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언덕에

새 정권이 들어선 한국에서 전해오는 소식들을 보고 느끼는 감정들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는 기대와 설렘으로 소식들을 마주합니다만, 어떤 이들은 염려와 불안의 시선을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무릇 모든 ‘역사는 본질상 변화이며, 운동이며, 혹은 진보’라고 선언했던 어느 역사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이들에겐, 정권의 뒤바뀜이나 세상 변화는 모두 역사 발전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나아가 ‘역사란 하나님 나라의 확장사’라는 고백을 하는 이들에겐 믿음입니다.

그 모든 과정 또는 믿음을 이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살과 뼈를 저미는 아픔과 슬픔으로 곰삭은 한(恨)을 안고 이고 살아내어 역사의 맥을 이어온 사람들입니다.

반세기 전인 1963년에 시인 신동엽은 한반도 남쪽 들녘에 핀 꽃들을 보며 그 역사의 맥을 이어온 사람들을 노래했습니다.

산에 언덕에

–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2017년 6월 4일 오후 4시 여기 필라델피아에서 우리들이 모여 <승선>, <세월오적>, <잠수사> 등 짧은 영화들을 함께 보려는 까닭은 세월호 참사로 아파하는 이들이 이어가는 역사를 확인하고자 함입니다.

꽃을 보며 ‘울고 간’ 영혼들을 떠올린 시인은 되지 못할지언정, 영화라도 보며 ‘다시 피어나고’, ‘다시 살아가는’ 역사의 맥을 잇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코자하는 작은 몸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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