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 삶에 있어서 머무름, 기다림, 느긋함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철학자 한병철의 생각이 담긴 책이름이다.
‘사색적인 삶이 풍요롭다.’라는 명제는 멋있다. 그러나 ‘사색적인 삶’이 시간에 늘 쫓겨 살수 밖에 없는 평범한 속물인 내겐 애초 가당치 않는 전제이므로 ‘풍요’ 역시 내가 누릴 몫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사색적인 삶’이란 진짜 가당치 않은 지적 사치일 뿐이다.
딸아이가 모처럼 주말을 함께 보내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일요일 오후, 기다리는 버스가 한시간 반여 늦게 도착하였다. 계획에 없이 딸아이와 함께 했던 한 시간 반 동안의 시간은 내게 자유를 일깨워 주었다. 아이의 직장생활과 향후 계획, 남자친구와의 이야기들을 묻고 들으며 버스가 늦어지는 시간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와 아내는 때론 아주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하다. 둘 사이에 도대체 닮은 게 무엇이 있을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거니와 너무 똑같아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히 구속되어 있지 않거나 의무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를 주는 것은 해방이나 이탈이 아니라 편입과 소속이다. 그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롭다- frei, 평화- Friede, 친구- Freund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 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친구나 연인에게 속해 있는’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 해서가 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가장 전형적인 관계적 어휘다. >
한병철이 <시간의 향기>에서 하는 말이다.
내가 딸아이가 타고 갈 버스가 늦게 도착한 것을 감사하며 자유를 생각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