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시간

새해 첫날을 맞기 전, 집안에 달력들을 바꾸어 건다. 이제 내일이면 2017년이란다.

신혼, 새살림에 바쁠 아들 내외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았단다. 그게 또 예쁘고 고마웠다는 노인들이 손주와 손주 며느리를 위해 준비한 것이 없다며 외식을 제안했단다. 우리 내외가 외식을 권하면 손사래를 치며 미동도 하지 않던 분들이었다. 이즈음엔 아버님 걸음걸이가 신통치 않아  집밖 출입은 아예 삼가던 노인들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내와 나는 부랴부랴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모처럼 삼대가 모여 앉아 한해를 보내는 저녁을 함께 했다.

필라에 사는 아들 내외에게 늦기 전에 부지런히 올라가라고 했는데, 가는 길에 홀로 계신 제 외할아버지에게 들려 시간을 보내고 갔단다. 나보다 나은 아이들이 고맙다.

이렇게 2016년 한 해가 저문다.

낮에는 필라에 올라가, 생각이 같아 만나면 반가운 이들과 잠시 시간을 함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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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며 손에 든 책은 장자(莊子)다.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此小年也.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동안 사는 자는 오래 사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그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루살이 버섯은 아침과 저녁을 알지 못한다. 한철만 사는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짧은 동안 사는 것들이다.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而彭祖乃今以久特聞. 衆人匹之, 不亦悲乎?

초나라의 남쪽에 명령(冥靈)이란 나무가 있는데, 5백년을 한 봄으로 삼고 5백년을 한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태고 적에 대춘(大椿)이란 나무가 있었는데, 8천년을 한 봄으로 삼고, 8천년을 한 가을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팽조는 지금까지도 오래 산 사람으로 특히 유명하다. 보통 사람들이 그에게 자기 목숨을 견주려한다면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삶과 앎과 기쁨과 행복이 어찌 시간의 길이에 달려 있으랴!

천년을 하루로 살기도 하고, 하루를 천년으로 살기도 하는 것이 사람사는 모습이거늘.

2016.12.31.

2016년 마지막 날엔…

오늘 제 이메일 함에 놓여있는 편지 한장의 내용입니다.

12-31-16“가령 말일세, 쇠로 된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절대로 부술수도 없는 거야. 안에는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이 많아. 오래잖아 숨이 막혀 죽고 말 거야.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그대로 죽음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빈사(瀕死)의 괴로움 따위는 느끼지 않아.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다소 의식이 또렷한 몇 사람을 깨운다면, 이 불행한 몇 사람에게 결국 살아날 가망도 없이 임종의 괴로움만 주게 되지.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몇 사람이 깬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지 않는가?”

위 대화는 루쉰이 글쓰기를 주저하자 계몽잡지 편집자인 그의 친구가 그를 설득하며 나눈 대화입니다. 20세기 초 식민지 열강의 혼란 속에서 루쉰은 이렇게 그의 글을 통해서 잠든채로 서서히 죽어가는 국민들을 깨우는데 자신의 몫을 다하였습니다.

제가 촛불을 드는 이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304명의 아이가 죽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 희생자 가족을 국가가 폭력적으로 억압해도 침묵하는 사회…저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기에 촛불을 듭니다.

제가 촛불을 든다고 루쉰 같은 영웅이 될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작은 촛불이 그 누군가에게 공동체를 생각하는 미세한 희망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촛불로 불타오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공동체에 무관심한 이 단단한 쇠로 된 마음을 깨뜨릴 수만 있다면 저의 몫은 차고 넘치리라 생각합니다.

2016년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필라에서도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근 마을 필라델피아에서 벌써 다섯 번 째 촛불을 든다고 하는데,  저는 한번도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리라는 생각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촛불을 들게 할 부추김도, 누군가의 단단한 마음을 녹이거나 깨뜨리려는 의도도 없답니다. 그렇다하여도 이 편지를 보낸 누군가의 소망에는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언제 어느 때나 항상 새롭게 말을 건네시는 성서 속의 하나님께서 2016년 12월 31일 단지 짧은 시간일지언정 필라델피아 챌튼햄 한아름 앞에서 그들과 함께 외치라는 명령으로 받는답니다.

끝내 철들지 못하는 제가 이따금 사랑스럽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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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옷(Wings of Clothes)

( 이 시를 지난 35년여 내 삶의 일부였던 사랑하는 장모에게 드립니다)
 
날개

이민 삼십년에 이골이 난 내 다림질
그 솜씨로 장모 수의를 다린다.

먼저 버선을 다린다

땅과 하늘 사이 때론
어제와 오늘 사이를 헤매이던 마지막 시간에
장모는 엄마를 부르곤 했다
“엄마가 엄마를 찾으니까 내가 아파”
아내는 엄마를 부르는 장모를 말하며 눈가를 훔쳤다
분단은 남북만 가른 것이 아니었다
북쪽 가족들과 갈라져 남쪽에 홀로남은 장모 나이 고작 열 두살
애초 홀로는 아니었다
고향으로 가겠다며 국군에 입대한 스무살 오빠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 뿐
그날 이후 장모는 엄마를 찾지 않았단다
마지막 시간속을 헤매던 장모는 버선발로 다가오는 엄마를 보았을 터

치마를 다린다.

치마는 장모의 자존이었다
열두살 이후 홀로된 외로움을 감싸는 갑옷이었다
열 여덟에 하나되어 육십갑자 세월을 함께 한 장인은 외아들
거기에 호랑이 같은 홀시어머니와 시누이 셋
엄마를 찾지 않았던 장모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갔다
딸 하나 아들 둘
누구랄 것 없이 모두 한수에 더해 끼 넘치는 가족이었지만
문제 없었다
장모의 치마는 모든 것을 감쌀만큼 폭이 넉넉했으므로
허나, 못내 치마 속에 감쌀 수 없는 외로움은 가슴에 숨겼을 터

이제 저고리를 다린다

언젠간 꼭 만나고 말리라
옷고름 매주고 옷깃 여며주던 엄마
장모의 꿈은 끝내 이루지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장모는 꿈을 바꾸었다
내가 엄마가 되리라고
일흔 여덟해의 마지막 한 달
장모는 그저 엄마였다
장인과 두 아들과 며느리들 딸과 사위에게
엄마를 가슴에 아프게 품지 말라고
행여
살아있는 너희들은
외로움과 그리움
그 암덩어리 안고 살지 말라고
장모는 저고리 섶에 우리들의 몫을 그렇게 저미고 갔을 터

마지막 두루마기를 다린다

평안북도 정주 아낙 최용옥
아무렴 한반도 믿음의 성지 정주 땅인데
장모는 평생 믿음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살았다

믿음 아니면 그 외로움 어찌 삭혔으랴
기도 아니면 그 긴 기다림 어찌 이어 왔으랴
찬송 아니면 그 먼 길 어찌 걸어 왔으랴

이제 내가 꿈을 꾼다
꿈이 기도가 된다
무릇 모든 기도는 이미 이루어진 것들 뿐

내가 다린 옷들은 장모의 날개가 된다
날아 날아 날아 훨훨
기다리던 엄마의 손을 잡았다

아! 이제
모녀는 하늘문을 들어섰다

이민 삼십년 도 닦듯 익힌 내 다림질
용 한번 썼다

Casket of D's dad. My lapel flower.

(I dedicate this poem to my beloved Mother-in-law who was a part of my life for 35 years.)
 
Wings of Clothes

My press, a tired routine of daily life as an immigrant for thirty years,
With the skill, I’m pressing Mother-in-law’s shroud.

First, I press beoseon1.

Between earth and heaven, sometimes
At the last moment, wandering between yesterday and today,
Mother-in-law called for mom.
“As Mom’s looking for her mom, it breaks my heart,”
Wife says, as she wipes tears from her face.
Division did not cut just the country into the South and the North.
Only twelve years old was Mother-in-law, when she became alone in the South, separated from her family in the North.
She was not alone from the start.
It’s because her twenty-year-old brother never returned after joining the army with the hope to go to their hometown.
Mother-in-law had not looked for her mom since then.
I believe that while wandering at the last moment, she must have seen her mom running to her with stockings on her feet.

I press a skirt.

Skirts were Mother-in-law’s pride.
They were the armor to cover her loneliness since she became alone at twelve.
The only son in the family was Father-in-law, with whom she was with for the sexagenary cycle from the age of eighteen.
Her tigerish mother-in-law and three sisters-in-law added to her life.
Mother-in-law, who had not looked for her mom, became a mom herself:
One daughter and two sons.
Though all of them were full of talents and fun,
There was no problem,
Because Mother-in-law’s skirts were wide enough to envelop everything and everyone.
However, her loneliness, which could not be enfolded under them, was hidden in her heart.

Now, I press a jeogori2.

Mother-in-law felt that she would never fail to see her mom again someday,
Who had tied her jeogori string and adjusted her clothes.
Mother-in-law’s lifelong dream was never realized.
At the last moment, she changed her dream,
For herself to become a mother.
In the last month of her seventy-eighth year,
Mother-in-law was simply a mother.
For Father-in-law, two sons and daughters-in-law, a daughter and a son-in-law,
Not to hold her in their hearts painfully,
By any chance,
For all of you, who are alive,
Not to live with that cancer of
Tormenting loneliness and yearning,
Mother-in-law must have left us with taking our shares in the gusset of her jeogori.

Last, I press a durumagi3.

Yong-ok Choi, a village woman of Jeongju, North Pyeongan Province,
Jeongju, certainly a shrine of faith in the Korean peninsula,
Mother-in-law had lived in the durumagi3 of faith all her life.

How could she have appeased such loneliness without faith?
How could she have kept enduring such an agonizingly long wait without prayers?
How could she have walked such a long way without hymns?
Now I’m dreaming.
Dreams become prayers.
In general, all prayers are for what has already been realized.

Clothes I have pressed become Mother-in-law’s wings.
Fly, fly, and fly freely.
She holds the hands of her mother who has been waiting for her.

Ah! Now,
Mother and Daughter enter through the gate of heaven.

My pressing skill which I have practiced as if cultivating myself spiritually during the thirty years of my immigrant life

1. beoseon: Korean traditional socks 

    2. jeogori: The upper garment of Korean traditional clothes for women

   3. durumagi: a traditional Korean outer coat

2016년 성탄에

새 식구를 맞고, 또 다른 가족이 하늘나라로 떠나는 길을  배웅하노라 지난 두어 달 동안 몸과 마음이 조금 분주했었다. 눈과 귀는 열려있어 미국이나 한국의 숱한 뉴스들은 저절로 내게 들어와 생각의 분주함을 더했다.

지나간 내 삶이 그랬듯, 습관처럼 생각의 분주함을 떨치려 성서를 손에 들곤 하였다. 2016년을 보내는 이 시간속에서 성서는 내게 이렇게 응답했다. 우리는 신의 은혜와 은총을 소유하고 마냥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신의 은총을 그냥 겸허히 받아 드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처지와 환경에 놓여 있든간에, 신 앞에서 사람(존재)이 존귀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 맘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성탄편지를 띄웠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귀한 모습으로 2017년 새 희망을 맞자고…


2016년 마지막 일요일이자 성탄절입니다.

올 한해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도 지나간 올 한 해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당신 덕분에 세탁소도 잘 운영되었으며, 제 개인적인 삶이나 가정 일들도 그럭저럭 잘 꾸려 온 것 같답니다. 그러나 곰곰히 다시 따져보면 아쉽고,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들이 너무나 많답니다.

그런 생각으로 선택해 읽은 책의 제목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한국의 불교 스님인 혜민이 쓴 책인데, 이 사람의 이력이 재미있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종교학을 공부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종교학 석사, 프린스턴에서 종교학 박사를 마친 뒤, 매사추세츠 주의 Hampshire College에서 7년간 종교학 교수로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 스님이 되었답니다. 현재는 가족을 먼저 보낸 분들, 암 진단을 받으신 분들, 장애인 아이를 기르고 있는 부모들, 힘든 취업 준비생들, 유산의 아픔이 있으신 분들 등등을 위한 무료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혜민 스님은 그의 책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에 이런 말들을 기록하고 있답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85퍼센트 정도 괜찮다 싶으면 넘기고 다음 일을 하세요. 완벽하게 한다고 한없이 붙잡고 있는 거, 좋은 거 아닙니다. 왜냐하면 완벽이라는 것은 내 생각 안에서만 완벽한 거니까요.>

<오랫동안 원하던 것을 성취하고 나면 두고두고 행복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막상 성취하고 나면 잠시의 행복감 뒤에 허탈의 파도가 밀려오고, 성공 후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낸 생각지도 못한 후폭풍이 몰려와요. 그러니 지금의 과정을 즐겨요. 삶에 완성이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의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행복해지시길, 건강해지시길, 편안해지시길. 어디를 가시든 항상 보호 받으시길. 자신의 존귀함을 잊지 않으시길.>

성탄절 아침에 불교 스님의 말로 인사 드리는 것이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지만, 비록 결코 완벽할 수는 없는 존재일지라도 우리 스스로의 존귀함을 일깨워 주는 점에서는 다 통한다는 마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Holidays!

당신의 세탁소에서


 

It’s the last Sunday of 2016 and Christmas Day.

How has this year been to you? I’m also trying to look back on my life this year. Thanks to you, I think that I have been able to manage to run the cleaners as well as my personal life and my family well enough. However, brooding over things in this year more thoroughly, I feel that many things are lacking and that this year leaves me much to be desired.

With that thought, I chose and read a book whose title was “Love for Imperfect Things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It was written by a Korean Buddhist monk, Hyemin, who has a very interesting career. After graduating from a high school in Korea, he studied the science of religion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in Berkeley, received a master’s degree in the science of religion from Harvard, and a Ph.D. from Princeton. After that, he taught at Hampshire College in Massachusetts as a professor in the science of religion for seven years. Then, he returned to Korea and became a Buddhist monk. At present, he is running a free special healing program for unfortunate people, such as bereaved families, people with cancer, parents with handicapped children, jobseekers in difficult situations, women with the ordeal of miscarriage, and so on. He is also a best-selling author.

He said the followings in his book, “Love for Imperfect Things”:

<If you think that it is 85% fine, if not perfect, move to the next work and do it. To hold on to something forever to make it perfect is not good. That’s because to be perfect really means to be perfect only within your own perspective.>

<Though you may think that you would be happy for a long time if you accomplish what you have wanted for so long, that is nowhere near the truth. Once you have accomplished it, you would face a wave of letdown after a brief feeling of happiness. You would confront the unexpected backlash which a new situation after the success will cause. So enjoy the process at the present time. It seems to me that there is no completion in life.>

And, he made wishes for the readers of his book:

<I wish for all of those who are reading this book to be happy, healthy, and comfortable, and to be protected wherever you may go, and not to forget the nobility of yourself.>

It may look inappropriate to greet you with a Buddhist monk’s words on Christmas morning. But, I’m doing so with the thought that Christianity and Buddhism have something in common: they enlighten us that though we can never be perfect, we are still precious.

Merry Christmas & Happy Holidays!

From your clea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