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가 지났을 뿐인데 밖이 어느새 어둑어둑하다. 흐린 날씨 탓도 있겠지만 간밤에 daylight saving time이 끝난 연유일게다.
엊저녁엔 친구따라 강남 구경을 다녀왔다. 두어 달 전 일이다. 가까이 지내는 벗인 하나 아빠가 한나 아빠인 내게 제안을 했었다. 오페라 구경을 가자고 말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난 웃을 뻔 하였다. ‘내가 오페라 구경을…?’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오페라 공연 무대를 찾아가 구경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영화나 TV 등을 통해 오페라 공연을 본 것도 경험이라치면 그 구경이 전혀 처음은 아니랄 수도 있겠다만, 하나 아빠의 제안은 웃음이 나올 만큼 내 격과 분수에 크게 지나친 것이었다.
제안과 함께 이어졌던 하나 아빠의 권유였다. “사는 게 뭐 있어? 이제 와이프랑 함께 이제껏 하지 못하고 산 일들 한번씩 해보고 사는거지!” 나는 그 소리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제안을 따랐다.
그리고 어제 우리들은 뉴욕 Metropolitan Opera House에서 오페라 ‘La bohème’ 구경을 하였다.
오페라 ‘La bohème’에 대한 이야기는 오페라 문외한인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다만 친구따라 강남 구경을 한 후 잔상으로 남은 몇가지 간밤의 기억들이다.
‘뉴욕의 밤’, ‘도시의 밤’은 이젠 시골영감이 되어버린 내게 잠시 옛 생각을 즐기는 선물을 선사하였다. 그래 우리 부부도 한 때는 ‘도시의 밤’, ‘서울의 밤’을 누렸던 청춘이었다.
오페라 하우스에 간다고 나름 교회용 드레스 코드에 맞춰 입고(특히 구두를 신고) 나선 길이었다. 극장안엔 그야말로 선남선녀들이 오페라 하우스 드레스 코드에 맞춰 입고들 오페라 연주보다 멋진 테를 뽐내었다. 그러나 예외는 늘 있는 법, 청바지에 캐쥬얼 차림으로 명랑한 젊음들도 보았다.
중간 휴식시간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좌석열 중간쯤에 위치한 자리를 찾아가는 노인 한 분을 위해 이미 자리에 앉아있던 우리 부부를 비롯한 대여섯 사람들이 일어섰다. 그 때 걸음걸이가 힘들어 보이는 그 노인이 한 말이다. ‘그대로 좀 더 서서 기다리쇼. 저기 내 친구 하나가 더 와요.’ 그래 우리들은 아직 젊음이었다.
극장 규모보다 더 큰 놀람은 관객 개인들에게 제공하는 자막 시스템이었다. 오페라의 대사들을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로 번역 제공하는 자막이었는데, 각 개인 좌석에서 옆자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불편함을 주지않고 누릴 수 있는 편의 제공이었다. 내가 오페라 ‘La bohème’을 그나마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는데, 내 스스로 시골영감임을 인증하는 것인 줄은 모를 일이로되 대단한 첨단 기술이었다.
무대의 정교함과 현실감 나아가 모처럼 들어보는 사람이 내는 소리의 완벽함 등은 내 눈과 귀의 수준에 비추어 그저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도시의 밤’.
친구 잘 만나 강남 구경 멋지게 한 어제 일을 되새기는 사이 밖은 아주 이미 캄캄하다.
보헤미안(Bohemian)과 필리스틴(Philistine)들이 새롭게 만들어 가는 세상에 대한 꿈은 내일 또 다시 밝아오는 아침에 살아있는 자들이 할 일일 것이고, 친구 내외와 아내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