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눈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우수 경칩도 다가고 춘분이 코앞인데 온동네가 하얀 눈으로 덮였다. 눈속에 갇혀 하루를 쉰다. 부지런한 앞집 주인은 벌써 눈을 치우고 있다만, 나는 정지용의 춘설이나 읊고 있다.
춘설(春雪)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