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외식

아내와 주말 저녁 조촐한 외식을 즐긴다. 식사를 하며 내가 말했다. “혹시 우리 이거… 박근혜  탄핵 기념 외식?” 아내의 응답. “그것도 괜찮네!”

이어지는 아내의 물음. “어머니 아버지꺼 하고, 울 아버지꺼랑 시켜서 배달해 드리고 가자!” 시간을 확인한 후 내 대답. ”시간상 아버지 어머니는 늦었고, 장인 것만 하나 시켜가자구. 아버지 어머니는 내일 따로 들리자구.” 그렇게 아내는 장인 몫으로 따로 주문을 해 놓는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내가 놀라며 하는 말. “아니, 얘네들이….. 아버지꺼로 주문한게 이게 아닌데… “  이미 가져갈 음식은 테이블에 놓여 있었으므로, 아내의 화는 조금 도가 높아 있있다.

서빙하는 친구를 불러 뭔가 잘못되었다고 항의하는 사이, 매니저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젊은 동양처자였는데 그녀의 가슴에는 눈에 익은 뱃지가 달려 있었다. 노란 세월호 뱃지였다.

주말 저녁 꽉찬 테이블에 한국인(동양인)이라고는 우리 부부 밖에 없었으므로, 노란 세월호 뱃지로 연결되는 그 매니저와 우리 부부 사이의 연은 정말 남다른 것이었다.

내가 대답했다. “문제는 무슨…. 그냥 당신 가슴에 달린 노란 뱃지가 고마워서….”

그 거리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 피청구인의 법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 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주문 선고한다.> – 헌재 박근혜 탄핵심판 판결문에서

1979년 10월 27일 아침,  거리에는 호외신문들이 뒹굴고 있었다. <박정희대통령 피격서거被擊逝去>라는  대문짝 같은 제목이 달린 호외였다. 그 무렵 나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게 말이 출판사이지 생업이라고 할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어서 실제로는 준실업자 상태였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아무튼 그날 아침 출근길에서 그 호외를 마주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 출판사 사무실로 담당형사가 찾아왔고 당분간  함께 지내게 되었노라는 통보와 함께 내 동선에 늘 함께 하는 그림자가 되었다. 당시 내 집과 사무실이 모두 마포구에 있었으므로 마포서 정보과에 속한 형사들이었는데 그 중 한 명과는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종종 다니던 학교가 있던 구역인 서대문서 정보과 형사들도 손님으로 오곤했었지만, 늘 붙어다니던 양반들은 주로 마포서 직원들이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볼수록 웃음이 나온다. 도대체 이십대 중반 어린 나이, 게다가  준실업자에 다름없는 나를 감시하는 담당형사가 있었다는 사실에  나오는 웃음이다. 아무튼 그땐 그랬었다.

그리고 며칠 후  11월 3일 아침, 집을 나서려는데 일찍감치 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담당형사 둘이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다”며 나를 막아섰다. 그들과 꽤 긴 흥정 끝에 나는 그들과 함께 광화문 비각쪽 거리에 설 수 있었다.

그날은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 날이었다. 집을 나서지 못하게 막는 담당형사들에게 “이건 참 역사적인 날이다. 당신들이나 나나 그 역사적 현장에 함께 서 있다는 것만 하여도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냐? 내가 도망칠 일도 아니고 당신들과 함께 서서 그 현장을 보고  다른 일 안하고 누구도 만나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될 일 아니냐?”

그렇게 우리들은 광화문 사거리 비각쪽에 서서 박정희 장례행렬과 그곳에 인산인해로 모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날 광화문 거리와 그곳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몇해전이던가 김정일이 죽어  장례행렬을 이루던 평양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던 일이…. 적어도 내 기억엔 김정일 장례행렬이 이어지던 평양거리와 1979년 박정희 장례행렬이 있었던 서울 광화문 거리 모습은  거의 똑같았다.

바로 며칠 전 자기 딸 나이 또래 젊은 처자들을 앉히고 술마시다 부하의 총에 정말 말같지도 않은 죽음을 맞은 박정희는 그날 그 거리에서는 왕을 넘어 신이었다. 그렇다. 이제 내 이 나이 60대 중반, 이 세월에 이르기까지 그는 신이었다.

광화문 거리는 박정희 만큼이나 내겐 추억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던 해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치하에서 초, 중, 고, 대학을 마치거나 다니고 군생활을 했다. 내 어리고 젊은 시절 추억은 모두 그 시절의 일들이다. 광화문 비각에서부터 내자동, 청운동, 효자동에 이르는 거리는 골목골목들을 기억할 만큼 내겐 숱한 추억들이 묻어있다.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나는 그 거리를 등하교길로 오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6년, 해가 저물 무렵부터 광화문 그 거리를 매운 사람들은 2017년 3월 마침내 신의 형상을 부수기 시작하였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 피청구인의 법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 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2017년 헌재의 판결문이 1979년 10월 김재규가 쏜 총알 대신 그때 박정희를 향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

오래 전에 떠나 온 그 거리에서  전해지는 소식에 꿈이라도 꾸어보는 것이지만, 이제라도 신의 형상을 한 우상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너, 나, 우리라는 사람이 설 수 있는 광장, 나라, 공동체로 나가는 걸음을 내딛는 소식에 그저 들뜬 마음으로.

 

이민(移民)과 시민(市民)

초기 미국의 정신 가운데 한 사람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가 그의 글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에 남긴 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어는 때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군인들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저주받을 짓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원래는 모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존재인가? 도대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어떤 사악한 자가 부리는 움직이는 작은 요새나 탄약고인가?

이 나라 국민은 노예 소유와 멕시코에 대한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설령 그렇게 하여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아마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지겠지만, 옳은 쪽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목숨을 걸지나 하지는 않는다. 옳은 쪽에 투표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사람들에게 희미하게 표명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내맡기려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다수의 힘을 통해 승리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오로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라 좋건 나쁘건 여기서 살려고 온 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으며 그 중 어떤 일만 하면 된다.>

우리들은 이 땅의 이민자이자 이 땅의 시민입니다. 물론 서로 다른 다양한 처지와 모습으로 삽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든 마땅히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삶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위해 따르는 의무 또한 다하며 삽니다.

우리 시대의 자유인 작가 유시민이 최근 개정판을 낸 <국가란 무엇인가>에 쓴 맺음말 가운데 남긴 말입니다.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 있는 국가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혼자 힘으로 훌륭한 국가를 만들지는 못한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다. 어떤 시민인가? 자신이 민주공화국 주권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것과 같은 똑 같은 무게의 자부심을 느끼는 시민이다. 주권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이며 어떤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잘 아는 시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이다. 그런 시민이라야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시대를 고민하며 사는 필라델피아 친구들이 뜻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잘 알려진 정학량변호사가  이 땅을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늘 우리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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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질문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6

제 2강 – 3 : 무엇을 ? (What ?) – 다시 사람을 묻는다

8. 둘째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휴매니즘(Enlightenment Humanism)인데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인본주의 인문학(人本主義 人文學)’ 혹은 과학주의 인문학, 실증주의 인문학 등으로 부를수 있습니다. 이는 르네쌍스 이후 꾸준히 상승되어 온 인간 이성의 절정기에서 태동된 인문학입니다.

‘이성적 동물로써의 인간’이 우주와 만물의 주체이고 이 인간을 인간되게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라고 보았던 시대입니다.

시대적 배경을 모르면 그 시대의 사상을 알 수 없습니다. 18세기는 한 마디로 ‘혁명의 시대’입니다.

크게는 두 가지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영국을 중심한 산업혁명 입니다(The Industrial Revolution). 18세기 중반 부터 19세기 초반 까지 이어진 과학, 기술의 혁신과 이에 따른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대한 대 변혁 운동입니다.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은 Arnold Toynbee 입니다. 산업혁명은 역사 이후 인류가 오랫동안 생존의 방식으로 여겨왔던 수렵과 농업 경제와 수공업 체제를 공장, 공업, 기계산업 체제로 전환 시치고 거기에 따른 ‘전문화’와 ‘분업화’를 촉진 시킨 혁명적 전환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산업혁명이 가능하게 된 데는 그 이전에 괄목 할 만한 몇 가지 과학기술의 발명과 발견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 첫째는 신소재의 발견 입니다. 종래에는 나무나 숯을 통해서 얻어드렸던 에너지를 석탄과 구리 등 광물 자원에서 얻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이 새로운 에너지를 통하여 증기기관과 방적기계를 발명해 내고 석유 재품과 전기 에너지가 발전 되었습니다. 셋째는 교통과 통신의 발전이 가속화 되었습니다. 증기 기관차, 증기 기선, 자동차, 전신, 라디오 등이 연이어 발명 되었습니다. 넷째는 생산 체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적은 인력을 가지고 높은 생산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섯째는 노동력의 전문화와 분업체계가 형성 되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Richard Arkwright, James Hargreaves, 킹덤 브루넬(Brunel),새무엘 크롬튼 등이 각종 형태의 방적기계와 James Watt가 증기기관을 발명해 냄으로 각종 제철, 제강 산업과 석탄을 통한 제련 기술 등으로 산업혁명의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산업혁명은 이런 여러가지 요소들과 함께 이루어지게 된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떠러진 것이 아닙니다.

한편 산업혁명의 영향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부분이 있습니다.

긍정적  부분은 그 이전의 정치-경제적 봉건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적 산업사회를 이루게 된 것 입니다. 종래의 지주계급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신흥 산업 브르조아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농노사회는 사라지고 새로운 도시 임금 근로자 계층이 나타났습니다. 더 나아가 이와같은 경제구도의 변화는 귀족들과 지주들의 지배 계급을 무너뜨리고 신흥 브르조아지인 중산층 노동자 계급을 통하여 민주사회를 향한 교두보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마침내는 보편적 선거제도를 통한 시민 혁명의 불을 지피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시민의식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산업혁명은 어두운 측면도 만들어 냈습니다. 기술의 혁신과 공업화는 인간과 사회를 비인간화시켰 습니다. 도시화와 거기에 따른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났 습니다. 환경 오염, 인권의 탄압, 장시간의 노동(산업혁명 초기에는 최저 노농 시간을 하루 12 시간으로 했다), 임금의 착취, 여성과 아동의 노예화(어린이는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시킬수 없다는 법), 성적 착취, 전염병 등 세상을 참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시대 영국은 이런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실업자의 급증과 사회 범죄의 증가를 새로운 식민지 개척으로 연계시켰으나 결국은 칼 마르크스를 중심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두번째 혁명은 시민혁명입니다. 이는 초기 영국에서 일어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Bloodless Revolution)과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은 물론이고 이후 미국의 식민지 독립운동에 이르는 일체의 절대왕정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적 시민사회를 세워나간 정치적 민주-인권운동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 입니다.

잉글랜드에서 ‘왕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다스리지는 못한다’라는 선언은 의회의 승인이 없이는 절대 왕권이라 해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불란서 혁명은 세금과 착취와 물가와 높은 신분제도 속에서 드디어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하면서 ‘앙시 앵 레짐’(Ancien Regime), 즉 왕권신수설에 기초했던 절대 왕정 지배 체제를 무너뜨리고 루이 14세와 16세 및 마리 앙뚜안넷을 단두대 위에서 처형했습니다.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과 베르사유 궁전을 무너뜨리고 1789년 8월 26일 마침내 ‘프랑스 인권선언’을 만들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기초로 한 이 선언은  생존권, 저항권, 소유권, 평등권, 투표권이 인간의 보편적 권리임을 확실하게 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피지배자들이 유혈 혁명을 통하여 독립과 자유를 쟁취해 냈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는 흔히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 처럼 신본주의에 대한 대칭 개념으로써 이성주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천부적 권리를 회복하자는 운동에서 시작된 것 입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문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천부적 인권과 자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인간 평등의 신념을 이성적으로 깨우쳐 준 근대 인문학이 세운  쾌거 입니다.

9. 세번째는 20세기 이후의 인문학입니다. 여기에서는 두번에 걸친 세계 대전을 거쳐오면서 집단과 전체에 함몰되어온 ‘신뢰 할 수 없는’ 인간 이성에 대한 반동이 나타납니다.

18세기 이후 최고조에 이르렀던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가 모두 무너졌습니다.인간은 더 이상 이성적 존재라고 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인간화(Dehumanization)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야말로 이제는 사람다운 사람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질문하게 되었 습니다.

‘처음에는 신이 인간을 속였다. 그 다음은 물질이 인간을 속였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이 인간을 속였다’는 슬픈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 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거쳐 키엘케골, 하이덱거, 야스퍼스 등의 실존주의자들과 수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그래서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개인과 주체를 새롭게 보기 시작한 이 시대의 인문학은 ‘인간주의 인문학’으로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를 우리는 Humanistic Humanism이라고 부릅니다. 싸르트르, 까뮤, 하버마스, 글리크, 리프킨, 릿쩌, 푸코, 촘스키, 싱어 등등 많은 현대의 지성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입니다.

‘인간은 노예다. 인간에게는 참된 자유가 없다. 인간은 모두가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물질의 종이고 권력의 노예다.’ 이것이 우리 <시드니 인문학 교실>이 함께 고민하면서 풀어가야 할 숙제 입니다.

  1. 맺는 말 입니다.

서구 인문학의 세 가지 큰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 르네쌍스 인문주의에서 출발하여 (2) 계몽주의 인본주의를 거쳐서 (3) 마침내는 20세기 인간주의로 이행, 발전, 변화되어 온 과정을 말씀드렸습니다.

핵심을 거듭 강조 합니다.

서구에서의 인문학은 그 앞에 어떤 형용사나 접두사를 붙인다 하더라도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주제 입니다. <사람공부>가 서구인문학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공부가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소포클레스Sophocles(B.C.497-406)는 그의 비극적 희곡 안티고네(Antigone)에서 말합니다. ‘세상에는 이상한 것이 참으로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것이 사람이다’

인간 스스로 인간을 알려는 탐구는 수천년 전 부터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소포클레스가 말한 그 ‘이상한’에는 풀어야 할 많은 의문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상한’은 낮선, 일반적이지 않은, 종잡기 어려운, 판단하기 어려운, 신비한, 등 여러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공부>! 정말 어려운 작업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인간을 알기 위해서 인간들이 남겨놓은 인간의 생각, 말, 글, 그림, 노래, 동작 등 모든 흔적과 자취를 공부하는 각론에 들어서게 됩니다. 어서 우리 <시드니 인문학 교실>에도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의 발제자들이 준비되기를 기대 합니다.

             Comments & Question

             Sharing Time : –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 일부 기독교 신학자들과 목사들 중에는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대립개념으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인본주의의 반대개념은 물질주의이고 신본주의의 반대개념 역시 물질주의입니다.

신본주의자들이나 인본주의자들은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힘을 합하여 물질주의, 세속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주의자들과 대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적을 잘못 선택하고나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어떻게 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 그 핵심은 물질 지상주의에 의한 인간성의 상실 혹은 비인간화와 이에 따른 인간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 현상 입니다 – 우리 인간성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주의적이고 탐욕적인 이기적 유전자를 극복해 내고 진정 자유와 평등,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인간은 인간답게, 신은 신답게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5

제 2강 – 2 : 무엇을 ? (What ?) – 전환의 시대

6. 서구 인문주의의 역사적 흐름은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철학의 시대를 넘어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시대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가지 인문주의 사조들이 있어왔지만 , 이제 우리는 르네쌍스 시대의 인문학, 계몽주의 시대의 인문학, 그리고 20세기의 인문학의 내용과 성격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7. 첫째는 15, 16세기에 시작된 인문학으로 르네쌍스 휴매니즘(Renaissance Humanism)입니다. 우리는 이를 ‘인문주의 인문학(人文主義 人文學)’이라고 부릅니다.

인문주의 인문학은 중세 스콜라철학에 대한 반동입니다. Thomas Aquinas에 이르러 절정에 오른 Scholar 철학은 모든 학문을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신(形而上學的 神)에다 집중 시켰습니다. 그야말로 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이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형이상학적 하나님은 얼마든지 이성적, 논리적으로 그 존재와 활동이 증명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여기에는 현재도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신학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여튼 중세 천년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알수도 없는 신을 중심 삼아 왔는데 르네쌍스 인문주의는 모든 학문의 촛점을 이 형이상학적 신으로 부터 눈에 보이는 현실적 인간 세상으로 바꾸었습니다. 눈 앞에서 변하는 이 세상, 과학, 문화, 예술, 정치, 경제 등 실제적 인간 삶의 현실에 관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르네쌍스 인문주의에서는 고전어, 문학, 역사를 비롯하여 법과 정치, 수학과 물리학, 천문학과 지구과학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는 ‘수학이 학문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르네쌍스 휴매니즘에서는‘인간은 인간답게 생각하고 그저 인간답게 말하고 인간답게 행동해야한다’는 원칙이 강조되었습니다. 꾸미거나 숨기거나 위선적이 되어서는 않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그리고 신은 신답게’(Francesco Petrarch 1307-1374나 Lorenzo Villa 1407-1457는 인문학의 이상으로 인간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제대로 말하고 떳떳하게 행동해야한다고 주장함으로 데카메론이나 나체화 등이 출현하게 됩니다.)가 이 때의 구호였습니다.

르네쌍스 인문주의는 이후  ‘18세기 啓蒙主義 人本主義’의 기초가 됩니다. 이는 새로운 전환입니다. ‘신으로 부터 인간으로’, ‘맹신적 신앙에서 합리적 이성으로’,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억압에서 자유로 ’코페루니쿠스 Copernicus 적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사람이 사람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중세 천년을 지내는 동안 잃어버렸던 그리스의 고전을 다시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라틴어와 헬라어를 중심한 고전어를 다시 배우고 공부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 유럽에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250개를 넘었습니다. 데카르트 자신도 Jesuit에서 세운 ‘라 폴레쉬’에서 그리스어, 라틴어, 문법,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 이 전통이 이어져서 오늘날도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호주 등에서는 고등학교 과목에 Greek과 Latin어 같은 고전어를 개설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고전어 하나를 더 배운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개혁정신의 기본을 이어가자는데 있습니다.)

이리하여 르네쌍스 인문주의자들은 헤로도토스와 호메로스, 헤시오도스와 호라티우스, 아이소포스와 피타고라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전을 재발견해 내고 이를 다시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에 이어 논리학과 수사학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논리학과 수사학은 이론과 합리성과 상식의 터전 위에서 표현하고 설득하는 기술입니다. 사람을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깊게 감동 시키는 것은 감정을 움직이는 설교나 기도가 아니라 이성을 통한 설득이라고 보았습니다.

‘마음을 흥분시키지마라 머리로 이해하게 하여라!’ 사실 언어와 논리는 단순한 지식의 확대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과 품성을 넓히는 일을 합니다.

언어란 단순히 의사 소통의 도구 만이 아니라 사물의 실체와 본질을 탐구하는 인식의 수단이고 보다 더 넓은 세상을 알게해 주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하여 다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다른 글과 말을 통하여 다른 나라와 다른 사람과 다른 문화, 역사, 전통, 풍습을 알고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됩니다.  동시에 르네쌍스 인문주의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이때부터 드디어 모든 학문하는 방법론이 철저하게 과학적 터전 위에 세워지게 되었다는 점 입니다. 이는 15세기 중반 인쇄술의 발명과 그 후 이어진 물리학에서의 천체이론에 대한 새로운 학설들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 만유인력의 법칙 등과 신대륙의 발견, 새로운 화학무기의 발명 등이 일체의 인문-사회과학에 대해서도 귀납적 방법론을 요구하게 된 것 입니다. 우리가 이 시기의 정신 사조를 통칭하여 ‘르네쌍스 인문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때부터 드디어 인간이 우주와 역사의 중심에 놓여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ㅋ’와 ‘이 순간’

노부모님과 장인 어른, 누님 내외와 동생 내외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 딸과 예비 사위, 조카들과 함께 한 거한 생일상을 물린 후, 서울에 있는 큰처남에게서 축하 문자를 받았다.

내게 형제가 없어서인지, 처남 매형 사이라기보다는 동생 같은 큰처남은 늘 밝아서 좋다. 이따금 던지는 그의 농담은 유쾌하다. 오늘 그가 보낸 문자 역시 그렇다.

‘다시 한번 생신 축하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정말 세상에 잘 오셨어요. ㅋ’

마지막 ‘ㅋ’가 없었다면 정말 딱딱하고 뜬금없을 수도 있는 문자였다. 마지막 그 ‘ㅋ’ 하나가 재미와 흥을 돋운다.

‘세상에 잘 왔다’는 말은 듣기에 썩 좋기도 한 말이지만, 동시에 듣기에 참 부끄러운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ㅋ’ 하나로 그저 내가 사는 재미를 일깨워준다.

‘ㅋ’를 읽는 내 관점이다.

큰처남이 문자 ‘ㅋ’로 떠올린 피천득의 시 ‘이 순간’이다.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한 사실이다.

사람 공부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4

제 2강 -1 : 무엇을 ? (What ?) /  인문학의 정의와 역사적 흐름에 대해

1. 어떤 개념 (Concept, Name, Title, Term)을 정의(Definition)하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모든 개념에 대한 정의 속에는 그것의 본질과 지향점들이 이미 내포되기 때문입니다. ( 정치란? 경제란? 설교란? 정의란? 시와 시인이란? 교수란? 집사람이란? 결혼이란? 이런 개념에 대한 개인적 정의는 그의 생각과 사상을 나타내게 됩니다.)

2. 한자로 인문학(人文學)이란 ‘사람 人’자에‘글 文’자에 ‘배울 學’자를 씁니다. 사람 혹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글과 말, 소리와 그림, 춤과 행위(말, 글, 그림, 낙서, 음악, 시, 춤, 몸짓 등)를 포함한 일체의 인간적 발자취와 흔적, 무늬와 자국들을 추적하고 살펴보고 되새기며 그 의미를 추적하고 그것들을 체계화하여 개인과 인류 공동체에 적용해서 보다 더 나은 상태로 발전시켜 보려는 시도와 노력과 연구를 총칭하여‘인문학’이라합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출발점은‘사람’이고 인문학 연구의 내용도 ‘사람’이며 그 최종적 지향점도‘사람’입니다. 인문학은 ‘사람에 의한’, ‘사람에 대한’. ‘사람을 위한’ 학문입니다.(By the people,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3. 인문학은 ‘신학(神學)’이나 ‘천문학(天文學)’과는 구별됩니다. 신학은 ‘귀신 神’자에다 ‘배울 學’을 씁니다. 귀신을 공부하는 것이 신학 입니다. 그러나 신(神)은 배워서 알수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 크기에 神과 學을 연결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신학은 나타나 있지 않고 숨겨진 비밀스런 것들과 감히 접근 할 수 없는 신비스런 것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천문학은 ‘하늘 天’자에다 ‘글 文’자를 씁니다. 하늘, 해, 달, 별, 바람, 구름, 비, 천둥, 번개, 안개 등 모든 자연계를 관찰하여 그것들의 이치와 원인, 배후와 원리, 현상과 법칙을 찿아내어 체계화하고 거기에서 어떤 보편적인 원칙을 발견하여 지금과 내일, 개인과 인류 공동체를 보다 더 나은 상태 – 안심, 평안, 행복, 만족 –로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요, 연구요, 노력입니다.

인문학은 ‘지리학(地理學)’과도 구별됩니다. ‘따 地’자에다 ‘다스릴 理’자를 쓰는 지리학은 일차적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 땅 – 산과 바다, 나무와 숲, 강과 평야, 지하와 지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인문학은 땅에서 일어나는 개인과 가정, 사회와 국가, 인류와 공동체 등 각종 조직이 남겨놓았거나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살펴보고 분석하고 체계화하여 그 속에 있는 어떤 보편성있는 원리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여 개인과 인간 사회를 보다 더 의미있고 행복한 상태로 발전시켜 보려고합니다.

구체적으로 인문학은 인간을 중심하여 인간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만들고 남겨둔 것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취급하는 주요 대상들은 다음과 같은 6개 분야 입니다.

(1) 언어학 –초기에는라틴어와 헬라어를 포함하는 고전어가 중심이었고 요즘은 현대의 언어철학도 포함된다.

(2) 미학 – 음악, 미술, 춤, 연극, 영화, 드라마 등 공연예술을 포함한 일체의 예술 분야.

(3) 문학 – 시, 소설, 수필, 희극, 비극 등 모든 문학작품.

(4) 역사학.  (5) 종교학(신학 포함).  (6) 철학.

4. 그러므로 인문학에서는‘人’ 곧 사람이 ‘文’이요 ‘글’이라고 봅니다.

人이 文이고 文이 곧 人입니다. 여기에서는 목적과 방법, 대상과 주체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연구하는 사람과, 동시에 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동일화 합니다. 프로타고라스가 인간을 만물의 척도 – 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 로 보고 이어서 소크라테스가 철학의 중심 과제를 자연에서 인간으로 설정하여 ‘너 자신을 알라’고 하면서 하늘을 향했던 손가락을 인간에게로 방향을 돌린 것이 바로 인문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5.서양 철학에서 ‘인문학’이란 라틴어의 Studia Humanitatis 를 직역한 것입니다. 영어로는 Study of Humanities 입니다. 어색한 말이긴 하지만 ‘휴매니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 철학사에서는 이 휴매니즘학, Humanitatis의 개념을 아주  다양하게 이해하고 해석해 왔습니다. 세분화하면 르네쌍스 휴매니즘, 계몽주의 휴매니즘, 인간주의 휴매니즘을 비롯하여 마르크스주의 휴매니즘, 실존주의 휴매니즘, 기독교 휴매니즘, 세속주의 휴매니즘 등등이 있습니다.

인문학이란 대단히 넓은 외연을 가진 개념입니다. 시대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고 여러가지 형용사를 붙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문학에는 분명한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심한 인간의 발자취, 인간의 흔적, 인간의 모습을 추적해 가는 인간학이라는 점입니다.

인문학은 인간학입니다. 신학은‘신’을 공부하고 자연과학은 자연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사회학은 사회를 탐구하고 인문학은‘인간’을 연구합니다. 인문학은 그 지향점이 인간 입니다. 예컨데 신학은 인간을 연구하면서도 신을 위해서 인간을 연구하는데 인문학은 신을 공부하면서도 인간을 위해서 신을 공부합니다.

원추(鵷鶵)와 올빼미

장자(莊子) 외편(外編)인 추수편(秋水篇) 열 네번 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혜자(혜시惠施)가 양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장자가 그를 만나고자 했다. 그 때에 어떤 자가 혜자에게 말했다.

“장자가 지금 오는 것은, 당신을 대신해서 재상이 되고자 함입니다”

이 말에 혜자는 두려워서, 장자를 찾으려고 나라 안을 사흘 밤낮으로 수색했다. 그러자 장자가 이를 알고 스스로 나타나서, 혜자에게 말했다.

“남쪽에 사는 원추(鵷鶵)라는 새가 있는데, 자네는 알고 있는가? 그 원추라는 새는, 남해를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 가지만,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무르지 않고, 귀한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단맛이 나는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네.   그런데 썩은 쥐를 얻은 올빼미가 원추가 지나가자 제가 물고 있는 썩은 쥐를 빼앗으려는 줄 알고, 올려다 보면서 꽥 하고 호통을 쳤다네. 지금 자네는 양나라의 재상자리 때문에 나에게 꽥 하고 소리를 치겠다는 건가!”

혜시와 장자, 두 사람의 됨됨이와 크기 나아가 두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의 차이를 잘 드러내고 있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아마 장자는 그 자리를 뜨면서 호탕한 웃음 한자락 날렸을 것입니다.

또한 장자(莊子) 내편(內編)인 제물론편(齊物論篇) 아홉번 째 이야기에서 장자는 “方生方死(방생방사) 方死方生(방사방생)”이라는 말로 모든 삶과 사물에는 서로 상대성을 지닌다고 설파합니다.

“方生方死(방생방사) 方死方生(방사방생)” – 곧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삶이 있다는 말입니다.

삶의 참 뜻을 먼저 깨우친 옛 선생이 후대에게 남겨 놓은 말씀들입니다.

여러 해 전에 마지막 길을 떠나시기 전에 이런 말을 남기고 간 이가 있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삶의 참 뜻을 고뇌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아주 낯선 말 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이가 비록 원추는 아닐지라도 썩은 쥐로 배를 채우는 삶은 결코 살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엊저녁에 정말 깜도 안되는 놈, 그야말로 제 배때기 하나 채울 욕심만으로 썩은 쥐새끼 입에 물고 정치 사기꾼질에 여념없는 천하의 못된 박쥐같은 잡놈이 원추를 보고 짖었다는 뉴스를 보다가 떠올린 장자 이야기 한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