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대하여

계절이 깊어가는 늦저녁, 소리에 귀가 열리다.

내 업종 탓인지 더는 듣고 볼 수 없는 소리를 종종 떠올린곤 한다. 어머님이 두드리던 다듬이 소리다. 기억컨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노동의 연속이었다. 청석 다듬잇돌을 두드리는 박달나무 두 방망이 소리에 내가 아련하게 잠에 빠져들던 그 순간도 어머니에겐 노동이었다. 직업상 매일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때로 떠올려보는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인데, 솔직히 어머니의 노동보다는 내가 즐겼던 아련한 잠이 먼저 잡히곤한다.

그리고 엊저녁, 모처럼 나선 필라델피아 나들이에서 들었던 소리들이 오래 잊고 있었던 생각들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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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잊고 있었지만 들을 귀를 열어 담아드린 우리 가락, 우리 소리에는 한(恨)을 풀어내는 영험함이 있었다. 비단 노동이나 일에 지쳐 윤기없고 무력하고 재미없는 삶 뿐만 아니라, 맺힌 한에 억눌려 망가져 피폐해진 삶까지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흥과 신명의 소리, 바로 우리 소리요 우리 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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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찌든 순간만 이어지는 삶이 있으랴! 반짝반짝 빛나는 플릇, 클라리넷이 빚어낸 소리와 떠받치는 피아노 소리에는 일상과 축제, 위로와 감사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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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황(苼簧)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들숨과 날숨으로 뽑아내는 소리는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 사람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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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소리를 들으며 이즈음 들리는 흉흉한 소리들과 한맺힌 모든 소리들을 잠재우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었으면 바램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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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기억저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보내온 영상을 통해 나의 소리, 너의 소리, 우리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판은 마땅히 난장(亂場)이어야 했고 태평소와 사물놀이패들은 그렇게 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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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운영하는 416기억저장소 후원을 위해 필라세사모가 펼쳤던 소리마당은 잊고 살았던 것들을 그렇게 깨우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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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을 아침에 우리세대의 시인 김정환이 노래했던 사랑을 읊조리며.

(행사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다시 큰 박수를 보내며)

가을에

– 김정환

우리가 고향의 목마른 황토길을 그리워 하듯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내게 오래오래 간직해준/ 그대의 어떤 순결스러움 때문 아니라/ 다만 그대 삶의 전체를 이루는,/ 아주 작은 그대의 몸짓 때문일 뿐/ 이제 초라히 부서져 내리는 늦가을 뜨락에서/ 나무들의 헐벗은 자세와 낙엽 구르는 소리와/ 내 앞에서 다시 한번 세계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내가 버리지 못하듯이/ 내 또한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하찮게 여겼던 그대의 먼지, 상처, 그리고 그대의 생활 때문일 뿐/ 그대의 절망과 그대의 피와/ 어느날 갑자기 그대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져 버리고/ 그대가 세상에서 빼앗긴 것이 또 그만큼 많음을 알아차린다해도/ 그대는 내 앞에서 행여/ 몸둘바 몰라 하지 말라/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치유될수 없는 어떤 생애때문일 뿐/ 그대의 진귀함 때문은 아닐지니/ 우리가 다만 업수임 받고 갈가리 찢겨진/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듯이/ 조국의 사지를 사랑하듯이/ 내가 그대의 몸한 부분, 사랑받을 수 없는 곳까지/ 사랑하는 것은

주일아침, 맹자이제(孟子二題)

인(仁)에 대하여

孟子曰:三代之得天下也以仁, 其失天下也以不仁. 國之所以廢興存亡者亦然. 天子不仁, 不保四海; 諸侯不仁, 不保社稷; 卿大夫不仁, 不保宗廟; 士庶人不仁, 不保四體. 今惡死亡而樂不仁, 是猶惡醉而強酒.

<맹자왈 : 삼대지득천하야이인, 기실천하야이불인, 국지소이폐흥존망자역연, 천자불인, 불보사해; 제후불인, 불보사직; 경대부불인, 불보종묘; 사서인불인, 불보사체. 금악사망이락불인, 시유악취이강주. >

맹자가 말했다. :  3대(옛날에 있었던 하夏 은殷 주周 세나라)가 천하를 얻은 것은 인(仁 : 어짐)이 있었기  때문이요,  삼대가 천하를 잃은 것은 인(仁)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나라가 폐하고 흉하고 지탱하고 망하는 것도 다 그와 마찬가지 이치이다.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사람사는 세상을 이룰 수 없고, 권력을 쥔 자들이 어질지 아니하면 나라를 보존할 수가 없고, 관리들이 어질지 아니하면 정부를 보존할 수 없으며, 지식인들과 서민들이 어질지 아니하면 몸(사람)을 보존할 수 없는 법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죽기를 싫어하면서도 인하지 않음을 즐기는(이리 독하게 사는 까닭은)것은 마치 취하기를 싫어하면서 독주를 입에 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앙<얼(孼)>에 대하여

有孺子歌曰:”滄浪之水清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孔子曰:”小子聽之! 清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 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毀,而後人毀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 <太甲>曰:”天作孽, 猶可違; 自作孽,不可活.”此之謂也.

유유자가왈 :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아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아족.” 공자왈 : “소자청지! 청사탁영, 탁사탁족의, 자취지야.” 부인필자모, 연후인모지; 가필자훼, 이후인훼지; 국필자벌, 이후인벌지, <태갑>왈 : “천작얼, 유가위: 자작얼, 불가활.”차지위야.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휴에 다른 나라를 짓밟는 것이다.

[서경] <태갑>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 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신영복선생님 번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