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가게 손님 몇 분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19세기도 아니고 이해를 못하겠어. 넌 (그들과 같은) 한국인으로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지난 주초에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과 북한 정권에 대해 묻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친절하게도 관련 기사가 실린 신문을 건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난감해진답니다. 비단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어제 AP통신은 지난 주에 특유의 격정적 언어로 쏟아낸 트럼프의 연설에 대한 팩트 체크를 확인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마약중독의 대담성(뻔뻔함?)<The audacity of hype> 제목의 그 기사 가운데 하나랍니다.
TRUMP: “To be honest I inherited a mess. It’s a mess. At home and abroad, a mess.”
THE FACTS: A mess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But by almost every economic measure, Obama inherited a far worse situation when he became president in 2009 than he left for Trump. He had to deal with the worst downturn since the Depression.
트럼프는 전임 오바마대통령으로 부터 모든 것이 엉망인 채로 혼란 투성이인 정부를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을 따지고 보면 오바마가 8년 전에 공화당 정권으로부터 물려 받았던 정부의 모습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처참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엉망으로 보는 것은 그렇게 보는 사람의 시각이라는 것이지요.( A mess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거니와 그 모든 것을 옳고 그름으로만 편갈라 나누는 일은 마뜩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히 ‘아니오’라고 할 만한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무엇인가를 우상화하는 상황이나 일을 마주할 때입니다. 그것이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될 수도 있겠지만, 역사 이래 사람들이 살아오며 깨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김정남에 대한 기사들을 훑어 보다가 눈에 뜨인 단어가 ‘백두혈통(白頭血統)’입니다. 구차한 설명이 필요없는 전근대적인 우상화로 유지되고 있는 북한체제의 실상을 전해주는 말입니다.
이에 반하여 질서와 법규를 앞세워 상징조작으로 대중의 눈을 속이는 지금의 트럼프 정권의 행태 역시 우상화의 한 범주입니다.
어떤 이념이나 질서를 앞세워 극단적으로 나(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부정하는 구조악(構造惡)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지금의 미국이나 남북한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믿음이 팽배해진 사회는 이미 우상을 이고사는 사람들의 집합체일 뿐일겝니다.
이즈음 미국사회가 겪고있는 극심한 계층 또는 집단간의 대립이나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모습들을 보면서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으로 제가 치부하는 까닭입니다. 그 싸움조차 허락치 않는 한반도 북쪽은 논외로 치고 말입니다.
미국은 현재 제가 이고 사는 세상이고, 내 인생의 전반부 30여년을 살았던 한반도 남쪽 사람들에게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믿음을 심어주어 우상이 된 이는 박정희라는 제 오래된 생각인데, 이즈음 그쪽 소식들을 보면 그 생각이 더욱 굳어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