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림의 아름다움

독특한 연주회에 다녀왔다. 음악과 거리가 먼 내가 평일 저녁에 음악회는 솔직히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어찌하리, 이즈음 사물놀이에 흠뻑 빠져있는 가까운 후배 내외가 우리 동네에 와서 공연을 한다는 데야 안 가볼 수 없는 일이었다.

델라웨어 대학교 타악기 앙상블(UD PERCUSSION ENSEMBLE) 공연이었다. 음악회의 타이틀은 “EAST MEETS WEST”, 그야말로 동서양의 각종 두드리는 악기들이 모두 모인 공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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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한 무식을 그대로 드러내듯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난생 처음 본 타악기들의 소리들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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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막바지에 등장한 steel pan이라는 악기 소리에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솥 아니면 커다란 냄비라고 할까, 그걸 두드리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소리들이 터져 나오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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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후배 안사람이 두드리는 우리 소리 바로 북과 장고였다.

아무렴 두드리며 두드리며 한을 풀어온 우리들의 소리인 것을.

이 가을에 두드림 소리로 만끽한 아름다움이라니!

말(言)에

  • 같은 말을 쓴다는 괴로움에 대해

내가 사는 동네에 한국식당이 세 곳 있다. 그 곳에 대한 연혁을 나는 꾀고 있다. 모두 내가 이 곳에 이민 온 이후에 생긴 식당들이기 때문이다. 거쳐간 주인들에 대해서는 더하고 뺄 것 없이 그저 흘러 다니는 이야기를 다 들었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저 들을 뿐, 돌이켜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좋고 나쁨을 이야기 해 본 적은 없다.(없는 것 같다.)

그 동안 세 집 모두 여러 주인들이 바뀌었다. 안타깝게도 크게 돈을 벌어 그 업을 그만 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최근에 세 집 모두 성황 중이라는 이라는 이야기가 들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세 집 모두 나름의 특성을 살려 독특한 한국식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한 집은 전통적인 한국 음식으로, 또 한 집은 일식 전문으로, 다른 한 집은 중식형 한식으로 잘 나간다는 소문이다. 너나없이 소규모 장사꾼들이 힘들어 한다는데 듣기만 하여도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 모처럼 정말 모처럼 중국식 한식으로 이즘 잘 나간다는 식당에서 겪었던 일이다.

비록 내가 외식을 즐기지 않아 잘 가지는 않지만, 그 식당 주인은 내가 잘 아는 이다. 그러나 종업원들이야 잘 모른다.

아무튼 난 종업원이 가져다 준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시켰다. 그런데 잠시 후 내 귀에 들린 소리, “우리 지금 그런 거 안해, 바뻐 죽겠는데 뭐야…”

순간 나는 몹시 당황했다.

‘아뿔사! 저 이는 우리 부부가 중국인들로 알았나 보다.’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몹시 불쾌했다. 나는 주인을 불러 내 불쾌함을 전하려 했는데, 아내는 참자 하였다.

내 기억 속에서 최근 이처럼 불쾌한 식탁은 얼마만 이던가? 참 꼽기 힘들다.

차라리 말이 통하지 않았더라면.

가을 산책

칠순 나이에 산행을 즐기시는 이길영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었다. 히말라야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신 분에게 사실 말도 안되는 부탁을 드린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 산행은 좀 버거운 듯하니 이즈음에 걷기 좋은 산책코스 한 곳을 추천해 주십사 하고 말이다. 가급적 왕복 하룻길이면 좋겠다고 덧붙였었다.

이선생님은 French Creek State Park에 한번 가보라고 즉답을 해주셨다. 지도를 검색 해보니 집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여서 솔직히 좀 실망이었다. 늘 보던 동네 풍경을 벗어나지 못한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을 나선 후 약 10분쯤 지나자 네비게이션은 평소 전혀 다니지 않던 길로 접어 들라고 명령하였다. 그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이 선생님에게 대한 감사가 시작되었다. 가을걷이에 들어선 옥수수밭들과 목장 풍경들이 우리 부부의 시선을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가을 아침 한 시간여 드라이브 코스 눈요기만으로도 오늘 산책길 추천에 대한 감사는 모자랄 것이다.

French Creek State Park 호수를 끼고 돈 산책길과 덤으로 즐긴 사과 따기, 산속에서 만끽한 비빔밥, 돌아오는 길에 즐긴 샤핑까지, 오늘 하루에 대한 감사는 이 치부책에 남겨 갚을 날을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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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가만 생각해 보니 그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든 생각이다. 그랬다. 일년에 몇 차례씩 전화 안부를 묻곤 한 게 벌써 십 수년이 지났건만 그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나보다 한 두 살 위인 그의 목소리는 늘 넉넉했고 여유로웠다.

내가 사는 곳과 그가 사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사이의 간격이란 따지고 보면 서울과 뉴욕 사이의 그것과 별반 다름없다. 다만 그와 내가 같은 업을 하고 있다는 까닭으로 연을 맺고 지내온 사이이다. 늘 넉넉하고 여유로운 그의 목소리는 타고 난 것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그의 비즈니스나 가정사 더하여 신앙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만한 여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일 터였다.

오늘 아침 수화기를 타고 전해오는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아무 다름없었다. “아이구, 김사장님 이즈음 어찌 지내십니까?”라는 인사에 이어 그가 내게 전한 말들이다.

산불이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바로 그가 사는 동네를 덮쳤단다. 그 불로 집이 완전히 다 타버렸단다. 며칠 동안 교회와 몇 시간 거리에 있는 따님 집 등에서 피난 생활을 하다가 오늘 가게인 세탁소로 나왔단다. 다행히 세탁소는 큰 피해는 없지만, 세탁소 손님들 대다수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은 터라 가게를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단다. “어허, 이 나이에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그는 예의 그 넉넉하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기도를 부탁’한다고 하였다.

나는 위로라고 할 만한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다. 온종일 마음 한구석을 딱히 무어라 할 수 없는 묵직한 것에 억눌려 지냈다.

때론 캘리포니아나 서울이나 모두 내 곁에 있다.

이웃의 생각

“알 수 없는 김정은, 더 알 수 없는 트럼프” – 가게 손님 한 분이 내게 던진 말이다. 연일 이어지는 한반도 뉴스들을 보다가 가게 손님들에게 평화를 기원한다는 뜻으로 편지를 보냈었다. 손님 하나가 제법 긴 답을 보내왔다. 내 나이 또래인데, 전력공급회사의 중견 간부로 있다가 최근에 은퇴한 이이다.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신중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의 경험과 생각을 이 곳에 오는 이들과 함께 한다. capture-20171008-085658

너의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내 생각엔 만일 북한 지도자가 진로를 바꾸지 않는다면, 향후 몇 년 내에 한반도에서 (아마 다른 곳에서도) 죽음과 파멸의 시기가 올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것 같다. 만일 그(김정은)가 사람들의 거주지역 내에 핵폭탄을 폭발 시킨다면, 내가 어렸을 때 지녔었던 공포를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핵폭탄 대비 훈련을 여전히 기억한다. 기본적으로 그 훈련은 경보가 울리거나 버섯구름이 보이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일단 모두가 얼굴을 감싼 채 책상 밑에 들어가 있으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혹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핵폭탄이 실제로 폭발하면,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부 과학자들과 그 프로젝트를 관장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영상물을 직접 본 군사지도자들만이 상황이 얼마나 참혹할지를 인식할 뿐이었다.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으로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의 희망에 한 마디 덧붙인다. — 나는 평양의 미치광이가 자신이 택하고 있는 진로가 자기 나라의 주요 하부구조 상당 부분과 자신의 국민 (자신의 강제노역자들) 다수를 불타버리게 만들 가능성이 아주 높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일본과 남한의 수많은 사람들 또한 고통과 손실을 겪게 되고, 생활양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변하게 되거나, 혹은 잃게 될 것이다. 북반구의 사람들과 모든 생명체들이 식량공급 영향, 질병, 불필요한 고통 등의 측면에서 수십년 동안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북한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람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는 세계에서 위대한 명예와 중요성을 이룩한 사람이기 보다는 자신의 나라를 파멸시킨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내 조상의 대다수는 네델란드에서 왔으며, 나머지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거의 반반이었는데, 우리의 마지막 이민 가족은 1884년에 도착했다. 미국 거주 나의 가족은 열 한 세대에 걸쳐 살았거나 살고 있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고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또한 그들 국가들이 이후 379년에 걸쳐 상당히 변했기 때문에, 우리가 떠나기 전 고국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세세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내가 알게 된 것은, 당신이나 나나 ‘어디에서 왔는지’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으며, 거의 모든 인간들은 같은 것들을 – 음식, 평안, 안정, 선택한 분야에서의 성공, 우리 지역사회에서 승인, 그리고 자녀들이 번창할 수 있는 좋은 기회 – 원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겠지만, 세계 많은 나라에서는 그러한 모든 행복의 수단을 성취할 가능성이 이 나라에서 보다 훨씬 낮다. 3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상당 부분뿐 아니라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들도 파멸시킬 수 있다. 대규모의 전쟁은 피해야 하겠지만, 그 못지 않게 두렵다. 세번째 전쟁에는 모두가 잃게 될 것이다.


 

I hope your wish comes true, but my sense is that it is becoming increasingly likely that there will be a period of death & destruction on the Korean peninsula (and possibly elsewhere) in the next few years if the leader of North Korea doesn’t change course.  If he detonates a nuclear device within range of human habitation, it will bring home the fears that I grew up within as a small child to very many people.  I still remember doing the atomic bomb preparation drills in elementary school, which essentially was crawling under our desks when the alarm sounded or a mushroom cloud was seen.  Of course, once we were all under our desks with our faces covered, nobody had an answer for what would happen next and how we would stay alive.  If a bomb actually went off, only government scientists in the Manhattan Project and military leaders who had overseen that program and viewed the films of Hiroshima and Nagasaki realized just how bad things might become.  Crawling under a desk wouldn’t have saved anybody.

So I would add another line to your hope — I hope that maniac in Pyongyang comes to realize that the path he is taking will most likely incinerate much of the critical infrastructure of his country and many of its people (his forced labor).  Many people in Japan and South Korea will also suffer pain and loss, changing or losing what they know of a way of life.  The people and all other living things in the northern hemisphere will be affected for decades in terms of food supply impacts, sickness, and unnecessary suffering.  IF that is of no importance to the person who is responsible for the future of North Korea, then he will be remembered as the man who destroyed his country rather than someone who achieved great honor and importance in the world.

A majority of my ancestors came from the Netherlands, and the rest are fairly evenly split between Ireland and Scotland, with the last our our immigrant family arriving in 1884.  Eleven generations have lived or are living here in my family of American residents, and we have lost any detailed knowledge of what our homelands were like before we left simply because we have never been back for extended visits and those countries have changed quite a bit in the subsequent 379 years.  But I have learned that it doesn’t really matter where you or I ‘come from’, nearly all of humanity want the same things:  a supply of food, comfort, stability, success at our chosen endeavors, acceptance in our community, and good opportunity for our children to thrive.  Koreans are no different than anyone else, but in many of the countries of the world the chance of achieving all those measures of happiness is much slimmer than in this country.  A third world war could ruin that for not only a large portion of humanity but also many other species on this planet.  That scale of war needs to be avoided, but I fear it may not be.  Everyone will lose in the third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