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포 전 일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 났는데 몹시 어지러웠다. 멀쩡하게 잠 잘자고 일어나서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조심스레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영 서있지 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이어지는 심한 구토 증세로 그만 소파에 눕고 말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 누워 있고 나서야 어지럼증은 가셨다.
아내가 family doctor에게 전화를 해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일주일 후에나 오라고 했다. 딱히 emergency로 병원을 찾을 정도는 아닌 듯하여 정해진 시간에 의사를 찾기로 했었다.
느닷없이 처음 맞는 내 몸의 이상 증세에 나는 좀 당황했었다. 솔직히 나는 내 몸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한 편이다. 계절 따라 이따금 찾아오는 감기 몸살이나 어쩌다 한 번 씩(? 이제껏 평생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앓아 본 적 있는 복통 정도가 내 몸이 알고 있는 병의 전부였기에 그저 시간이 지나면 몸은 늘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무지한 믿음을 신봉하는 편이었다.
이웃간의 대화 속에서 흔히 듣는 병명이나 약명들에도 나는 거의 무지하다. 약명은 커녕 그 흔한 바이타민 종류에도 무지하다. 그나마 최근에 이르러 아내가 챙겨주는 바이타민을 이따금 먹기는 하지만 그게 무언지도 모르거니와 아내가 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느닷없이 찾아온 어지럼증에 나는 좀 쫄고 있었다. 말이 family doctor이지 의사란 나와는 참 거리가 멀었다. 내가 찾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찾아온 thyroid 증세와 나이 들어 함께 하는 혈압 문제로 아내가 자주 찾아야만 하는 아내의 의사였을 뿐이다.
몇 해전 봄에 뒷 뜰 잡목들을 정리하다가 poison ivy로 온몸에 번진 두드러기와 가려움 증상으로 의사를 찾았을 때, 의사는 몇 가지 기본적인 몸에 대한 검사를 받아 볼 것을 내게 권유했지만 나는 poison ivy를 치료하는 약을 받아오는 것으로 그 권유를 가볍게 무시했었다. 이제 나이도 있고하니 바이타민 c던가 d, 아니면 e던가를 권유하는 의사의 소리도 한 귀로 흘렸었다.
아무튼 일주일 후에 찾아간 의사는 이런 저런 검진 후에 내 몸에 느닷없이 찾아왔던 어지럼증은 단순 바이러스 감염 현상이라는 판단을 내리며 혈액검사를 비롯한 몇가지 기본적인 검사를 받아 볼 것을 권유했었다.
그 검사 중에는 colonoscopy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 colonoscopy 곧 대장 내시경 검사가 뭔가하고 찾아보니 하루 전에 온 종일 굶고 뱃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빼내고서야 받는 검사란다.
마침 오래전에 계획했던 여행이 코 앞에 있었던 터라 검사는 좀 뒤로 미루자 하였다.
그리고 어제, 나는 그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아주 작은 양성 종양이 발견되어 제거했고 대체로 양호하다는 판단이었다.
어제 그 검사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대기실에 누워 혈압 체온 등 이런 저런 검사와 수액 주사를 놓던 피부색이 까만 간호사와 흰색 보조 간호사 모두 매우 수다스러웠다.
나에 대한 기본 정보들과 나와 가족 병력을 묻고 난 그녀들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녀들의 묻는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되 나는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을 대었다. 그녀들은 소리내어 웃더니 내 본래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단다. 그제서야 나는 ‘한국’이라고 답했다.
이어지는 그녀들의 물음은 ‘동계 올림픽’과 ‘서울’에 대한 것들이었다. 물음을 이어가는 앞뒤 이야기로 보아 그 전날에 있었던 Super Bowls 중계 때 전파를 탄 평창 동계 올림픽 광고 영향이 컷던 듯 하였다.
한국뉴스를 보면 내가 이해 못할 것들이 참 많다만, 평창 올림픽은 평범한 미국 시민들에겐 한국을 가까이 알리는 참 좋은 기회가 될 듯 하다. 아무렴 잘 치루어 졌으면 좋겠다.
수다스런 그녀들이 ‘잠시만 기다리라’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는 의사가 나타가기 까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병실 침대에 누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누어 있기는 처음인 것 같다는 내 말에 의사는 복되게 살았단다.
그 길었던 시간, 순간으로 찾아온 욕심이 하나 있었다.
언젠간 내게도 다가올 그 시간, 눕지않고 서서 더 큰 욕심으로는 걸으며 그 알 수 없는 시간을 맞을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었다.
내 몸에 대한 내 무지함에 비해 나는 아직 괜찮다.
욕심(慾心)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