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 그 감사에

한 해의 마지막 주간, 또 다시 한 해를 보내는 아픔으로 혹독한 감기를 앓다. 이제껏 큰 병이나 잔병치레 없이 살아온 것 더할 나위 없는 감사이다. 하여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감기와 싸우는 아픔이 그 감사의 크기를 줄이지는 못한다.

이제 몇 시간 남지않은 2017년 한 해를 돌아본다.

가슴 한 켠에 아직도 가시지 않고 아릿한 아픔으로 남아있는 기억들도 있지만, 대체로 참아내고 이겨낼 만한 일들 이었음에 감사하다. 곰곰 생각하니 돌이킬 수 없는 후회도 있다만, 잊을 만한 새로운 시간들이 찾아온다는 소망이 있어 감사하다.

여느 해 보다 유달리 장례식장을 많이 찾았던 한 해였다. 제 아무리 백세 인생을 외쳐도 유한함을 벗어날 재간은 없다. 나 역시 노년의 문으로 한발 내딛는 한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해야만 할 일들이 내 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밤, 체감온도가 화씨로 -10도, 섭씨로는 -23도 란다. 연일 매서운 추위가 이어진다.

가게 손님 가운데 Morris라는 양반이 있었다.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내 가게에 들어서면서 던지는 매양 똑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건 추위가 아니야! 정말 추운 건 한국이지.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어!” 한국전 참전용사이던 그는 지난 더운 여름날 어느 날 세상 떳다. 생전 그에게 한국은 언제나 1950년 겨울이었다.

어찌 Morris씨 뿐이랴! 나 역시 때때로 모국인 한국은 1970년대이거늘. 추억만으로는 결코 추위를 이기지도 못할 뿐더러 새 날을 맞지 못하는 법이다.

강추위 속에서도 새 날은 밝을 것이다. 이제 어제로 남을 2017년을 추억이 아닌 기억으로 새기는 한 그 역시 모두가 감사이다.

그 맘으로 내 가게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12-31-17올해의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일년의 구분은 있지만 시간이 빠르기는 매양 한가지입니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 빠르기만 할까요?

지난 주간 제가 경험한 일인데 시간은 때론 정말 느리고 더딘 걸음으로 가는 때가 있답니다. 하루 해가 너무나 길게 느껴질 만큼 시간은 느리고 느리게 흘렀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심한 감기로 고생을 했었답니다.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하루 해를 보냈는데, 특히 날씨가 몹시 추웠던 지난 목요일, 금요일 이틀 동안은 시간이 그렇게 느리고 더디게 흐르던지요. 다행히 어제부터 몸 상태는 좋아졌고, 일요일인 오늘과 새해 첫날인 내일 쉴 수 있어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흐를 것 같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빠르고 느린 속도의 느낌은 사람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요.

때론 더디고 느리게 지나갔지만 대체로 빠르게 흐른 지난 한 해, 제 세탁소 손님들을 생각해 봅니다.

제 가게 최고령 손님이셨던 할머니는 지난 봄 97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이건 추위가 아니야! 정말 추운 곳은 한국이지. 그땐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어!”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한국전 참전 용사였던 할아버지도 지난 여름에 돌아가셨답니다. 매 주 세탁소를 찾아 오시다가 은퇴 이후 아주 이따금 찾아 오시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새로 동네에 이사해 오신 젊은 부부들도 있고, 부모 손 잡고 오던 어린 아이가 훌쩍 큰 어른이 되어 단골 손님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때론 “언제부터 이 세탁소가 여기 있었느냐?”고 묻는 새 손님들도 있습니다. 제가 “1990년 부터…”라고 답을 하면 “이 동네에서 그 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이 세탁소는 처음 봤다.”고 대답하는 손님들도 있답니다.

한 해가 저무는 순간, 제 세탁소에서 만난 얼굴들을 떠올려봅니다. 그저 모든 분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당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맞이하는 2018년 새해의 시간들 역시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간들이 저나 당신에게 소중하고 복된 시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시간은

– 헨리 반 다이크

기다리는 이들에겐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이들에겐 너무 빠르고
슬퍼하는 이들에겐 너무나 길고
기뻐하는 이들에겐 너무 짧다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겐
그렇지 않지


It’s the morning of the last day of this year. Though time has divisions like day, week, and year, time is flying by as ever. But, is time really going by so fast all the time?

As I experienced last week, I think that sometimes time goes by so slowly or at a slow pace. Last week, I felt that time went by so slowly to make me feel that a day was too long.

I suffered from severe cold last week. As I could not afford to have days off, I had to work at the cleaners. Especially on Thursday and Friday when it was very cold, I felt that time was passing by so slowly. Fortunately, I began to feel better as of yesterday. As I can take rest today and tomorrow, New Year’s Day, I think that time will fly by fast again.

Though time passes by without bias and without favor to anybody, the feelings of the speed of time may be different according to the conditions in which one might be.

Sometimes time flew by fast and sometimes it passed by slowly this year. But, overall, I could say that this year passed by fast. I’m thinking about my customers this year.

The lady who had been the oldest customer passed away at the age of 97 in the spring. The gentleman who around this time of year always said, “It is not cold. The really cold place is Korea. When I was there, it was even colder than Siberia!” He passed away in the summer. He was a Korean War veteran. Some customers who used to come every week began to come less often after they retired.

And then, as new customers I met young couples who had moved to the community. I have regular customers who used to come to the cleaners with their parents but now have grown up to be adults.

From time to time, new customers asked, “Since when has this cleaners been here?” When I answered “Since 1990,” some of them were surprised and said, “Though I have been living here even before 1990, I didn’t know that you are here.”

At the moment when 2017 is coming to a close, I’m recalling the faces of those whom I have met at my cleaners this year. Simply, I’m thanking all of you and I am deeply grateful to you.

In the New Year, 2018, time will fly by fast sometimes and go by slowly sometimes. However, I wish that all the time will be precious and blessed to you.

From your cleaners.

Time is.. .
– Henry Van Dyke

Too Slow for those who Wait
Too Swift for those who Fear
Too Long for those who Grieve
Too Short for those who Rejoice
But for those who Love
Time is not.

성탄과 별

해방과 구원은 성서 이야기의 두 핵심이다. 히브리족속의 탈애굽과 예수의 십자가는 두 핵심 이야기를 대변하는 사건들이다. 나머지 무수한 이야기들을 단지 두 핵심 이야기를 위한 치장으로 내칠 수는 없겠다만, 무게가 처짐에는 틀림없다.

예수 탄생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와 부활에 닿지않는 예수 탄생 이야기는 큰 뜻이 없다.

<그 분은 그 옛날 호숫가에서 그분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름이 없는, 알지 못하는 분으로 찾아 오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똑같이 말씀을 하시며, 우리 시대에 그분이 성취하셔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정해 주신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현명한 사람이건 단순한 사람이건 간에, 그분의 제자로 살기 위해 거치게 될 수고와 갈등, 고난 속에 그분 자신을 계시하시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 속에서 그분이 누구인지를 배우게 된다.> –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역사적 예수의 탐구에서)의 말이다.

<예수가, 아마도 처음이자 유일하게, 성전의 화려함에 맞서서 그 합법적 브로커 기능을 브로커 없는 하나님의 나라(unbrokered kingdom of God)의 이름으로 상징적으로 파괴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시대의 신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 역사적 예수에서)이 만난 예수의 모습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전적으로 믿는 이들 개인 신앙고백에 닿아 있듯이, 예수 탄생의 뜻 역시 온 세상 각 사람들과 신이 그 어떤 브로커 없이도 만나는 지점 곧 오늘 여기에서 세워진다.

2018년 성탄 전날 아침에 빌어보는 기도이다. “곤고한 모든 이들의 가슴에 한 점 별빛으로 찾아오소서. 별빛에 크기와 상관없이 오신 당신으로 인해 오늘, 여기에서 누리는 삶의 뜻을 찾게 하소서.”

그 마음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운다.

12-24

이제 2017년도 딱 한 주간을 남겨 놓았습니다. 지나간 한 해 동안 있었던 여러 일들을 생각해봅니다. 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듯 꼭 즐겁고 기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느 해처럼 때론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돌아볼수록 커지는 것은 감사입니다. 특별히 제 세탁소를 통해 만난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감사의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전 날 아침에  제가 좋아하는 시 한편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 띄웁니다.

겨울 길을 간다

–       이해인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아는 이 하나 없다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화사한 봄도 아니고, 호사스런 여름도 아니고, 풍성한 가을도 아닌 텅 빈 겨울에 흰 눈 덮힌 오솔길을 걷는 시인은 올해 73살의 카톨릭 수녀입니다. 그녀는 아는 이 하나없이 별 빛조차 없는 어두운 겨울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겨울 길을 걷고 있는 시인은 불쌍하고 안타깝게 보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저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놀라운 반전을 선포합니다.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녀가 행복한 까닭은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녀가 가슴에 품은 별이란 종교적 고백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저 같은 보통사람들 누구에게라도 그 별 하나 묻을 가슴이 있는 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고운 별’ 같은 사람 하나쯤을 있지 않을까요?

이제 한 주간 남은 2017년의 당신의 시간들이 고운 별들로 반짝이는 길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he year 2017 has just one week left now. I’m thinking back over various things that happened this year. As is of the case with life, not all of them were happy and pleasant. Just like other years, some of them were painful, sad, upsetting or irritating. However, as I’m looking back over the year, what becomes bigger is gratitude. Especially, I am grateful to you who I got to know through my cleaners.

With the gratitude in mind,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one of my favorite poems on this morning one day before Christmas.

Walking on a winter path

– Hae-in Lee

Along with spring and summer
Woods which was dazzled,
When they take off clothes slowly with autumn,
Desolate at sunset
The sounds of winter coming are whistling around.

When I open the window casually,
On the snow-covered footpath,
Darkness becomes deeper and no one who I know is there.
In the winter woods without stars
There is no one that I know.

Thirsty from a long journey
Happiness of poverty, a beautiful star
Burying in my heart,
I’m walking on a winter footpath in the woods.

Not in cheery spring, not in dazzling summer nor in abundant fall, but in desolate winter, the poet who is walking on the snow-covered footpath is a Catholic nun at the age of 73. She is walking on the dark winter footpath in the woods without stars.

If we look at her with the eyes of ordinary people, the poet may look pitiful and sad. But, she declares the reversal which is shocking to ordinary people like me. She says that she is a happy person.

The reason why she is happy is because she is walking <on a winter footpath in the woods/Burying in my heart/Happiness of poverty, a beautiful star>. The star which she buries in her heart may mean religious confession.

But, thinking it over deeply, to all the ordinary people like me, if we have a heart to bury that star in, I think that we must have at least one person who is like a beautiful star which brings happiness to us. Don’t you think so?

I wish that the last week of 2017 will be like a path sparkling with beautiful stars to you.

From your cleaners.

엇박자와 문(門)

연애 6년에 결혼 34년 차이니 꽉 찬 40년인데, 아내와의 엇박자는 여전하다. 이즈음 겪는 엇박자는 젊은 시절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예전엔 그 삐걱거림이 대부분 성격차이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즈음엔 기억 차이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들이 많다.

엊그제 이어진 일들 모두 우리 부부가 이즈음 겪고 있는 기억력 차이에서 온 엇박자 행보였다.

지난 토요일 약속은 벌써 달포 전에 이루어진 것인데 아내와 나는 그야말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점은 엇박자가 아니라 정박에 완벽한 화음까지 이루어진 망각이었다. 해마다 초대해 주는 우리 가게 손님 Gaskin씨의 연말 파티 초대였는데, 당일 오후에 Gaskin씨가 가게로 찾아와 다시 알려 줄 때까지 우리 부부는 완벽하게 정박으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엇박자는 Gaskin씨가 가고 난 뒤에 일어났다. 나는 Gaskin 내외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토요일 오후에 계획했던 내 시간을 갖는 쪽으로 고집을 세운 반면, 아내는 초대에 응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 엇박에 화음과 추임새를 넣어 준 것은 아들 내외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사는 아들 내외가 마침 우리 동네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샤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는 아이들에게 Gaskin씨네 연말 파티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에 아이들이 흔쾌히 승낙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제 일요일 저녁은 아내와 내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아내는 한국학교 연말 행사에,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키로 주초에 서로 간에 확인까지 마친 터였다.

분명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두 행사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약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행해지는 것이어서 함께 갔다가 행사가 마칠 즈음 만나서 함께 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문제는 역시 기억의 차이였다.

두 행사 장소는 모두 집에서 한시간 거리여서 행사 시작 한시간 십여 분 전에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하는 말, ‘어! 우린 6시네!’

내가 가야 할 곳은 ‘5시’였다.

늘 그렇듯 우린 잠시 다투었고, 엇박자를 맞출 궁리를 하였던 바, 여느 때처럼 ‘아차!’하는 내 실언 탓에 모든 일들은 아내가 두드리는 박자대로 움직이었다.

5시, 반가운 얼굴들이 모인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를 함께 보며, 끝내 이산 가족이란 이름으로 지난 해 세상 뜬 장모 생각에 눈물 찔끔 흘리다 먼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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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한국학교 연말 잔치. 공식명은 <재미한국학교 동북부지역 협의회 제 16회 교사 사은회>. 행사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자칫 아내의 부속물이 될 뻔한 나를 구원해 준 이는 시인이었다.

시인 강남옥, 그녀의 시집 <토요일 한국학교>는 아내와 나 사이 엇박자와 <민우씨 오는 날>의 연희와 민우 사이 세월의 간격과, 장모와 처 할머니의 알 수 없는 만남과 세월호와 아직 풀리지 않은 숱한 한(恨)들 사이에 문(門)들을 내게 보여 주던 것이었다.

아무렴 때론 엇박 역시 삶의 흥을 돋는 추임새거늘.


 

JFK

  • 강남옥

우리 훗날 건너가
더 훗날 다시 만나자던 그
요르단 강인듯

70년대 명절 단대목에 가던 목욕탕인 듯

한국 소주 까며 끼리끼리
그리운 섬처럼 사는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JFK는
미간 넓은 재클린 케네디의 남편 이름 아니다

치약이나 손톱깍이 모조리 훑어 뺏는 무정한 손
가고픈 곳, 가고 싶지 않은 곳, 바람 많은 눈물의 징검다리
그 게이트 건너지 않고는 위독한 어머니께
직항으로 갈 수 없는 좁은 문이다

가슴에 넣어 온 작은 종 딸랑딸랑 흔들며
미국에게 이리 오너라~ 할 때
낯선 집 앞 우두커니 문 열리기 기다리는
막다른 골목이다

생을 뒤집어 단숨에 돌아가기엔
오래 서성거려야 하는
서성이다 발길 돌려 정글로 돌아가는
미국 동북부 보통 한국 사람들에겐 언제나
Just From Korea

첫 눈

무릇 믿음이란 제 마음가짐이다.

어제 첫 눈 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때때로 자연은 사람의 생각과 계획한 일들을 바꾸어 놓고 한다. 누구에게라도 예외는 없다.

나이 탓인지 일년 전 일이나 오 십년 전 일이나 거의 같은 간격으로 다가오는 이즈음이라 그저 세월 빠르다는 소리로 퉁 치고 말지만, 참 빠르다. 세월이.

아들 내외가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더니, 장모 떠나신 지도 벌써 일년이란다. 그저 모두 엊그제 같은 일이건만.

어제는 집에서 처부모님께서 다니시던 교회 목사님을 모시고 조촐히 장모 일주기 추모 예배를 드리려 했었다. 그러나 첫 눈은 우리 부부의 계획을 바꾸어 놓았다.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 이홍 목사님과 교우들은 첫 눈의 뜻을 넉넉히 받아주었다. 공동체의 그 넉넉함 덕에 오늘 주일예배와 함께 장모 일주기 추도예배를 침례교회에서 드렸다. 장모는 아마 내 집보다는 침례교회가 좋았던가 보다. 올 첫 눈은 장모의 뜻일 거라는 내 생각은 하여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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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께서 이즈음 입에 달고 사시는 말, ‘그저 고맙다.’를 나도 읊조린 하루다.

가족이 함께 해야 할 일에 제 일들 제치고 늘 함께 해 주는 아들, 며느리 딸아이에 대한 감사도 크다.

예배 후 찾은 장모 쉬시는 곳엔 구름 사이 햇살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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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을 찾았다. 몇 주 전에 이미 약속한 모임 이었지만 아이들은 몰랐다. ‘아직 정신 있을 때 남길 건 남기고, 줄건 주고 정리를 해야겠노라’는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을 함께 보자고 하셨다. 그게 오늘인데 장모 덕에 우리 아이들도 함께 하였다.

여러 말씀 중에 내 귀에 남은 말은 아버지의 말씀이다. “우리 죽어도 절대 눈물 보이지 말아라. 우리 복되게 잘 살았다.”

그리고 내가 형제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건 내꺼야!’ 눈독들인 물건은 아버지의 공병우 타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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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무릇 삶이란 제 믿음 두드리는 타자기 소리 듣는 일이거늘.

이 생각 하나 모두 올 첫 눈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