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아침, 희년(禧年)을 꿈꾸며

주일아침에 성서 레위기 한 장을 읽는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 레위기 25장 1-12절, (개역개정본 성서에서)

이즈음 사회보장이나 복지정책에 대한 뉴스나 의견, 주장들을 많이 볼 수 있다만, 솔직히 나는 이 분야에 대해 밝지 않다. 내가 살았던 시대의 한국사회에선 ‘사회보장이나 복지’라는 말은 불온하였다. Social security라는 말에 내가 친숙하게 된 것은 이민 후 세금을 납부하면서 내기 시작한 social security tax 때문이다. 그러나 그 뿐, 사회보장이니 복지라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근래에 내 집에 많이 배달되는 광고물로는 은퇴연금이나 은퇴 후 자산관리에 대한 것이 으뜸이다. 아마 내 나이 탓일게다. 그러나 그도 그 뿐, 내 개인적인 일로 받아드릴 뿐이지, 사회적 문제로 생각이 나아간 적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사회보장이나 복지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

이렇게 무지, 무식한 내 식견으로도 성서에서 말하는 안식년과 희년의 선포는 가히 혁명적이다. 혁명이란 이루어 질 수도 있는 일이므로, 혁명이라기보다는 부질없는 망상에 가깝다고 하는 게 나을 듯 하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으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는 예수의 말을 실천한 사내가 없듯이, 희년법이란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헛된 꿈일 수도 있겠다.

레위기를 기록했던 시대에 이미 희년법은 기억과 신앙속에 남아있었을 뿐, 이스라엘 역사나 그 이후 인류사에서 실천되었던 적도 없다. 물론 이즈음 교회 또는 대학, 공무원 사회에서 안식년이니 안식 휴가니 하는 말과 휴가제도를 시행하고는 하지만, 엄밀한 뜻에서 성서에서 선포하는 안식법과는 거리가 멀다. 희년에 이르면 여전히 성서속에만 남아있는 사어(死語)에 불과하다.

이쯤 머리 속에 남아있던 신문기사 한 토막을 떠올린다. 한국 문재인 정부가 소액, 장기연체 채무 를 탕감하겠다는 기사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탕감 대상 채권은 1000만원 미만의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이다. 사실상 소멸시효가 완성된 회수 불능 채권으로 볼 수 있다. 그 규모는 약 11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내각이 구성된 이후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회수 불능 채권 1조9000억원을 소각하기로 했다. 대상자는 43만7000여명이며 1인당 435만원 정도의 부채가 사라지게 된다.>

지난 달 조선일보 기사 일부이다. 이 기사에는 <선진국 사례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일반 서민들의 부채를 일괄적으로 탕감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전문가 의견도 달려 있다.  ‘국가가 나서서 빚을 없애주면 혜택받는 이들은 좋겠지만, 그럼 그 동안 열심히 빚을 갚아 온 사람들은 바보냐?’,  ‘그럼 이제 누가 빚을 갚으려 하겠느냐?’며 사회 전반에 퍼질 도덕적 해이를 염려하는 이들의 의견들도 있다.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철저한 쉼, 모든 빚의 원상회복, 이자없는 대부, 되무를 수 있는 법” 등등을 선언하고 있는 성서의 희년법은 아주 깊은 전제를 달고 있다. 바로 참회와 자유 정신이다.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희년을 선포하는 첫날에 해야 할 일은 바로 희년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참회하며 뿔나팔을 부는 것이다. 희년(禧年) 곧 기쁨의 해는 히브리말로는 ‘쥬빌리(Jubilee)의 해’이다. 쥬빌리란 ‘수양의 뿔’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희년을 선포할 때 수양의 뿔로 된 나팔을 분데서 유래한다.

개인이나 사회 공동체가 옛 빚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할 때 전제되어야 하는 것들이 바로 참회와 속죄,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는 기쁨과 자유의 나팔이다.

하여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발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 성서의 선포이며, 이를 믿는 이들에게는 역사속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나아가 현실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는 일이 된다.

현실에서 희년이 선포되지 못하는 까닭은 그 뜻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비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천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못가진 자, 빚을 탕감 받은 자들의 참회와 가진 자, 빚의 탕감을 실천할 수 있는 권력자들의 의지가 함께 힘을 모아 희년 곧 쥬빌리의 뿔나팔을 불어 제낄 때 희년은 유토피아가 아닌 오늘의 일로 다가설 수도 있다고 믿는다.

사회보장과 복지 정책의 문외한인 내가 살았고 살고 있는 한국과 미국은 이 분야에선 후진국이라 하겠다. 아마 나 같은 문외한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나마 퇴임 이후에도 많은 신뢰를 얻고 있는 오바마나 이제 막 시험대 위에 오른 문재인처럼 ‘사회 정의’에 대한 고뇌 깊은 권력자들과 참회와 속죄를 전제로 서로를 용납하는 시민들이 함께 불어 제끼는 뿔나팔 소리로 세상은 조금씩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한국 대통령의 방미 뉴스에

당신이 뉴욕 또는 LA, 아니면 시카고 어디쯤 살고 있다 치자. 그런데 텍사스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여럿 다친 큰 사고가 났다고 하자. 그리고 며칠 후 당신은 한국에 있는 지인이나 친척의 안부전화를 받는다. ‘미국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괜찮으냐?’고 묻는 전화 말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아제 개그를 하느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만, 실제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게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살아온 연식이 제법 되시는 분들은 한국에서 있었던 이런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 갔다가 한 두어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혀 꼬부라진 소리로 한국 말하는 코미디 말이다. 코미디가 아니라 실제 그런 이들도 있었다. 1960, 70년대 쯤에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내가 이즈음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최근 한국 뉴스를 보면서 이런 옛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믿게 된 것인데, 특히 한국 TV 뉴스 가운데 해외 특파원들의 말투를 유심히 듣고 난 후에 굳힌 생각이다. 내 믿음이 옳고 그름을 당신이 판단하고 싶거든 한국 TV 뉴스 중에 해외 특파원들(일테면 뉴욕, 워싱톤, LA, 런던, 파리, 동경 등등 어디라도 좋다)의 말투와 억양을 유심히 들어 보시라.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쉽게 눈치채게 될 것이다. 뭐가 다르냐고?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말투와 억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더구나 한국내 아나운서나 앵커들의 말투와 억양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다시 옛날 코미디로 돌아가자. 당시 이어지던 우스개이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빠다 바른 소리로 한국말하는 이의 뺨을 치면 바로 김치 냄새나는 한국말이 튀어 나온다던 이야기인데, 그 우스개 역시 지금도 여전히 통하지 않을까 싶다. 분명 연습했다 싶은 해외 특파원들의 말투와 억양 역시 뺨 한 대만 치면 그들의 평시 억양과 말투로 되돌려 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때 언론사를 기웃거렸던 경험 탓에 워싱톤 주재 특파원들의 취재환경이나 그들의 행태에 전혀 문외한은 아니다. 단언컨대 현지인 출신이 아닌 한 평소 억양과 말투가 한국인들과 다른 이들은 없다.

그런데 왜 특파원 뉴스를 전하는 그들의 말투가 독특할까? 답은 간단하다. 뉴욕, LA, 시카고, 텍사스를 뭉뚱그려 동일한 미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저 친구는 전문가이므로 나와는 다른 말투와 억양을 써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다. 해외 특파원쯤 되면 뭔가 달라도 크게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이들도 있다. 더하여 의도적으로 그런 독자나 시청자들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언론사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사실 억양이나 말투 같은 형식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그 형식 속에 담긴 내용들이 가짜이거나 거짓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인데, 이때 형식은 거짓이나 허위를 위장하는 수단이 된다.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미 행사를 앞두고 수많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늘 그렇듯 한국의새로운 권력자가 첫 번 째 방미를 하면 동포사회도 이런저런 이야기거리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 사람들이란 수십년이 지나도 매양 한가지 타입의 얼굴들이다.

이제 앞으로 두어 주 동안 이른바 특파원들이 전하는 무수한 뉴스들이 쏟아질 것이다. 때론 빠다칠한 억양과 말투로 사실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그들의 이해에 맞춘 소설들이 뉴스로 둔갑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없다. 빠다 칠한 소리로 한국말하는 이들의 뺨을 후려치는 시민들이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197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돌출행동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이 한반도와 미주에 사는 동포들에게 위안이 되는 뉴스들이 넘쳐나기를 빌며.

아버지날에

아이 사는 모습을 보노라고 모처럼 뉴욕에 다녀왔다. 달포 전에 잡은 계획인데 오늘이 Father’s Day인줄은 그땐 몰랐었다. 하여 엊그제는 아버지와, 어제는 장인과 잠시 시간을 가졌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하늘이 잔뜩 찌푸렸다. 비가 오락가락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올라가는 길에 딸아이에게 만일 비가오면 Metropolitan Museum을, 날이 좋으면 Central Park에 가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날씨는 걷기에 딱 좋았다. 걷자면 배가 든든해야 하는 법, 좀 늦은 아침 북어 콩나물 해장국으로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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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ropolitan Museum – 딱 30년 전에 이곳을 왔었다. 그 때는 아버지와 함께 였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온 오늘은 나는 그저 쫓아다니면 족했다. 묻고 길을 찾고 안내하는 것은 딸아이가, 돈내는 일은 아내와 딸의 일이 되어 내가 할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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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많이 바뀌었다. 우선 그땐 딸아이가 아직 세상에 없었다. 아내는 갓 서른 청춘이었다. 그때만해도 아버지 걸음은 빨랐다. 박물관엔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마침 그 전시관을 돌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아들과 며느리가 Happy Father’s Day 문안을 전하는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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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셋을 이용해 전시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Audio Guide랄지, 아주 작은 방일지라도 한국관이 따로 설치되어 있는 것 등도 30년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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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뉴욕 지하철이다. 새로 연장된 구간의 지하철은 서울만큼 깨끗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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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다 된 딸아이는 제법 맛있는 빵집 위치를 꿰차고 있었다. 우리는 빵과 커피를 들고 Central Park의 느긋한 오후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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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춤 – 그 점 하나.

토요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6.10 항쟁 30주년 기념 행사 녹화 영상을 보며 세월을 뒤돌아 보았다. 그 때 그 수많은 인파 속에 나도 점 하나로 서 있었다. 그 무더위를 뒤로 하고 그 땅을 떠났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이민 30년. 참 많이 변했다. 내가 느끼는 그 세월의 모든 변화들을 감사로 받아 드리고 싶다.

환갑 나이가 된 아내가 느닷없이 ‘진도 북춤’을 배워야겠다고 선언한 것은 올 초의 일이었다. 난 ‘저러다 말겠거니’했다. 아침에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며 무릎이 시큰거린다는 아내가 그 일을 저지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30년 전 아내는 한풀이 춤도 탈춤도 추곤했다. 그러나 그건 30년 전의 일일 뿐.

그러다 오늘 나는 왕복 300마일 ‘진도 북춤’을 배우러 가는 아내의 운전기사였다.

두 시간 춤을 배우고 난 뒤 아내가 물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 동안 너나없이 모두가 그 물음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30년 전 한풀이 춤을 추었던 아내는 이제 어느 날엔가 진도 북춤을 출 것이다.

그랬다. 30년이란 그저 시간의 흐름 가운데 하나의 점일 뿐.

그 점 하나에 대한 감사가 이어지는 밤에.

모처럼 문화생활 – 신에게 가까이

<4월 16일 이전에도 세상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지옥이었고, 우리는 세월호 탑승객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비로소 끔찍하게도 잔인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떴다. 생명과 안전보다 돈과 이윤이 우선하는 세상을 보았다. 부패한 정치권력의 무능과 무책임을 보았다. 왜곡과 오보를 남발하는 언론의 현실을 보았다. 그리고 총체적으로 국가가 실종되었음을 보았다. 우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철저히 묻어버리고 은폐하며 억압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우리는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이다.>

‘4.16연대’라는 단체가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고자 선포한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 규약>에 있는 글의 일부이다. 자신들을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라고 규정한 이들이 6편의 독립영화들을 제작했단다. 이름하여 <망각과 기억2 : 돌아 봄>이라는 주제로 만든 영화들이란다.

나는 어제 필라델피아에 올라가 그 여섯 편 가운데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첫번 째 상영된 영화 <승선>은 세월호에 승선했다가 ‘생존자’라고 분류되어진 한 사내의 이야기였다. 그랬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후, 그는 분류되어 버린 인간이 되었다. ‘일반인’ 그리고 ‘생존자’라는 딱지가 그것이었다. 물론 세상 사람 누구도 그에게 그런 딱지를 붙었다는 이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찌하리! 그는 분명 그 딱지를 붙이고 살았던 것을. 영화는 그가 그 딱지들을 떼어내는 과정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공감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이들을.

두번 째 영화 <잠수사>는 세월호를 만나 스스로 짧은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잠수사 김관홍과 그 주변 인물들을 기록한 영화였다. ‘김관홍’ – 그는 참 사내였고 참 사람이었다. 영화는 이 간단한 명제를 증명한다. 그는 타고난 그의 재능과 일에 충실하였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그의 재능이자 일이었다. 그런 그가 아파했다. 어느 순간 그가 하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 대신 ‘죽은 자를 건져내는 일’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는 끝내 절망에 이르렀다. 그나마 ‘죽은 자를 기다리는 얼굴들을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 자신을 바라본 까닭이다. 영화는 잠수사 김관홍의 잃은 아내와 아이들을 쫓아간다. “공감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이들을.

세번 째 영화 <세월 오적(五賊)>은 세월호 참사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던 다섯 권력 기관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바로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청와대, 해수부, 해경으로 대변되는 행정부권력, 남재준이라는 이름으로 우스개가 된 정보기관 국정원, 조중동, 한경오, KBS, MBC 등등의 언론, 그리고 국해가 되어버린 국회, 이 다섯 권력의 축들의 그 때 그 모습들을 기록한 영화이다. 그들을 고발하는 카메라의 눈 역시 “공감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이들의 것이었다.

나는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들이 만든 세 편의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면서 안도와 희망과 섭리를 보았다.

안도(安堵) – 지난 달 한국의 정권이 바뀐데서 온 안도였다. 영화를 보며 지난 달 정권이 바뀌고 난 후에 세월호 유가족들과 잠수사 김관홍 가족들이 느꼈을 안도가 내가 다가오던 것이었는데, 나는 그 순간 이 안도의 시간들이 오래 이어지기를 기도하였다.

희망 – 희망보다는 소망이 낫겠다. <세월 오적(五賊)>으로 명시된 이른바 권력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 지경을 넘어, 권력의 이름으로 무참히 짓밟혔으나 하소연은 커녕 숨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스러져 간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이제야 마련되었다는 생각에서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들이 만들어낸 세상이다. 멀리는 제주 4.3 항쟁에서 가까이는 광주 항쟁까지. 이제는 목격자들과 증언자들이 큰 숨으로 제 소리를 낼 세상이 되어야한다.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더는 오적(五賊)으로 불리우는 권력들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소망과 희망으로.

그리고 섭리 – 예수쟁이인 나는 결국 성서로 돌아간다. 지금 여기에서 아프고 한맺힌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한 법전인 신명기법전을 이야기하는 성서로 돌아간다. 모세에서 예수까지, 아니 지금 우리들의 삶에 이르기까지. 성서는 모든 법이 있기 전에 삶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 더불어’사는 삶을.

그렇다. <끔찍하고 잔인한 세상의 목격자이고 증언자>인 그들로 하여 세상은 조금은 더 성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을게다.

산에 언덕에

새 정권이 들어선 한국에서 전해오는 소식들을 보고 느끼는 감정들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는 기대와 설렘으로 소식들을 마주합니다만, 어떤 이들은 염려와 불안의 시선을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무릇 모든 ‘역사는 본질상 변화이며, 운동이며, 혹은 진보’라고 선언했던 어느 역사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이들에겐, 정권의 뒤바뀜이나 세상 변화는 모두 역사 발전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나아가 ‘역사란 하나님 나라의 확장사’라는 고백을 하는 이들에겐 믿음입니다.

그 모든 과정 또는 믿음을 이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살과 뼈를 저미는 아픔과 슬픔으로 곰삭은 한(恨)을 안고 이고 살아내어 역사의 맥을 이어온 사람들입니다.

반세기 전인 1963년에 시인 신동엽은 한반도 남쪽 들녘에 핀 꽃들을 보며 그 역사의 맥을 이어온 사람들을 노래했습니다.

산에 언덕에

–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2017년 6월 4일 오후 4시 여기 필라델피아에서 우리들이 모여 <승선>, <세월오적>, <잠수사> 등 짧은 영화들을 함께 보려는 까닭은 세월호 참사로 아파하는 이들이 이어가는 역사를 확인하고자 함입니다.

꽃을 보며 ‘울고 간’ 영혼들을 떠올린 시인은 되지 못할지언정, 영화라도 보며 ‘다시 피어나고’, ‘다시 살아가는’ 역사의 맥을 잇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코자하는 작은 몸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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