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 피청구인의 법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 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주문 선고한다.> – 헌재 박근혜 탄핵심판 판결문에서
1979년 10월 27일 아침, 거리에는 호외신문들이 뒹굴고 있었다. <박정희대통령 피격서거被擊逝去>라는 대문짝 같은 제목이 달린 호외였다. 그 무렵 나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게 말이 출판사이지 생업이라고 할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어서 실제로는 준실업자 상태였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아무튼 그날 아침 출근길에서 그 호외를 마주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 출판사 사무실로 담당형사가 찾아왔고 당분간 함께 지내게 되었노라는 통보와 함께 내 동선에 늘 함께 하는 그림자가 되었다. 당시 내 집과 사무실이 모두 마포구에 있었으므로 마포서 정보과에 속한 형사들이었는데 그 중 한 명과는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종종 다니던 학교가 있던 구역인 서대문서 정보과 형사들도 손님으로 오곤했었지만, 늘 붙어다니던 양반들은 주로 마포서 직원들이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볼수록 웃음이 나온다. 도대체 이십대 중반 어린 나이, 게다가 준실업자에 다름없는 나를 감시하는 담당형사가 있었다는 사실에 나오는 웃음이다. 아무튼 그땐 그랬었다.
그리고 며칠 후 11월 3일 아침, 집을 나서려는데 일찍감치 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담당형사 둘이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다”며 나를 막아섰다. 그들과 꽤 긴 흥정 끝에 나는 그들과 함께 광화문 비각쪽 거리에 설 수 있었다.
그날은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 날이었다. 집을 나서지 못하게 막는 담당형사들에게 “이건 참 역사적인 날이다. 당신들이나 나나 그 역사적 현장에 함께 서 있다는 것만 하여도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냐? 내가 도망칠 일도 아니고 당신들과 함께 서서 그 현장을 보고 다른 일 안하고 누구도 만나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될 일 아니냐?”
그렇게 우리들은 광화문 사거리 비각쪽에 서서 박정희 장례행렬과 그곳에 인산인해로 모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날 광화문 거리와 그곳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몇해전이던가 김정일이 죽어 장례행렬을 이루던 평양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던 일이…. 적어도 내 기억엔 김정일 장례행렬이 이어지던 평양거리와 1979년 박정희 장례행렬이 있었던 서울 광화문 거리 모습은 거의 똑같았다.
바로 며칠 전 자기 딸 나이 또래 젊은 처자들을 앉히고 술마시다 부하의 총에 정말 말같지도 않은 죽음을 맞은 박정희는 그날 그 거리에서는 왕을 넘어 신이었다. 그렇다. 이제 내 이 나이 60대 중반, 이 세월에 이르기까지 그는 신이었다.
광화문 거리는 박정희 만큼이나 내겐 추억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던 해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치하에서 초, 중, 고, 대학을 마치거나 다니고 군생활을 했다. 내 어리고 젊은 시절 추억은 모두 그 시절의 일들이다. 광화문 비각에서부터 내자동, 청운동, 효자동에 이르는 거리는 골목골목들을 기억할 만큼 내겐 숱한 추억들이 묻어있다.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나는 그 거리를 등하교길로 오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6년, 해가 저물 무렵부터 광화문 그 거리를 매운 사람들은 2017년 3월 마침내 신의 형상을 부수기 시작하였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 피청구인의 법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 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2017년 헌재의 판결문이 1979년 10월 김재규가 쏜 총알 대신 그때 박정희를 향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
오래 전에 떠나 온 그 거리에서 전해지는 소식에 꿈이라도 꾸어보는 것이지만, 이제라도 신의 형상을 한 우상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너, 나, 우리라는 사람이 설 수 있는 광장, 나라, 공동체로 나가는 걸음을 내딛는 소식에 그저 들뜬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