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18
제 6강 – 2 : 인문학의 주제 – 사람(Saram) (2)
♦ 오늘의 담론은 ‘동양적 사람 이해’ 혹은 ‘동양적 사람 이해의 방식’입니다.
1. 최근의 경향은 많이 변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사람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형태로 출생하여 ‘여기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존재’하면 그것으로써 일단 ‘사람’입니다.
아무리 사람 같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해도 일단 사람의 모양을 갖추고 있으면 그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의 모양을 지니고 있기만 하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동등하고 동일한 인권을 갖습니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일찍부터 사람을 실존론적으로 이해하여 왔습니다. 우리 말의 ‘사람’이란 ‘삶’과 ‘앎’의 결합이며 ‘삶을 알므로’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보는 겁니다. 삶이란 무엇인지, 산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동양인들이 자주 ‘사람이면 사람인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나타냅니다. 서양에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사람답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한다고해도 그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서구적 인간이해를 그 바탕에 깔고서 하는 말입니다. 개인주의와 평등주의적 사상은 이런 서구의 인간이해에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 동양과 서양 사이에 생기는 인간, 인간의 권리, 인간의 자유, 인간의 조건에 대한 여러가지 차이점들이 발견됩니다.
2. 먼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사람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거나 규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내면적으로 이해합니다.
얼굴은 사람의 탈을 쓰고 있어도 마음과 인격은 마치 짐승과 같은 인면수심형人面獸心形의 인간이 있다고 봅니다. 동양에서는 아무리 사람으로 태어났고 또 사람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릇 그의 생각과 삶의 행태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사람으로 등급이 먹여지고 심한 경우에는 아예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동양의 고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사람다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규정하고 설명하며 동시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는 책들입니다. 사서四書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이르고 삼경三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주역周易)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서삼경 중에서 인간에 대한 동양적 이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간추려 보려고 합니다. 사서삼경을 통한 사람공부라 할 수 있겠습니다.
3. 동양에서의 인간이해는 모든 인간을 상호 ‘관계’ 속에서 봅니다. 서양 철학은 인간을 독립적, 주체적으로 봅니다만 동양은 인간을 상호 관계적으로 이해 합니다. 서양에서의 인간은 개인입니다. 개인주의적 인간이해 입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집단적, 혹은 공동체적으로 사람을 이해 하려고 합니다.
동양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결코 독립적이거나 독단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자연, 생물과 무생물, 심지어는 존재와 비존재 까지도 포괄하는 일체 모든 것들 속에서 더불어 함께 존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구 문명이 주도하는 사회 구도 속에서 인간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관계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관계의 황폐화 현상’은 개인과 가정, 사회와 각종 공동체, 국가와 지구를 넘어서 전 우주적 현상으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자기만 살려고 하고, 자기 가정만 지키려고 하고, 자기 회사, 자기 사업, 자기 학교, 자기 교회, 자기 나라만 번성시키려고 안달을 하는 사이에 모두가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아주 빠른 속도로, 전 지구적, 전 우주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문학의 정신 중 하나인 동양의 ‘고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2천 5백여년 전 동양의 성현들이 가르처준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에서 오늘은 사서四書에서 몇몇 예문들을 살펴봄으로 ‘관계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4. 먼저 핵심개념부터 한마디씩 정리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대학大學의 중심 개념은 덕德입니다. 대학大學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이란 덕스러운 사람이요 가장 아름다운 인간관계란 후덕한 삶의 태도입니다.
논어論語의 핵심은 인仁입니다. 인은 긍휼과 자비를 포함하는 개인과 개인 사이를 이어주는 인간관계의 핵심개념 입니다. 인생을 어질게 사는 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매끄럽게해 주는 윤활유라고 봅니다.
맹자孟子의 중심은 의義입니다. 의란 정치적 개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인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가는 공동체 개념입니다. 의롭지 못한 어짐, 어질지 못한 정의는 모두가 잘못된 것입니다.
중용中庸의 핵심은 정도正道와 적중的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산술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균형을 마추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진리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정의롭고 아름다운 상태를 이릅니다.
바로 이 덕德과 인仁과 의義와 균형均衡과 조화調和, 이 네 가지가 사서四書의 중심개념입니다.
5. ‘대학大學’은 공자의 제자 중 하나인 증자曾子(기원전 506-436)가 쓴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증자가 스승인 공자의 말씀을 편찬하고 해설을 덧붙인 것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대학은 유교의 경전 중 하나입니다. 대학은 그 시작에서부터 대학의 목적, 유교의 목표, 사람됨의 의미를 이렇게 말합니다.
‘대학지도大學之道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친민在親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라고 했습니다. (주희는 친민親民을 신민新民으로 고쳤습니다) 이것을 대학의 삼강령三綱領이라고 합니다.
대학의 목표는 밝은 덕을 더욱 더 밝게 하는 것이며,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들 사이에 사랑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최고의 선에 도달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3가지는 결국 ‘평화로운 세상’ ‘평화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려는데 있습니다.
대학은 우리가 이 세가지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팔조목八條目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8가지가 포함됩니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입니다.
격물格物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찬찬히 살펴보고 사물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자세를 이릅니다.
치지致知란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지혜의 극치에 이르는 단계를 말 합니다.
성의誠意란 마음과 생각을 바르게 하고 의지를 굳게하는 단계입니다.
정심正心이란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고 다스리는 단계입니다.
수신修身은 글자 그대로 몸가짐 까지도 늘 단정히 함으로 수양을 쌓는 것을 말 합니다.
제가齊家란 가정에 대한 의무를 다하여 식솔들에게 평안과 화목을 주는 것입니다.
치국治國이란 그런 후에 한 지역이나 공동체나 나라 전체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평천하平天下는 드디어 그가 사는 시대와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 결론 : 이것이 동양에서 보는 이상적 인간의 모습입니다. 더불어 평화를 만들어가고 평화롭게 사는,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