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고집을 버려야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7

제 3강 – 1 : 어떻게 ? (How ?) – 인문학 방법론 1

인문학도 여러가지 학문 중에 하나 입니다. 인문학은 종교적 수행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우선 학문이란 무엇입니까? – 학문에 대한 서구의 전통적 이해는 Aristoteles가 그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에 의하면 ‘학문’(academy), 혹은 ‘학문연구’(academic study)란 “자연, 인간, 인간사회에서 나타나거나(현상) 감지되거나(느낌) 경험(관찰)되거나 생각(사유와 판단)되는 그 어떤 현상, 운동, 행위, 경험, 사유, 판단, 주장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연구, 설명, 증명, 토론, 정리, 정돈, 응용하는 인간의 일체 이성적 행동”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이론적이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논증이 필요합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감정적 설교나 설득, 종교적 명상이나 기도, 혹은 주관적 자기체험을 일반화하거나 객관화 할수 없습니다.)

Aristoteles는 학문의 영역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으로 만져지지는 현상계(現象界)입니다. 즉 우리의 오관(五觀)으로 경험되는 세계가 첫 연구의 대상 입니다. 이것을 그는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고 했습니다.

Physics, 즉 눈 앞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을 다루는 물리학, 수학, 화학, 천문학, 기하학, 지리학, 의학, 농학을 비롯하여 이를 응용한 제반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법학, 등 제반 사회과학을 포함하여 모든 자연현상과 사회 현상을 다루는 학문 일체를 형이하학 이라는 이름으로 묶었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히 물리학과 천문학, 수학과 기하학에서 출발했던 형이하학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세분화 되었습니다. (의학, 농학, 정치학, 법학 등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서 같은 학문들 사이에서도 서로 소통이 않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최근엔 융합학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으로 감촉되지 않는 세계, 즉 현실적으로 경험되지 않는 분야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전면에 나타나지 않고 뒤에 있는 이면의 세계’를 Metaphysics 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물리학, 즉 physics 뒤에 meta 놓여 있는 학문 philosophy이 모든 학문의 본질을 다루는 근본학이라고 보았고 이를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 혹은 ‘제일 철학’ Proto Philosophia 이라고 이름했습니다.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은 그 접근하는 방법이 어떻게 다를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1)  2004년 Mexico만에서는 Hurricane Charlie가 Florida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Orlando시에서는 엄청난 폭리가 있었습니다. 2불 짜리 ice bag 하나가 10불로, 40불 짜리 모텔 방 하나가 200불이 되었습니다.

이 경우 미 의회와 행정부를 포함한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취 할 수 있는 조치는 ‘재난 발생 지역에서의 가격 폭리 처벌 특별법’의 제정 입니다. 이것이 형이하학의 세계에서 다룰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런데 인문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보면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은 선한가 악한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과연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인간성 속에 있는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있는가?’(M.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2) 이명박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거대한 토목공사 사업인 4대강을 개발했습니다.형이하학적 접근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력의 증가, 실업자의 감소, 산업의 활력, 국토의 개발과 같은 이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이란 한번 파괴하면 다시 복원이 가능한 것인가?’ ‘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은 우리 후손 들에게도 물려주어서 고루 함께 써야 할 인류 모두의 유산이 아닌가?’

(3) 최근 박근혜 정부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력을 비선 실세와 함께 부당하게 남용하였다는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당하여 헌법재판소의 심리에 의해 파면되었습니다.

이 대통렬 파면 과정 속에서 많은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여러가지 개인적 이해관계나 친소 관계를 따라 촛불이니, 태극기니 하면서 의견을 달리하기도 하면서도 또 법을 지키자, 법질서대로 하면 된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형이하학적 접근법입니다.

인문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의 목표는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사람은 정직할 수 없는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4)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요즘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에 나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자리 창출, 실업자 구제, 복지 수당 증액, 경제 안정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모두 정치에 대한 형이하학적 접근법입니다.

인문학자들은 ‘사람은 과연 밥만 먹고 사는가?’ ‘돼지의 행복도 행복인가?’ ‘진정한 행복과 참된 평등을 이루는 벙법은 무엇일까?’ ‘물질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가?’ 같은 것을 화두로 제시 합니다.

– 기타 우리는 Boat people 이나 asylum seeker 문제, 혹은 FTA 문제, America First, Brexit 같은 정치-사회적 잇슈들을 가지고서도 인문학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를 살펴 볼 수 있겠습니다.

모든 학문은 저마다의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에 따라서 세운 가설과 목표를 향하여 연구, 추진 하게 됩니다.

방법론은 학문 마다 다르게 마련이고 또 같은 학문 사이에서도 여러가지 차이가 있읍니다. 원리는 하나라고 하더라도 방법은 다양 합니다.(One Principle, Many Methods) 방법론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첫 출발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이나 동양적 가부장적 사고를 지닌 이들은 여기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