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북치며 춤을 추고 나는 상추를 씻고 고기를 굽는다. 오늘 저녁 내 집안 풍경인데, 이즈음 이따금 우리 부부가 저녁을 맞는 모습이다. 물론 북치고 춤추는 아내 모습은 한결 같지만, 나는 상추를 씻는 대신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고기를 굽는 대신 생선을 튀기기도 한다.
나이 육십대 중반으로 들어선 나는 아직도 꿈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철부지다. 어찌하리, 환갑 나이 아내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 것을.
아내는 더 늦기 전에 춤을 한번 추고 싶다며 춤을 배우겠다고 했다. 춤 배우러 한국에 갔다 오겠노라고도 했다.
올 봄 어느 날이던가, 아내는 동영상 두 개를 보여주며 어떤 춤을 추면 좋겠냐고 물었다. 태평무와 진도북춤이었는데 솔직히 나는 둘 다 마뜩치 않았다. 춤과는 거리가 아주 먼 내가 뭘 알아서가 아니었다.
태평무(太平舞)는 그냥 내 체질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무릇 춤이란 흥이여야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그저 만들어낸 동작 같아서 ‘아니다’ 하였다. 진도북춤은 춤으로써는 대만족이었으나 아내가 저걸 과연 흉내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를 떨칠 수 없어 차마 둘 중 어느 하나도 선뜻 집지 못하였다. 경쾌하고 빠른 춤사위가 이어지는 진도북춤을 아내가 흉내내다 자칫 자빠지거나 넘어질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내는 그렇게 진보북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까지는 아니고 주말이면 몇차례 왕복 하루길인 북부 뉴저지를 오가며 춤을 배우고 있다. 나는 운전 기사와 촬영 기사가 되어 그 길을 함께 한다. 녹화된 연습 동작들을 보며 아내는 저녁이면 춤 연습을 한다. 오늘 저녁도 그렇게 보냈다.
아내에게 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었다.
‘진도북춤은 한 잔 마시고 세상사 희로애락을 춤으로 풀어내는 그런 춤인 것 같아요.’
이제 곧 아내는 자기 흥으로 진도북춤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추게 될 것이다. 그게 춤으로써는 그저 흉내에 불과할지라도 아내의 몸짓과 맘짓은 온전히 꿈을 이루는 행위라고 나는 믿는다. 아내의 꿈과 삶에 얽힌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춤으로써.
그리고 나는 춤추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한잔 그 힘만으로도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