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와 ‘이 순간’

노부모님과 장인 어른, 누님 내외와 동생 내외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 딸과 예비 사위, 조카들과 함께 한 거한 생일상을 물린 후, 서울에 있는 큰처남에게서 축하 문자를 받았다.

내게 형제가 없어서인지, 처남 매형 사이라기보다는 동생 같은 큰처남은 늘 밝아서 좋다. 이따금 던지는 그의 농담은 유쾌하다. 오늘 그가 보낸 문자 역시 그렇다.

‘다시 한번 생신 축하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정말 세상에 잘 오셨어요. ㅋ’

마지막 ‘ㅋ’가 없었다면 정말 딱딱하고 뜬금없을 수도 있는 문자였다. 마지막 그 ‘ㅋ’ 하나가 재미와 흥을 돋운다.

‘세상에 잘 왔다’는 말은 듣기에 썩 좋기도 한 말이지만, 동시에 듣기에 참 부끄러운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ㅋ’ 하나로 그저 내가 사는 재미를 일깨워준다.

‘ㅋ’를 읽는 내 관점이다.

큰처남이 문자 ‘ㅋ’로 떠올린 피천득의 시 ‘이 순간’이다.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