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thday girl

While I was taking advantage of the long weekend by taking a nap, I was surprised and woke up by my wife’s calling me. Suddenly, I realized that summer had already come before I knew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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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her pressure, I’m leaving home for my old friend, Kathy’s, birthday party. The following are the lines printed on the invitation which I got from Kathy’s son, Christopher a few days ago:

“we have decided to celebrate this 3-quarters of a century milestone. If she continues to roller-skate two or three times a week, we expect to be doing this again in 25 years. Just letting you know, in case you cannot make thi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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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y, who turns 75 this year, always looks like a teenage girl, always cheerful and a face beaming with a smile, whether 25 years ago or now. While she, my wife and I all know very well the wrinkles of life in our faces which have been plowed by the past 25 years, she is really a teenage girl even now. My wife, who chats with Kathy about dancing, singing and life for a while whenever she sees her, seems about the sam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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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Kathy’s two sons and daughters-in-law were so excited, which looked very good to me. It was a part of grace which Chris said before dinner: “Today Mom turned 75 and I wish that we’ll have the same party 75 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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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re were Kathy’s real friends, young ladies and in their mid- or late-seventies and Korean War veterans in their late eighties. What a young man in his mid-sixties who was listening to their chatters could and should do was only taking pictures for the birthday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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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 girl

연휴를 맞아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 보니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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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채근을 받으며 집을 나서 오랜 친구 Kathy의 생일 파티장으로 향한다. 얼마 전 Kathy의 아들 Christopher에게 받은 초대장에 써 있는 글귀다. “3/4세기를 살아 온 우리 어머니 Kathy를 위한 파티에 초대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처럼 매 주 두 세 차례 롤러 스케이트를 앞으로 25년을 더 타시면 그 땐 한 세기를 기념하는 생일 잔치를 열 것입니다만, 혹시 그 때 당신이 오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알려드리오니 이번 잔치에 꼭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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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일흔 다섯인 Kathy는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십대 소녀 같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난 25년 사이에 그녀가 겪어 온 세월이나, 우리 부부가 헤쳐 온 시간들에 쌓여 온 삶의 주름들을 서로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소녀다. 그녀를 만나면 춤과 노래와 삶에 대한 수다가 이어지는 아내 역시 그녀 또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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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Kathy의 두 아들과 며느리는 한껏 들떳는데, 그게 내 눈엔 참 좋아 보였다. Chris가 드린 식사 기도이다. “우리 어머니가 올해 75인데 75해 뒤에 오늘 같은 자리를 만들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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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Kathy의 진짜 친구들인 70대 중 후반의 누나들과 80대 후반의 한국전 참전 용사 아저씨까지, 그들의 수다를 듣는 60대 중반의 청년은 그냥 사진이나 찍을 뿐. Birthday girl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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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에

한 주간 한반도에 얽힌 뉴스들이 넘쳐났고,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정보를 소비하느냐에 따라, 또는 이미 굳어진 생각들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들을 나타냅니다. 때론 그 다름의 간격이 너무 멀고 깊어 공존, 공감의 영역에서 만나는 일이란 결코 일어나지 못할 듯 합니다.

그 간격이란 한반도 안에 사는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미국안에서도 매양 일어나는 일입니다.

일요일 아침에 이런 저런 생각으로 이 땅에서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보내 본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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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 하나 있답니다. ‘최근에’, ‘재미있게’ 라고 했지만 사실은 책을 다 읽기 까지는 거의 반년이 걸렸답니다. 어려운 글은 아니었지만 12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 때문에 틈나는대로 조금씩 읽다보니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심리학자인 Steven Pinker가 쓴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이라는 책입니다. 책 제목에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이미 다 들어가 있답니다. 한국어로도 똑같은 뜻인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고 번역되었답니다.

이 책에서 Steven Pinker는 우리가 흔히 듣는 말들인 ‘역사상 가장 끔찍한 오늘’, ‘날로 증가하는 폭력’이라는 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기원전 800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인류 역사에서 일어났던 폭력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라고 주장을 한답니다.

그의 말입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많은 종류의 폭력이 줄었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그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폭력의 감소는 사회, 문화, 물질 조건들의 결과이다. 이 조건들이 지속된다면 폭력이 계속 낮게 유지되거나 심지어 더 줄 것이고, 조건들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폭력을 줄이는 우선적인 조건들로 그가 내세운 것이 바로 우리들의 본성에 있는 선한 천사들인데 그 본성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고 합니다.

Steven Pinker는 우리들 마음 속에 선한 본성들을 감정이입, 협력, 자기 통제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가운데 감정이입 Empathy라는 말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Empathy 라는 말을 쓴 게 고작 100년 밖에 안되었다는 말에 많이 놀랐답니다.  Steven Pinker에 따르면 심리학자 Edward Titchener라는 이가 1909년 처음 쓴 말이라고 합니다.

감정이입이란 공감 곧 함께 느끼고, 공명 곧 함께 우는 것입니다. 같은 톤으로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지요.

Memorial Day weekend입니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느꼈던 것을 함께 느끼는 일이요, 그가 울고 웃었던 일에 함께 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톤으로 같은 소리를 내어보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도 시작되지요.

함께 하는 가족에서 시작하여 가까운 이웃들과 벗들과 공감하고 공명하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여름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here is a book which I really enjoyed reading recently. Though I said “enjoy reading” and “recently,” in fact, it took almost six months for me to finish it. That was not because it was so difficult to understand, rather because it was so thick, about 1,200 pages. As I read some of it whenever I had time, I held it for such a long time.

It is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 written by a psychologist, Steven Pinker. The title itself implies what I’d like tell you. Its Korean translation has the title,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which is the literal translation of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In this book, Steven Pinker argues that words such as “historically the most horrible present” and “ever increasing violence,” which we hear very frequently, are not true. Having examined the history of violence from 8,000 BC to the present, he argues that the present is an era more peaceful, less horrible, and less violent than any other time in human history.

He contends:

<It is that substantial reductions in violence have taken place, and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em. Declines in violence are caused by political, economic, and ideological conditions that take hold in particular cultures at particular times. If the conditions reverse, violence could go right back up.>

The primary conditions which he contends will reduce violence are none other than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ich are expanding increasingly, according to him.

Steven Pinker argues that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are empathy, cooperation, and self-control.

Among them, empathy is of particular interest to me. By the way, I was surprised by the fact that the usage of the word, empathy, began just about 100 years ago. According to Pinker, the psychologist Edward Titchener used the word first in 1909.

Empathy means the ability to understand and share the feelings of another. In other words, it means to feel together, to cry together and to speak in the same tone.

It is Memorial Day weekend. What to remember someone means may be to feel what the person has felt, to be together with him/her at his/her laughter and weeping, and to have the same voice in the same tone, I think.

Now summer is starting to set in.

I wish that you will have a fruitful and peaceful summer in which you feel and cry together with your family, friends, and neighbors.

From your cleaners.

들어라, 양키!

의사의 권유로 한 동안 멀리했던 hard liquor 한 잔. 역사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때론 뒷걸음질 하는 때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만, 허전함을 순간 채우는데 독주만한 것이 있으랴!

그래, 70년이다. 그리고 너무나 익은 반복이다. 다만 ‘이번 만은’ 하는 바램은 절실했는데, 역시 요행수에 기댄 것일까?

1945년 이래 약소국들의 모든 외침은 <들어라 양키, Listen, Yankee!> 아니였을까?

<우리는 당신들을 정직하게 대하고 싶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를 조금도 염려(근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이 말은 당신들이 우리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들 미국 인민의 이름으로 양키들이 한 짓을, 그리고 그들이 할 일들을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당신들이 걱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당신들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런가?>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다. 허나 그런 꿈은 많은 인민들의 일상생활과는 하등 상관없는 것이다. – 중략 – 그러나 양키들아! 우리가 너무 많은 일을 단번에 이룩하려 하고 가끔 유치한 행동도 하고 무서운 실수도 저지르며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해도 우리가 비상한 노력의 과정 속에 있다는 점에 비추어 이해해 달라. 이 모든 점은 우리의 꿈과 우리의 현실을 처음으로 결합시켜 보려는 노력의 일부라 생각하고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두어 잔에 취한다. 그렇다 한들 꿈은 버릴 일이 아니다. 아무렴 70년 이어져온 절절한 이들의 꿈인 것을.

시인의 마음

느긋한 안식일 오후. 이 책 저 책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김남주에게 홀린다. 아마 어제 필라에서 있었던 광주 항쟁 38주년 행사장을 찾았던 탓일게다.

김남주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는 솔직히 내겐 좀 버겁다. 더더구나 이 나이의 내겐.

그러다 내가 크게 고개 끄덕이는 조선의 마음을 노래한 시 한 편.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찬서리

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2018년 5월 남북미에 얽힌 뉴스들 위에 겹친 김남주의 시 한편. 부끄러움으로.

일요일 오후

일요일 아침이면 눈을 더 일찍 뜨는 까닭은 무엇일까? 며칠 동안 비가 이어 내리는 날씨 탓인지 몸이 무겁다. 밖은 어두운데 비는 그쳤나보다. 그냥 습관으로 일어나 가게로 나간다. 두어 시간 가게 정리를 마치고 나오다, 아기들 위해 세상 구경 나온 오리 가족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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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은 아이들이 여섯, 다른 가족은 넷이다. 생각해 보니 내 어머니 형제는 여섯이었고 나는 넷이다.

비가 이어졌던 게 사흘 이었나? 나흘 이었나? 겨우 며칠인데 오후에 반짝하는 햇빛이 참 반갑다. 창문을 여니 새소리가 먼저 집안으로 들어온다. 창밖 잎새에는 어느새 여름 햇빛이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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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 오후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참 제격이다. 난 이런 일요일 오후가 좋다. 아내는 아직 교회에 있고, 집안엔 새소리와 시계침 소리가 있는…

<조직과 인간들의 사회제도를 염두에 두고, 과학의 관점에서 자연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고 자연의 본원적이고 편견없는 시각에서, 초기의 인류와 모든 어린 아이들, 그리고 자연인들이 그랬듯이 자연이 주는 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Henry David Thoreau

미안함

‘젠장, 이젠 늙었군!” – 이즈음 툭하면 혼자 뱉어내는 말이다.

아직 칠십이 먼 나이에 깝친다는 소리 듣기 딱 십상이다만, 어찌하리, 나오는데야. 일테면 평시와 조금 다른 강도로 일을 마치고 온 날이면 만사가 귀찮아진다든가, 집을 나서거나 가게 문을 닫고서 한참을 운전하고 가다가는 ‘아이구, 문을 안잠궜나 본데…”하며 다시 돌아가는 경우에 나오는 소리인데 점점 그 빈도가 늘어간다.

까닭없이 옛 생각에 잠기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옛 경험들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내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쯔쯧, 나도 이젠 정말 갔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엊저녁에 나는 또 한번 한 물 간 늙은 내 모습을 보았다. 이번 토요일에 이웃 마을 필라에서 광주항쟁 38주년 기념행사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서였다. 나는 그 소리에 급격히 스물 후반 언저리 나이로 돌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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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당시 나는 도피 중이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지금 세상 같으면 도피란 참 가당치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도대체 숨을 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분명히 도피 중이었다.

그해 봄 나는 복학을 했었다. 70년대 이른바 운동권으로 찍혀 제적되었던 많은 학생들이 박정희가 죽자 학교로 돌아갔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따져보자면 그것이 내가 80년 5월, 도피했던 까닭의 전부이다.

복학 후 3월 한달 잠잠했던 대학가는 4월로 접어들면서 전두환 신군부 타도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시위는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라고 알려진 5월 15일까지 전 대학에서 이어졌다. 지금 곰곰이 다시 그 때를 생각해 보아도 내가 특별히 한 일이란 없다. 나는 투사도 아니였거니와 무슨 운동의 선봉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5월 15일 이후로 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누군가의 눈에 띌까 두려워 하며 도피 생활을 했다. 아마 5월 20일이 지나서였을 게다. 당시 내게 일본어를 가르쳐주던 일본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요미우리 신문 기자였다. 그가 내 아버지를 찾아와 신신당부를 했더란다. 어떻하든 당신 아들과 연락을 해서 남쪽 광주로는 가지 말라고 일러 주라고 말이다.

1980년 5월 광주는 그렇게 내게 처음 다가왔었다.

6월 들어 나는 계엄사 합수부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내가 체포되기 전 내 아버지는 치안본부에 잡혀가 아들의 행방을 닥달하는 놈들에게 치도곤을 당하셨다. 그 치도곤으로 평소 화랑 무공훈장을 자랑하시던 상이군인 내 아버지가 이듬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나는 그때 특별히 한 일이 없다. 그저 이십 대 후반 늦깍이 복학생이었을 뿐이다.

몇 년 후 나도 아버지를 쫓아 미국으로 왔고 이제 한 세대가 훌쩍 넘는 시간이 흘러, 어느새 툭하면 깜박하는 나이가 되었다.

광주항쟁 38주년 기념행사 포스터를 보며 떠올려 본 옛 생각이다.

‘그래, 머릿수 하나 채우자!’ 그 맘으로 토요일 행사장을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과 그림들.

아주 어릴 적 외할머니는 큰 외삼촌이 6.25 때 국민방위군에 끌려 갔다가 피골이 상접한 채로 거지 중에 상거지가 되어 돌아온 그날을 되새기며 몸서리를 치곤 하셨다.

내 불알친구 병덕이 형인 병모형, 교사 자격증 받기 직전 연좌제에 걸려 동네 구멍가게 주인이 되었다. 아이구 그 형님도 이제 칠십이 훌쩍 넘으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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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殘像)

참 힘들어 보이는 일들을 아주 쉽게 하는 이들이 있다. 게다가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거니와 저 하나 먹고 사는 일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들을 즐거운 얼굴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때론 경이롭다. 내 주변에 그런 이들이 살고, 그들과 알고 지낸다는 일만으로도 이미 내가 누리는 복이다.

그 복을 누리는 나는 쉽게 그들과 함께 하지는 못한다. 내게 핑계거리는 차고 넘친다.

어제는 어머니 주일, 샌드위치 가운데 놓인 우리 부부는 이런 날이면 바쁘다. 자식 시늉한다는 아들 며느리 딸들의 인사 받 일은 뒤로 미루더라도, 우리 부부가 자식 시늉은 해야겠기에 어머니 아버지 찾는 일, 장모 묘소 찾고, 눈 수술 하신 장인 찾아 보는 일 등 하루 해가 짧다.

와중에 짬을 내어 필라를 다녀왔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필라를 방문하여 함께하는 행사에 얼굴이나 비추자고 나섰던 길이다.

나는 그 행사를 준비한 이들을 제법 안다 말할 수 있다. 거의 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이들이다. 어쩌면 내 처지가 그들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아직 아이들을 키우는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시간의 여유로 따지자면 내가 더 풍족한 편일 수도 있다.

세월호 가족들을 맞이하는 일, 영화 <그날, 바다>를 함께 보기 위해 영화 파일을 구매하고, 영화관을 대여하는 일, 세월호 ‘세’자만 나와도 고개를 가로 젖는 이 곳 동포사회에서 사람들을 동원하는 일, 뒷풀이 행사로 장소와 음식을 준비하는 일 등등 그 만만치 않은 일들을 정말 쉽게 웃으며 하는 그들의 경이로운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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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므로 모두 제 주머니 털어 하는 일이고 보면 내가 그들을 향해 치는 박수란 참으로 공치사일 뿐이다.

그리고 오늘, 세월호 관련 행사 때면 먼 길 마다치 않고 기록을 남기는 일을 감당하는 이가 찍은 어제의 사진들을 본다.

사진들을 보며, 잔상으로 남아있던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어제의 미안함이 진하게 차오른다.

영화 <그날, 바다>가 끝난 후 영화 관람자들과 유가족들과의 대화의 시간이었다. 유가족들은 짧은 일정에 뉴욕에 이어 필라델피아, 워싱톤을 잇는 여정 중이었으므로 몹시 피로하였을 터였다. 나는 푹신한 관람석 의자에 몸을 완전히 맡기고 편하게 눕듯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 유가족들은 영화관 스크린 앞에 내내 서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시간 유가족들에게 몹시 미안한 생각이 들어 빨리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지만 행사를 준비한 이들에게 차마 한마디 말을 건네지는 못했다. 그들의 노고를 이미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사진 한 장. 어쩌면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 그들이 헤쳐 나가야 할 길들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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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을 푸는 일, 역사를 바꾸는 일들은 승전보를 울리는 팡파레와 함께 등장하는 영웅들로 부터가 아니라, 안락한 의자에 관람자로 앉은 대중 앞에 비록 초라하고 지친 모습으로 서 있을지언정 아픔 속에서 솟아오르는 희망을 전하는 이들에게서 비롯된다는 역사적 진실 하나, 그리고 그 진실의 촛불 하나 함께 들고자 애쓰는 내 이웃들이 고마운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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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에

그림에 대해 나는 문외한(門外漢)이다. 내가 모르는 게 비단 그림 뿐만이 아니겠지만, 그림에 관한 한 거의 완벽할 정도로 무지 무식한 편이다. 이런 나의 무지 무식을  종종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 탓으로 돌리곤 한다. 나는 그를 거의 선생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딱히 그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던 기억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수업 시간은 아주 독특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미술시간은 일주일에 두시간이었다. 한시간은 그림을 그리는데, 미처 못다 그린 그림은 다음 시간까지 숙제로 남았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엔 열 명 씩 교단에 올라가 서서 각자가 그린 그림을 들고 서서 그의 평가를 받았다. 그는 우수 가작 선외 낙선 등으로 학생 하나 하나의 그림을 평가했는데 내 그림은 언제나 선외 거나 낙선이었다. 물론 그에게 엄청 두들겨 맞은 이후에 받은 평가들이다.

약이 오른 나는 옆 반 친구가 우수작 평가를 받은 그림을 빌려 들고 평가를 받았었는데 여지없이 그는 ‘낙선!’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내게 더 이상 선생이 아니었다. 물론 그림 역시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다.

그저 내 기억일 뿐, 내 타고난 솜씨 없음이나 게으름에서 오는 무지 무식을 가리려는 수작 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제 아무리 유명하다는 그림 앞에서도 아무 생각이 없다. 그게 잘 그린 건지, 못그린 건지, 왜 유명해졌는지 등등에 대한 느낌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이따금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을 찾아 그림 앞에 서기도 한다만, 솔직히 그저 사치일 뿐이다. 그림에 대한 아내의 식견 역시 내 수준을 크게 웃도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한 성격의 아내는 그림이나 미술 그 자체를 있는 대로 즐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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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을 찾은 일도 미술이나 예술에 밝아서가 아니라 파리에 가면 한번은 들려 보아야한다는 사치성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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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한가지 제법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림과 그림 사이에 다름을 발견한 것이었는데, 사실 눈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도 그림 보는 눈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림들이 시대순으로 주욱 전시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림들의 색감, 구도, 인물의 표정 등등이 확연하게 다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어서 이미 지나 오며 보았던 그림들을 다시 보았었다.

명암이 극도로 대비되어 밝은 쪽에 있는 탐욕스런 얼굴들과 어둠 속에 있는 찌든 얼굴들, 종교에 얽매어 찌든 시대 곧 중세의 그림들과 사람 사는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가는 르네상스 이후 시대의 그림들의 차이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그 그림들의 대비는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된다.

사람들이 살아 온 모습들을 보면 미술이나 예술 쪽은 비교적 진보가 빠른 편이다. 종교적 틀이나 제도를 벗고 신 앞에 홀로 선 신앙인을 내세웠던 키에르케고르가 고민하던 시대는 19세기이고, 그가 사람들에게 인정 받은 일은 20세기였다. 그리고 21세기인 오늘에도 여전히 중세로 살아가는 이들은 차고 넘친다. 종교에.

종교 같은 이념도 공허하거나 더디기는 마찬가지다.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오래 전에 유행하던 데탕트(détente)라는 말이 뉴스에 등장하고, 각종 해설과 의견들이 쏟아진다.

남북, 북미, 한미 또는 일 중 러 등등의 문제들에 너나없이 모두 해박한 지식들이 넘쳐나는 이들의 소리가 높다. 솔직히 허공을 치는 공허한 소리들이 넘친다.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불트만 등등의 서구 생각들을 두루 섭렵한 이후 예수 곧 종교란 민중이 주인이 되어 일으킨 사건이라고 주창한 이는 안병무선생이다. 예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새 시대를 이루는 주인공은 민중이라는 선생의 선언이었다.

쏟아지는 신 데탕트 뉴스 속 진정한 주인공은 민중이요, 시민이요, 인민 이어야 한다. 분단에 얽매어 찌든 시대를 벗고 진정 자유롭게 홀로 서서 떳떳한 나라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이들은 바로 인민이요, 시민이요, 민중 이어야 한다.

무지하거나 무식한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분단의 굴레를 벗어내야 한다는 생각 하나 만으로 족할 따름이다.

그 생각 하나 세우려고 70년을 헤맨 일인데 그리 서두를 일도 아니다. 제 생각 하나 바르다면.

내 무지한 생각으로.

안식(安息)에

봄비 오락가락하는 흐린 일요일. 뜰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출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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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간 아내가 돌아오기엔 아직 이른 시간, 친구 농장에서 온 두릅과 돌나물을 씻어 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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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무친 오이와 더덕도 넣어 국수 한 그릇 뚝딱. 막걸리가 딱인데, 아쉬운대로 와인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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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게으른 낮잠을.

신이 주시는 안식의 축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