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성과 속

이즈음 세상에 외국 여행 한번도 못했다면 ‘촌스럽다’라는 말 듣기 딱 십상이다. 허나 어찌하리! 그게 내 모습인 것을. 딱히 여행 경험 유무로 따지는 촌스러움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촌스러움’은 늘 내게 붙어 다니는 수식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큰 맘 먹고 첫 번 째 외국여행을 다녀왔지만 평생을 함께 한 촌스러움을 벗지는 못할 것이다.

그랬다. 정확하게 내 인생의 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반은 미국에서 살았다만 두 곳 모두 내게 외국은 아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내 일상을 이어가는 삶의 터전이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하여 이번 여행이야말로 첫 외국 나들이였던 셈이다.

내 나이 스무 살 무렵에 어지간히 싸돌아 다녔었다. 그래봐야 한반도 남쪽이었지만 웬만한 명산과 바닷가에 작은 발자국 꽤나 찍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서른을 넘어설 즈음 생활인이 된 내게 싸돌아 다닐 여유는 이미 사치였다. 미국 이주 이후 삶은 작은 사치도 허락하지 않았다. 변변한 재주가 없는 내게 이민은 그저 일상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그래도 차마 버리지 못한 버릇으로 돌아 다니기는 했으나 그 역시 미국을 벗어 나지는 못했다. 그나마 어찌하여 작은 여유를 부릴 기회가 오면 연어처럼 한국을 찾곤 했으므로 해외 여행은 차마 꿈꾸지 못하였다.

시간은 늘 생각과 무관하게 흘러 어느새 은퇴 시기를 저울질 하는 나이가 되었다. 몇 해 전 일이다. 아직 무릎이 쓸만할 때 다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 왔었다. 그 생각 끝에 속다짐을 했다. 아직 걸을 만 할 때, 해마다 며칠 동안 만이라도 싸돌아 다니며 걸어 보자고….

그 다짐의 하나로 짧게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내 체력이 딸릴 만큼 어지간히 걸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눈이 내려 앉은 뒤뜰을 바라보며 짧았던 여행길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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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 性, 城, 成)과 속(俗, 贖, 速, 屬)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여행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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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宣傳)에

<프로파간다는 참 재밌습니다. 건망증을 목표로 하니까요. 무슨 말이냐고요? 프로파간다는 국민에게 무언가를 잊게 만드는데 목표를 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미국 국민의 경우에는 잊을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애초부터 진실을 알지도 못했으니까요.>

과거의 역사에 무지한 채, 권력이 쏟아내는 선전에만 귀를 기울이는 미국국민들을 향해 던진 하워드 진 (Howard Zinn)의 말이다.

그가 세상 뜨기 전인 2004년에 한 말이다. 그런데 그의 말은 2018년 오늘도 미국민들에겐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미국민들이란 그저 평범한 내 이웃들이다.

한국계인 내게 친근함을 나타내려고 평창올림픽과 북한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고 말을 건네는 이웃들은 따지고 보면 내 개인적으로는 참 고마운 일이다.

문제는 전형적인 미국민들에게 북한이나 남한이나, 아니 베트남, 필리핀, 쿠바,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등등의 나라들에 대해 권력들이 만들어낸 선전 이상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이즈음 한국(남한) 뉴스들을 통해보는 그 곳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시민들에게 무언가를 잊게 만들려고 온갖 힘과 꾀를 다하는 권력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언론과 돈의 권력들.

다만 건망증과 싸우며 부단히 기억을 살려내고자 하는 시민들이 예전과 다르게 많고, 그들의 노력이 치열하다는 소식에 희망을…

어머니와 스웨터

모진  추위 속 오래 전 어머니가 짜 주신 스웨터를 보며….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연일 이어지는 추위 속에서 작건 크건 일상을 허무는 일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비록 평시와 조금 어긋나더라도 마음은 늘 넉넉한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문득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추웠던 겨울은 언제 였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가장 추운 겨울은 언제 였는지요?

저는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이 생각난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십년이 지나지 않았던 때여서 그저 가난이 평범했던 시절이었답니다. 허름한 집 구조나 난방시설 등을 이즈음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과 비교해 설명드릴 수가 없을 만큼 가난했던 때였답니다.

물론 저희 가정만 그런 가난을 안고 산 것은 아니고, 제 친구들 대부분의 생활은 거의 비슷했답니다.

제겐 그 때의 겨울이 가장 추웠답니다. 일테면 방안에 있는 그릇 속에 물이 얼고, 벽에는 하얀 성에가 낀 방을 상상하실 수 있겠는지요? 그 때의 겨울이 그랬답니다.

그 때 그 매섭게 추운 겨울에 저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던 것은 어머니가 짜 주셨던 스웨터 였습니다. 어머니께서 털실로 짜 주신 두툼한 바지와 자켓은 그 겨울을 이겨낸 힘이었습니다.

중학교를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다니며 제가 더는 털옷을 입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겨울이면 털옷을 짜 주셨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을 들어가던 그 해 겨울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더 이상 털옷을 짜지 않으셨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짜 주신 털옷을 제가 입었던 기억은 거의 없답니다. 그러나 그 털옷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고이 간직하고 있답니다.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 오래 전 어머니가 짜 주신 털옷을 보며, 모든 추위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을 생각해 본답니다. 어머니의 사랑 말이지요.

매서운 추위로 시작한 2018년입니다.

올 한 해 내내 비록 어머니 아니어도 누군가의 사랑을 넘쳐나게 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따듯함이 이어지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he bitter cold continues. I wish that, above all, you’ll stay healthy. I also wish that, in spite of the continuing biting cold, you’ll manage to keep everyday life in control and to maintain an easy mind every day, though things may not work out exactly in the same way as usual.

Casually, one question crossed my mind: when was the coldest winter in my life? When was the coldest winter in your memory?

For me, about the time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came to my mind. I could say that the winters in those days were the coldest in my life. As it had not been less than ten years since the end of the Korean War, poverty was normal in Korea at that time. The housing conditions, including the heating systems, in those days were beyond explanation, especially compared with the comfort which we are enjoying now.

For example, the water in a container in the room was frozen and the walls in the room were covered with frost overnight in the bitter cold days of winter. Can you imagine that?

Of course, it was not just my family which lived in such a shabby house, but most of my friends also lived in a similar condition.

What wrapped me up warmly in the cold winter at that time was a sweater which my mother had knitted. Thanks to the thick jacket and pants which my mother had knitted, I could go through the cold winter.

Though I rarely put on those knitted clothes when I was in middle school and high school, my mother still knitted those clothes for me every winter until I entered a university. Since then, she stopped knitting my clothes.

I don’t remember when I wore the last one which my mother knitted, or how many times I had worn it. But I still keep it carefully though it is 45 years old now.

In this morning of a bitter cold day, I’m thinking about the strength to overcome the cold and difficulties, while looking at the sweater which my mother knitted for me a long time ago. I mean mother’s love.

It is the year 2018 which began in the bitter cold.

I wish that throughout this year, you’ll continue to have the warmth enough to win someone’s overflowing love like my mother’s love and also to share this type of mother’s love with someone.

From your cleaners.

추위에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동네에 산지 서른 해가 넘었지만 이런 추위는 처음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자동차 수은주가 1도라고 가리켰다. 섭씨 영하 17도 이하였다. 일기예보로는 체감온도가 -10, 섭씨로는 영하 23도 이하란다. 벌써 몇 일 째인가? 여름 한 철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맥을 놓게 되듯 강추위에 그저 몸이 움추려 들 뿐이다.

문득 내 평생 가장 추웠던 겨울이 언제였던가 꼽아 본다. 나이 들면 지금과 가까웠던 세월보다 먼 옛날 일들이 또렷이 기억난다더니 생각은 빠르게 시간을 되돌린다.

그 땐 정말 참 추웠었다. 방안 그릇에 담긴 물이 얼었고, 자고 나면 벽엔 하얀 성에가 끼곤 했었다. 내 나이 열살 어간의 겨울이었다. 내 집이 가난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시절 내 동무들 대부분 그런 방에서 겨울을 지냈다. 그랬다. 그 땐 친구라는 말보다는 동무 라고들 했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채 십여 년이 흐르지 않은 겨울이었다. 내 동무들 가운데는 여전히 이북 사투리를 쓰던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 집 가까이에 가면 억세고 거세기가 동무들의 억양보다 몇 배나 높은 이북 사투리를 듣곤 했다. 동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 갈 무렵 즈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투리는 더는 듣지 못하게 되었고, 서울 말과 섞인 이북 사투리를 쓰시던 동무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도 이젠 거의 세상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동무에서 친구가 된 내 어릴 적 벗들도 어느새 손주 손녀 이야기를 하는 나이들이 되었다.

그래, 그 땐 정말 참 추웠었다. 방안에 있는 그릇에 담긴 믈이 얼었고, 벽엔 허연 성에가 끼곤 했었다. 내 나이 열 살 어간의 겨울이었다. 내가 친구들을 아직 동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모진 추위가 이어지는 2018년 새해 벽두에 옛 일을 생각하며….

달과 일상(日常)

새해 첫날 지는 달과 뜨는 달을 보다. 때마침 둥근 보름달이다.

좀 느긋해 질 나이도 지났건만 연휴에도 일상적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새벽녘에 일어나 서성거렸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에 집을 나섰다. 행여라도 가게 보일러가 얼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연휴는 일상이 연속되어 진다는 담보가 있어야 참 휴식이다. 이 추위에 보일러가 얼기라도 한다면 연휴 끝에 이어질 내 일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비록 노파심이라도 집을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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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새벽 녘에 둥근 보름달이 지고 있었다. 새해 첫 날 첫 새벽에 둥근 보름달은 운전을 멈추게 하였다. 내 일생 새해 첫 날 첫 새벽에 보름달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60여년의 세월을 빠르게 돌아본다.

일상의 연속을 위하여 휴일 아침에 일터로 향하며 누린 이 놀라운 감흥이라니!

우연이었다.

다 저녁 무렵에 홀로이신 장인을 뵈러 가는 길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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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지는 달과 뜨는 달을 보는 일, 어쩌면 그도 일상(日常) 아닐까? 그 달이 보름달이어도.

2018년 첫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