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일을 줄일 일이지 늘일 나이가 결코 아니다. 허기사 내 주제가 그렇다는 것이지, 이즈음엔 칠순에도 새 일을 꾸미고 벌리는 사람들은 천지더라만.
지난 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나는, 한 해의 하반기가 아닌 인생의 하반기를 준비해야 할 지점을 막 통과하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반기를 준비할 시점’이라는 말을 되뇌며 첫번째로 든 생각은 욕심을 버리자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이어가되, 어느 순간에 내 뜻과는 상관없이 그만 끝나고 말지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나이에 이르렀다는 자각이었다.
딱히 신앙이 아니더라도 물리적인 나이가 종말론적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지경에 다다렀다는 내 생각이 결코 조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러던 중, 자꾸 내게 새 일을 던진 이가 있었다. 한인 세탁인들을 위한 월간지를 만든다고 나선 황주상이라는 이였다. 몇 차례 사양 끝에 결국 글 하나 써 보냈다. 그건 단지 글이 아니라, 새해 2017년에 내가 행해야만 할 일이었다.
내 세탁업 경력은 차치 하고서라도 적어도 이 업계의 정보를 일별하여 업자들 수준에 맞게 정리하여 재단하여 제공하는 일과 언어를 통한 마케팅 문제 등을 대서소 주인처럼 해 줄 수 있는 일들은 아직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대서소라도 있었으면 하는 이들에겐 말이다.
세탁소의 미래 – 그 길을 찾아서
“미스터 김도 내 나이 되보면 알거야. 움직이는게 귀찮아 진다구. 미스터 김은 아직 내 말을 이해 못하겠지만…”. 얼추 십여년 전에, 나보다 열살 정도 나이가 많은 동네 어른 한 분이 내게 건냈던 말이다. 당시에 그 말을 듣고 있던 솔직한 내 심정은 “에이, 설마… 그 나이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해, 나는 딱 십여 년 전 동네 어르신이 하시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얼추 열살 정도 아래인 내 후배에게.
이제 Social Security의 full benefit을 받을 수 있는 나이도 코 앞에 이르렀거니와, 아이들도 다 제 갈 길 찾아 나섰고, 우리 내외 둘이서 나누는 저녁 밥상은 날로 단촐해지니 움직이는게 귀찮다기 보다는 할 수 있는 한 새로운 일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하다.
아무튼 지난 해에 나는 많은 일들을 줄였다. 줄인 것은 비단 일 뿐만이 아니다. 집안 물건들도 많이 줄였다. 애초 그리 가진 것들이 많은 편이 아니였는데도 줄일 수 있는 것들이 그리 많을 줄은 몰랐다. 집안이 휑할만큼 줄였다. 그렇게 줄이고 나니 어쩌다 들르는 아이들은 집이 두배는 넓어진 것 같다고 한다.
일에 이르러 따지자면 한참 때에 비해 거의 은퇴 수준이라 할 만 하겠다. 서른 해가 다 되어가는 세탁소 일들 뿐만이 아니라, 십 수년 이어오던 한인 세탁인들과의 여러 연들도 줄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줄여서인지 딱히 급하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거의 없는 일상이 되었다.
느긋함을 만끽할 나이에 들어섰다는 자각을 실천에 옮긴 것도 지난해 일이었다. 미대륙횡단 기차를 탔던 일이다. 그 여행 이후, 이제 나는 내 인생 후반기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때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그리고 몇 가지 계획들을 세웠다. 아내를 위하여, 아이들을 위하여, 고령의 부모님들을 위하여, 무엇보다 내 자신을 위하여 이제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이 무엇인지를 찾아 보았던 것이다.
허나 삶이 살아 볼만한 까닭은 모든 삶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가 보다. 내가 새로운 삶을 계획하려고 하는 때에 장모가 먼저 저 세상으로 새 삶을 찾아 떠났다.
그 무렵에 내게 전화를 한 이가 Kleaners의 황주상사장이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거니와 통성명도 그날 전화로 처음 나눈 사이이다. 새로 시작하는 한인종합세탁전문지 월간 Kleaners에 컬럼을 부탁한다는 그에게, 이미 은퇴 수순에 들어선 나보다는 보다 활기찬 기운으로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분들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찾아오겠다는 그를 만류했다.
황사장은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로인해 나는 Kleaners에 실릴 첫 컬럼을 이렇게 쓰고 있다.
아마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누구의 기억속에라도 남아 있을 “대서소 (代書所)”라는 곳이 있었다. 혹시 그 이름이 낯선 이들도 있을까? 그건 참 좋은 일이다. 젊은 사람이 세탁업을 이어 받았으므로. 아무튼 “대서소”란 출생과 사망신고서, 혼인과 이혼신고서, 진정서, 탄원서, 고소장을 써 주는 곳, 그야말로 삶의 희로애락을 대신 써주는 곳의 이름이었다.
이 첫 컬럼을 쓰고 있는 내 솔직한 심정은 바로 “대서소”를 개업하는 마음이다. 그저 내 느긋함을 즐기며, 내 경험과 지금 내 일상의 하나인 정보를 보고 듣는 일을 나누는 그런 대서소가 된다면 그 또한 내 나이에 맞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이다.
첫 컬럼에 뭔 글을 쓸까?라는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하얀 얼굴의 여호와의 증인 한사람이 건넨 안내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How do you view the future?” 우리의 내일은? 나나 이 글을 읽는 당신 세탁소의 미래는?.
그 길을 찾는 것이 내가 이 컬럼을 이어가는 뜻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참 좋아하는 시 한편으로 이 글을 맺는다.
관점
- 쉘 실버스타인
추수감사절 만찬은 슬프고 고맙지 않다 /성탄절 만찬은 어둡고 슬프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칠면조의 관점으로 만찬 식탁을 바라본다면.
주일만찬은 즐겁지 않다 /부활절축제도 재수 없을 뿐 /닭과 오리의 관점으로 / 그걸 바라 본다면.
한때 나는 참치 샐러드를 얼마나 좋아했었던지 /돼지고기 가재요리, 양갈비도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식탁의 관점에서 /식탁을 바라보기전까지는.
Point Of View
- Shel Silverstein
Thanksgiving dinner’s sad and thankless/ Christmas dinner’s dark and blue/ When you stop and try to see it/ From the turkey’s point of view.
Sunday dinner isn’t sunny/ Easter feasts are just bad luck/When you see it from the viewpoint/Of a chicken or a duck.
Oh how I once loved tuna salad/ Pork and lobsters, lamb chops too/ ‘Til I stopped and looked at dinner
From the dinner’s point of view.
무릇 모든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그 다른 생각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가 아주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