 가족이 세운 계획과 함께 하는 듯 했다.

21개의 폭포가 있다는 펜실베니아 Ricketts Glen 주립공원 하이킹 코스 거리는 약 7.2 마일.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걷는 재미와 살을 좀 뺏으면 좋겠다 싶은 아들 며느리를 위해 선택한 곳이다.

공원에 도착하기 한 시간여 전부터 하늘은 우리들의 계획보다 일기예보에 충실했다. 비가 간간히  오락가락 하더니만 이내 폭우를 쏟곤 하였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비라도 살 요량으로 상점들을 찾았으나 Pennsyltucky라더니 우리는 이미 켄터키 같은 펜실베니아 산골에 있었다.

때때로 일기예보가 무의미 할 때도 있다. 산행을 시작할 무렵부터 비는 그쳤고 산행을 마칠 때까지 이따금 오락가락 했지만 하이킹하기엔 최적의 날씨였다.

쏟아진 빗물로 계곡 물은 붉은 색을 띄었다. 아내와 며늘아이는 자꾸 뒤쳐졌고 덩달아 아들녀석도 그 무리에 함께 했다. 나는 줄곧 딸아이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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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보다 더 즐거운 시간은 아무렴 먹는 시간이다. 평소 찾지 않았던 특별한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에 더해 횃불 조명을 받으며 낙조에 물들어 가는 강변에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로 배부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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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직장생활, 우리 부부 세탁소 이야기, 할아버지들과 할머니 이야기에서 시작해 곧 있을 중간선거 이야기까지 모처럼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는 오래 이어졌다.

이튿날, 딸아이 집에 데려다 주는 길에 사진 찍기 딱 좋은 작은 정원에서 즐긴 나른한 오후 풍경도 이번 산행에 덧붙여진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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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보다 더 한국음식을 즐겨하는 며늘아이를 위해 선택한 식당은 그야말로 우리 가족을 위한 안성맞춤이었다. 며늘아이는 육개장, 아들과 아내는 설렁탕, 딸아이는 순대국, 나는 선지 해장국에 소주 한 잔, 그리고 덤으로 시킨 콩나물 도가니찜은 더할수 없이 풍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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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하이킹에서 내 시선을 빼앗았던 작은 비나리 돌탑들. 사람들은 누구나 비나리가 있고, 그 비나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뜻으로 정성 들여 탑을 쌓는다. 나나 아내나 아들이나 며느리나 딸이나, 서로 각자의 비나리 돌탑들을 쌓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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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2618A아이들과 헤어지며 함께 쌓은 작은 비나리 돌탑이다. 가을 단풍 들면 다시 산행에 나서자고….

사는 맛

가족을 제외하고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아주 드물다. 가족 이라야 거의 붙어사는 아내와 일주일에 한두차례 찾아 뵙는 노부모님과 장인 어른이 자주 보는 얼굴들이다. 아들 며느리는 많아야 한달에 한번 꼴이나 될까 모르겠는데, 고마운 것은 우리 부부가 원하면 언제든 볼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착하다.

딸아이는 좀 다르다. 일년에 몇차례인지 내가 정확히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볼 수 있는데, 그 회수는 전적으로 딸 아이의 뜻에 달려 있다. 그런 딸아이에 대한 못마땅함으로 내가 궁시렁 거리기라도 할라치면 ‘천상 당신인데 뭔 소리냐’는 아내의 핀잔을 듣곤 한다.

가족 이외에 만나는 한국사람들이라야 일년에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회수로 나가는 한인교회나 이따금 들리곤 하는 한국 식품점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이 전부가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연으로 얽힌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한인 이웃들도 제법 있지만, 그들을 만나는 일엔 딱 내 딸아이를 닮아서 그야말로 내 맘대로이다.

그러다보니 한 달 정도는 가족 이외에 한국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않고 지내는 때가 흔하다.

예외적인 일이 있긴 하다. 지난 수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거의 빠지지 않고 얼굴을 마주하는 한국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필라세사모’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이들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만나기 시작한 모임이다. 그러나 이 모임은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이어서 비록 얼굴을 마주한다 하지만 실제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내 지극히 이기적인 성격 탓이겠는데, 나는 이 모임에서 만나는 이들의 개인사에 대해 참 무지하다. 엊저녁 일만 해도 그랬다. 좀 뒤늦게 이 모임에 함께 하긴 하였지만 벌써 셀 수 없을 만큼 마주했던 얼굴인데 어제서야 그가 하는 일에 대해 물었었다. 아마 다른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그가 학교에 있다는 소리는 얼핏 들어 알곤 있었지만, 역사 그것도 한국사 그 중에 또 현대사 더더구나 해방 이후 한국 전쟁사에 대해 연구한다는 사실을 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살며 이따금 가슴이 쿵쾅거리는 설렘을 만날 때가 있다. 나이 탓인지 이즈음엔 사람을 통해 그런 경험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책을 통해서는 종종 그 즐거움을 누린다. 그런 책들의 편저자들이 이젠 많은 경우 나보다 어린 이들이다. 나보다 윗대들의 생각에서 배우는 기쁨보다 후대들의 생각을 통해 깨치는 맛은 또 다르다.

그런데 이번엔 책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것도 매주 만날 수 있는 후배이다. 순간적으로 그를 졸랐다. 가르침을 달라고…

찬바람 기운이 돌면 그 모임에 참석하는 우리는 이제 그에게서 해방 이후 한국사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다.

이번 주말엔 아들 며느리 그리고 딸아이를 앞세우고 우리 부부는 계곡을 찾아 하이킹을 즐기려 한다.  그날 아이들과 함께 나눌 밥상을 위해 불고기 거리를 장만하여 돌아오는 길목에서 만난 저녁하늘은 아침이었다.

이 사는 맛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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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놀이

업(業)의 성격으로 주중 하루를 쉬는 벗이 낚시 한번 가보자고 제안을 했었다. 주중에 가게를 온종일 비우는 일에 익숙치 않아 머뭇거리는 내게 아내는 흔쾌히 ‘가도 좋다’고 했다. 내심 ‘이 정도의 사치는 누릴 만한 나이가 아닐까?’하는 내 생각이 앞선 탓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 낚시 놀이를 다녀왔다.

애초 낚시놀이를 제안한 C와 나처럼 낚시놀이가 그리 흔치 않은 일인 H와 낚시놀이가 일상이요, 나름 그 방면에 도트인 J와 함께 즐긴 하루였다.

처음 놀이를 제안했던 C는 일행을 위해 모든 준비를 도맡았고, J는 낚시놀이에 필요한 제반도구와 정보와 지식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H와 나는 그 두 사람 덕에 그저 하루를 즐겼다.

올해 일흔 하나가 된  J는 나와 같은 업을 하며 한 동네에서 산지 30년 넘은 오랜 지기이다. 그는 지난 해 현업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홀로 산다. 그렇다 홀로 되어 산다.

사실 내가 J를 가장 최근에 만났던 것은 그가 홀로 되어 살기 전 일이다. 그가 과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리 말수가 많은 이는 아니었다. 그랬던 그의 입이 낚시놀이 하루 길에서  온종일 쉬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그 무엇보다도 말이 많이 고픈 듯 보였다.

밤 늦은 시각, 돌아와 헤어지며 그가 내게 남긴 말이다. ‘언제든 불러, 언제든… 낚시 가고 싶을 때 그냥 전화만 해!’

다시 혼잣말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홀로 사는 삶으로 돌아가는 그를 보며 내가 혼잣말로 해 본 소리이다. ‘가을바람 불면 낚시놀이 한 번 더 해 볼까…’

낚시터에서 만났던 돌고래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래,  J뿐만 아니라 H나 C나 나나, 우리 모두 한땐 고래사냥을 부르며 꿈을 꾸던 때가 있었다.

아니, 꿈을 꾸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젠 조촐한 꿈을 꾸자. 찬바람 불면 내가 먼저 J와 H와, C에게 제안을 하는 꿈을 꾸자. 낚시놀이 한 번 가자고. 그날 다시 J가 온종일 이야기하게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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