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11
제 4강- 2 : 생각하기 시작하다 (Starting the Thinking) – 인문학의 출발
♦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1)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
(2) 지난 날 어떤 사람이 한 말이나 일 혹은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기억해보는 것
(3) 어떤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거나 그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 것
(4) 어떤 일이 앞으로 일어 날 것이라고 상상해 보는 것
(5)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하여 느낌이나 의견을 가지는 것
(6)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머리를 써서 헤아리고 판단하는 것
(7) 어떤 일에 대하여 사리를 분별하는 것
(참고 : 생각과 마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생각이나 마음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생각이나 마음은 똑같이 인간의 느낌과 의지를 표현하는 본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말이나 글, 그림이나 춤 같은 동작으로 그 느낌이나 주장, 의지나 결심을 일정 부분 표현 할 수 있는데 마음은 언어나 문장, 예술이나 동작으로는 그의 의견이나 결단을 충분히 표현 하기가 어렵습니다.)
♦ 서양에서는 인간들이 언제부터 생각하기 시작했을까요?
(1) 언제부터였나요? – 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 4세기 후반기에 일군의 사람들은 날마다 눈 앞에서 전개되는 자연 현상의 변화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전 까지는 눈 앞에서 전개되는 자연 현상의 변화에 대하여 두려움과 공포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숭배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런 자연의 변화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하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지?’ ‘이상한데?’ ‘아무래도 뭔가 다른 게 있어!’ 이것이 바로 자연 현상에 대해 ‘신화적 응답’만 해 왔던 사람들이 ‘합리적 대답’을 시도한 인류 최초의 변화였습니다. 소박하지만 미신에서 이성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첫 발자국은 이렇게 출발이 되었습니다.
(2) 그들은 어디에 살던 사람들이였나요? – 지중해를 생각해 봅시다. 동쪽에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북 아프리카가 있습니다. 서쪽으로 가면 멀리 스페인을 지나 대서양으로 이어집니다. 북쪽에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와 그 아래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부터 동편에 있는 에게 바다를 건너 드넓은 소아시아와 특히 이오니아 땅이 펼쳐저 있고 그 북쪽으로는 흑해로 연결이 됩니다.
여기 지금의 터키 땅 서쪽에는 밀레토스(Miletus)라고 하는 도시국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밀레토스를 중심하여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이오니아 학파’ 혹은 ‘밀레토스 학파’라고 부릅니다.
(3) 그런데 왜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이렇듯 ‘생각하기’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경제적으로 ‘먹고 살 만 했기 때문’입니다. 기원 전부터 이 지중해 북쪽에 살던 사람들이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지중해성 기후로 인한 따뜻한 날씨와 거기에 따른 풍족한 삶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는 심는대로 열매를 맺었고 밀을 비롯한 각종 곡식들과 과일들은 사람들의 생활을 부유하게 했고 여유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거기에다 앞마당 같은 지중해는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으로 각종 해상 무역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하여튼 기원전 6 세기 이후 지중해 북쪽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먹고 사는 일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부와 여유가 주어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까요? (1) 각종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도덕적으로 부패해 지게 되거나 (2) 각종 예술 – 음악과 미술, 문학 – 시와 연극을 비롯하여 스포츠가 발전 되거나 (3) 여러 가지 지적 호기심이 일어나서 학문이 발전하게 됩니다.
(4) 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 그런데 그들이 이렇듯 자연의 변화 앞에서 무엇인가 의혹을 갖고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몇 가지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그 첫째는 ‘경이로워하는 마음wonder’ 혹은 ‘호기심curiosity’ 입니다. 사람은 자연이든 사물이든 인간이든 그 무엇에 대해서든지 놀라워하고 경이로워하고 호기심의 발동되어야만 생각하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것을 흔히 ‘관심 concern’ 혹은 ‘흥미interesting’ 라고 합니다.
둘째는 ‘의심doubt’ 하고 ‘질문question’ 하는 단계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것도 물어 볼 것이 없고 물어보지 않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고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이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말 같지 않는 것을 가지고서라도 물어보는 사람이 말 되는 것을 가지고서도 물어보지 않는 사람 보다는 훨씬 더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사실 종교나 인문학이 지향하는 목표는 비슷합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겁니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상반된 방법으로 접근 합니다. 종교는 말없이 믿음으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하고 인문학은 끝까지 의심함으로 진리에 가까이 간다고 말합니다. 목표가 동일하다면 싸우지 말고 서로 ‘당신은 그 길로 가고 나는 이 길로 갈 테니까 우리 훗날 진리의 바다에서 만납시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요?
(5)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처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 Thales를 비롯하여 소크라테스 이전까지의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주로 우주와 만물의 ‘본질Arche’ 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시간이 주어지면 검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