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식이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어찌하다보니 운좋게도 오늘 행사의 주인공이신 장광선선생님 곁에 앉게 되었다. 투병 중이신 선생님의 최근 근황이 여러모로 많이 좋아지셨다는 말씀에 내 마음이 좋았다. 무엇보다 느리지만 넉넉히 잡수시는 모습이 참 좋았다.
이러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선생님의 조카내외가 다가와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갈 길 멀고 일도 있어 먼저 일어날께요. 이렇게 유명하신 분인 줄을 미처 몰랐어요. 오늘 저희들이 자랑스러워요.”
오늘, 가족들이 이렇게 유명하신지 미처 몰랐다는 장광선선생님의 평론집 출판 기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멀리 한국에서, LA에서, 시카고에서,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뉴욕에서, 가까이는 필라와 뉴저지 델라웨어에서 한달음에 달려 온 이들이 백여명이었다.
선생님은 스스로 늘 “무식하면서도 용감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셨지만, 오늘 모인 이들은 모두 선생님의 유식과 용감함에 반한 이들이었다.
그랬다. 평생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 그리고 진정 사람다운 사람 생각으로 그려낸 선생님의 나이테에 반한 이들이었다.
아래는 선생님의 글 <나이테>이다.
나이테
나이테가 한 줄 더 느는구려.
나이테는 그저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테는 그 해에 가물었는지 비가 많이 왔는지 바람이 어느 계절에 심했는지 하는 기후까지를 그 안에 포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백년 혹은 천년을 넘게 자란 나무의 나이테는 기록이 없는 옛날의 기후풍토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벌레가 파먹었던지 들짐승이 괴롭혔든지 몹쓸 병에 죽다 살아남았던지 아니면 어느 무지한 사람의 도끼가 찍었던지 그런 아픔의 상처도 고스라니 간직합니다.
아무리 혹독한 시련도 지난 후에 남기는 흔적은 아름다운 무늬가 되는 것이 나이테지요.
나무의 나이테가 단순하게 외부환경을 기록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의 나이테(年輪)는 의식활동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나이테(年輪)는 경륜(徑輪)이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서 그 해에 날씨가 어떠했는지를 가늠하듯이 사람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서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가늠하겠지요.
아픔이었거나 기쁨이었거나 또 하나의 나이테를 두른 님이여, 훗날 그것이 아름다운 무늬가 될 것임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