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葛藤) 또는 포등(葡藤)

한때 뒷뜰 등나무와 포도나무는 내 집 자랑거리였다. 등나무는 deck의 지붕이었고 포도나무는 울타리였다. 특히 아버님이 좋아하셔서 내 집에 오실 때면 늘 뒷뜰 등나무 그늘에 나가 계시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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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 아래 내 아버님의 한 때 

봄이면 등나무 꽃과 이어피는 라이락 꽃에 취했었고, 여름이면 등나무 그늘 아래서 잔치를 벌리곤 했었다. 포도가 영글 즈음 등나무 그늘 아래서  쏘로우나 휘트먼을 읽는 호사는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 겨울이면 deck 위에 쌓인 눈을 치우며 마치 죽은듯이 앙상히 마른 등나무를 걱정하곤 했었다. 어느 해 봄이던가 등꽃이 주렁주렁 달린 뒷뜰 deck에 현판을 걸었었다.

“은혜원(恩惠園)” – 뒷뜰을 바라보거나 그 곳에 나가 앉아있을라치면 내가 느꼈던 감정을 드러낸 작명이었다. 현판 글씨는 아버님께서 써 주셨다. 그 등나무 그늘 아래서 초, 중, 고, 대학을 마친 내 아이들이, 이젠 아버님처럼 이따금 들르는 곳이 되었다.

몇 해전이던가? 거동이 불편해지신 아버님께서 내 집을 찾으시는 일도 아주 드물어지고, 아이들도 더는 자기 집이 아니게 될 무렵부터 나 역시 뒤뜰에 나갈 일이 부쩍 줄기 시작하였다.

등나무 줄기와 포도나무 줄기가 엉겨 라일락 나무를 휘감기 시작한 것 조차 모르고 한 해를 넘긴  후에야 등나무와 포도나무가 더는 은혜원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그 무렵 등나무와 포도나무는 내 은혜원을 파괴하는 무법자였을 뿐이었다.

등나무와 포도나무의 만행으로 라이락을 잃고 나서야 나는 분노하였고, 두 해 전 봄에 등나무와 포도나무 밑둥과 deck 기둥들에 전기톱을 대어 잘라내었다. 물론 “은혜원(恩惠園)” 현판을 떼어낸 일이 먼저였다.

갈등(葛藤)이 아닌 포등(葡藤)이 빚어낸 참사였다. 아니 내 게으름이 만들어낸 아픔이었다. 그렇게 휑하게 변해버린 뒷뜰을 이젠 다시 가꾸려 한다.

Deck을 다시 꾸미고 꽃나무를 심으려 한다. 글쎄… 언제 그 세월을 맞을런가는 알 수 없지만…. 이따금 찾아올 지도 모를 내 손주들을 위하여….

**** 이즈음 한국 소식을 들으며 밑둥까지 잘라낸 내 뒷뜰  등나무가 자꾸 생각나는지. 갈등의 밑둥이 아니라 갈등의 원인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기회는 어느 민족 어느 개인에게나 주어지기 마련아닐까?

비 맞으며 필라 친구들과 함께 하고 온 날 밤에.

2-2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