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작은 관심을…

살며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면 제가 누리는 복이 크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장광선선생님은 그 중 한분이십니다.

그이는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이입니다. 그리고 고향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거의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필라델피아 한인사회를 터삼아 모국의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전념해 오신 모습들, 동포사회 이민자들이 건강하게 이 땅에 뿌리내렸으면 하는 바램으로 살아오신 모습들 보다 제가 장선생님께 고개 숙이는 까닭은 바로 사람과 고향을 사랑하는 그의 삶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런 장선생님은 지금 투병중이십니다. 만만찮은 투병생활 중에 제법 긴 글로 인사와 함께 지금 제가 작은 관심이라도 보내야만 될 일을 짚어주셨습니다.

장선생님의 건강을 빌면서 그이의 뜻을 단 한사람만에게라도 전하고 싶어 여기 그이가 보낸 글을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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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장광선입니다. 제 건강상의 핑계로 오랜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모든 분들이 평안하시고 각박한 경제현실을 지혜롭게 헤쳐오셨으리라 믿습니다.

유엔식량구호기구 ( World Food Program)의 보도에 의하면 8월말과 9월초 사이 큰 비바람으로 두만강유역이 수몰되어 백여명의 사망자와  4백여 실종자가 나왔고 십사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여 긴급구호가 요청된다고 합니다.

이에 유엔식량구호기구는 즉각적인 구호팀을 꾸려 식량 및 필요한 의료품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활동에 들어섰습니다.

1995년에 한반도 북쪽에 큰 홍수가 나서, 미국동포사회에서는 ‘수재민돕기 쌀 한 포대 보내기 운동 본부’를 꾸려 모금에 나섰던 일이 있습니다.

당시는 핵문제로 하여 미국과 북한이 극한 대결을 하던 때여서  우리는 과연 수재원호에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런지 몹시 마음조리며 어렵게 발을 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한 달 동안했던 일차 모금액이 십만달러를 훌쩍 넘어 끈끈한 동포애를 실감했던 일이 새롭습니다.

당시 유엔식량구호기구를 통해 성금을 전달했었는데 유엔식량구호기구 출범이래 정부출연이 아닌 민간모금으로서는 최단기일에 최대액의 성금이 접수된 기록이라며 담당자들이 크게 감동하던 일이 생생합니다.

이번에 북녁 동포들이 겪은 재해에 대해서도 우리가 동포애와 상부상조하는 아름다운 민족전통의식을 발휘하여 안타까운  우리들의 마음을 담아 수해복구지원금을 보냈으면 하는 심정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유엔식량구호기구의 보도를 직접 확인하시고 (WFP 사이트 링크 ) wfp에 직접 성금을 보내실 수 있으며

소액의 정성을 보내실 경우 편의를 위해 필라지역에서는 제가 모아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햄버거하나, 커피 한 잔 거르시고 그 돈을 동포애로 써 주십시오.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거기 묻은 동포애는 측량할 길 없이 크고 따뜻한 것일 것입니다.

제게 보내실 때는 수표나 머니오더일 경우지불인을 K Jang 으로 쓰시고 메모란에  <수재성금>이라 써서

K Jang

204 Griffith St. Salem, NJ 08079  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익명을 원하실 경우에는 <익명처리>라 써 주십시오.

모금된 모든 액수는 모금기관에 전액 전달할 것이며 모금에 참여해주신 개개인에게 그 결과를 통지해드릴 것입니다.

주변 친지분들께도 널리 알려주셔서 함께 동포애를 발휘하도록 도와주시기 앙망합니다.

장광선 삼가 드림

단 한분만에게라도 장선생님께서 품고계신 민족사랑, 사람사랑하는 마음이 전달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기차여행 –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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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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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주택가 상점들 가운데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은 미용실이었다. 도시는 치장이 필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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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서도 노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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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서 여러 다른 모습의 홈리스들을 보았다. 잠시 제 자리를 비운 다른 노숙자의 짐을 터는 모습, 남녀 노숙인들이 서로 마주보며 스마트폰을 들고 전화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 신문 경제면을 샅샅히 훑고있는 모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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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문제는 비단 캘리포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해 전, 우리 동네에서 만났던 힘깨나 쓰던 한인 노숙자 사내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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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가늠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아주 넉넉하다싶게 떠난 공항행이었지만 길위에서 꼼짝을 못하고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이 비단 우리 일행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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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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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가 청과상에서 닭한마리 값으로 사먹은 Saturn Peach(도넛 복숭아) 는 새롭고 신기하면서도 익숙한 맛이었다. 무릇 여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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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과 초를 다투며 공항 렌트카 반환지에 도착한 우리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었다는 안도에 조금전 겪었던 일들을 추억거리로 새기며 웃을 수 있었다. 주행거리 겨우 만 마일 정도였던 렌트카가 공항으로 오는 하이웨이 진입로에 들어서자 엑셀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좀처럼 놀란 티를 내지 않고 여행 내내 느긋했던 하나아빠가 당황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말 베테랑이었다.

그렇게 시간에 쫓겨 탑승게이트에 도착한 우리들을 맞은 것은 비행기 연착 안내였다. 샌프란시코에서 1시간 40분 늦게 출발한 비행기 탓에 우리는 환승지 샤롯(노스 캐롤라니아)에서 4시간을 맥없이 앉아 있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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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행 환승 비행기를 기다리던 노스 캐롤라이나 Charlotte 공항 대합실에서 나는 어느 노부부의 모습을 한동안 넋놓고 바라보았다. 노마나님은 연신 먹을거리를 남편에게 건네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무표정하게 그를 받고 있었는데, 마치 오래전 시골 버스 정거장 대합실에서 마주쳤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하였다. 짐이라야 달랑 작은 백팩 두개 뿐인 것으로 보아, 떨어져 사는 자식들 얼굴 한번 보고 돌아가는 길이 아니였을까?

나는 노부부를 보면서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Toni Morrison이 쓴 소설 “고향”을 떠올렸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이다. Frank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이유는 이  미국땅에서 흑인들이 겪어냈던 아픔 때문이었다. 남부 조지아주 로터스 출신의 흑인 Frank는 아주 어릴 적에 겪었던 일로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의 경험이란 한 흑인 남자가 백인들에 의해 생매장 당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훗날, 그렇게 생매장당한 흑인은 백인들의 놀이도구로 죽게 된 사실을 알게된다.

백인들은 흑인 아버지와 아들을 싸우게 해놓고는 내기를 벌인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그때 흑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죽이라고.” 흑인 아버지는 결국 생매장을 당하고 만다.

작가 Toni Morrison는 1940년대에만 해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었던 미국의 원시적이고 병적인 인종차별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이런 병적인 사회로부터 탈출하고자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이다.

평범한 삶의 현장에서 단지 피부색이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누군가에는 심심풀이 놀이가 되고, 또 다른 누구가는 목숨을 걸어야하는 노리개가 되어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던 세상을 겪어왔을 대합실의 노부부를 보며, 그들이 헤쳐왔을 세월들에 잠시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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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향의 길목이 되어버린 필라의 스카이라인은 반가움이었다.

그랬다. 여행 끝에서 만나는 일상은 반가움이어야만 했다.

후기 – 하나네와 우리 부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처 맛보지 못했던 중국인촌 만두를 아쉬어하며, 여행 후 두어 주 지나 필라델피아 중국인촌에서 만두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부부는 사랑하는 아들이 사랑하는 아이의 부모 Washington씨 부부와 저녁을 함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