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음

느긋한 안식일 오후. 이 책 저 책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김남주에게 홀린다. 아마 어제 필라에서 있었던 광주 항쟁 38주년 행사장을 찾았던 탓일게다.

김남주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는 솔직히 내겐 좀 버겁다. 더더구나 이 나이의 내겐.

그러다 내가 크게 고개 끄덕이는 조선의 마음을 노래한 시 한 편.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찬서리

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2018년 5월 남북미에 얽힌 뉴스들 위에 겹친 김남주의 시 한편. 부끄러움으로.

일요일 오후

일요일 아침이면 눈을 더 일찍 뜨는 까닭은 무엇일까? 며칠 동안 비가 이어 내리는 날씨 탓인지 몸이 무겁다. 밖은 어두운데 비는 그쳤나보다. 그냥 습관으로 일어나 가게로 나간다. 두어 시간 가게 정리를 마치고 나오다, 아기들 위해 세상 구경 나온 오리 가족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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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은 아이들이 여섯, 다른 가족은 넷이다. 생각해 보니 내 어머니 형제는 여섯이었고 나는 넷이다.

비가 이어졌던 게 사흘 이었나? 나흘 이었나? 겨우 며칠인데 오후에 반짝하는 햇빛이 참 반갑다. 창문을 여니 새소리가 먼저 집안으로 들어온다. 창밖 잎새에는 어느새 여름 햇빛이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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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 오후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참 제격이다. 난 이런 일요일 오후가 좋다. 아내는 아직 교회에 있고, 집안엔 새소리와 시계침 소리가 있는…

<조직과 인간들의 사회제도를 염두에 두고, 과학의 관점에서 자연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고 자연의 본원적이고 편견없는 시각에서, 초기의 인류와 모든 어린 아이들, 그리고 자연인들이 그랬듯이 자연이 주는 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Henry David Thore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