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 그 배신에 대하여

따지고 보면 연휴를 맞은 느긋함 탓이었다. 크거나 작거나 장(場)을 볼라치면 사야할 물건 목록표를 들고 다녀야 마땅할 일이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모처럼 대도시 나들이에 예정에 없던 장보기였으므로.

빵집 순례에서 넉넉히 장바구니를 채운 아내는 한국장을 보면서 내게 큰 선심을 썼다.

“여기 소주도 있고 막걸리도 있네, 골라보셔!”

그 소리에 내 머리 속은 빠르게 움직였다. 막걸리로 40년을 되돌려 볼까, 아무렴 오늘 한 잔은 쐬주 아닐까 하는 생각은 돈 계산보다 빠르지 못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막걸리는 구경도 못하거니와 소주는 2홉들이 한 병에 거금 10불은 주어야 하므로 큰 맘 먹지 않고서는 입에 대지 못하는데, 소주병에 붙여진 가격표에 우선 반할 수 밖에 없었다. 2홉들이 6병 한 박스에 24불 – 이건 거의 공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주병에 그려진 빨간 딱지라니! 이게 도대체 몇 십년 만이냐! 아내는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감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게다. 오호 빨간 딱지라니!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온 세 시간 드라이브 길에 아내는 물었었다. ‘쉬지 않고 그냥 가?

‘쉬긴 뭘…’하던 내 응답에는 예의 그 빨간 딱지의 유혹이 숨어있었다.

집에 돌아와 마주 앉은 늦은 저녁 상, 반주를 핑계로 뚜껑을 따, ‘크 한 잔’ 빨간 딱지의 소주를 입에 털어놓은 내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 “이런…..ㅉㅉㅉ “

30도 짜리 혀끝에서 목구멍까지 훅 쏘던 그 맛, 빨간 딱지 쐬주는 어디가고 복숭아 주스 맛 14도 가짜 와인 맛이라니! 오, 이 ‘처음처럼’의 사기 맛이란…

소주가 변한 것일까? 내가 변한 것일까? ‘처음’과 ‘지금’ 사이에.

아니면 ‘처럼’의 사기질일까?

아니다. 그 순간 내가 돋보기를 쓰지 않았던 탓이다.

노동과 쉼

‘노동’과 ‘근로’ – 말 하나 어찌 쓸까로 여전히 다투고 있다. 새삼스럽지 않은 오랜 다툼이다.

그런 다툼을 일찌감치 세계 노동자의 날인 May Day를 버리고 9월 첫 월요일을 Labor Day로 정리한 미국은 영악스럽다 할까?

아무려나 부지런히 일한다는 근로 보다야 먹고 살기 위해 들여야만하는 정신적 육체적 노력으로써의 노동이 썩 적합하지 않겠나? 그래야만 ‘쉼’의 뜻이 깊어지는 법. 그게 성서가 쓰여진 까닭이기도 할 터이고.

어찌 부르고, 어떤 날을 기념하던 앞서 고민했던 이들 덕에 연휴를 즐겼다.0903171913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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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들과 밤바람 맞으며 맛난 것으로 배를 채우고, 그저 일상의 이야기로 편안함을 나누며 쉼을 만끽했다. 때로 쉼에 있어 아내의 흥은 필요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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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아들 내외는 홀로이신 제 외할버지와 잠시 시간을 함께 했노라 했고, 예비사위는 딸아이를 위해 깜작쇼를 펼치며 즐겁게 했노라는 소식을 전해 왔다.

연휴 쉼을 정리하는 시간, 알량한 찹쌀떡과 아이들의 대견한 소식으로 노부모와 장인에게 건강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아직은 노동이 필요한 내일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