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몸짓으로 박수를 치자.

나는 체구가 작고 몹시 마른편이다. 내 또래들은 나이살이니 뱃살이니 하며 고민들을 하더라만,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종종 듣는 “아니 왜 그렇게 못 먹었어?”라는 말은 철든 이후 줄곧 나를 쫓아 다닌 것이어서 이젠 웃음으로 대신한다.

그런 나는 배에 기름기가 없어서인지 끼니를 거르는 상황을 상상조차 아니한다. 하루 삼시 세끼 매일 얼추 같은 시간에 거의 같은 양의 식사를 하는 내게 한끼를 거른 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한끼라도 제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한다고 할 정도로 그 점에 대해서는 예민하다. 그렇다고 먹는 양이 많은 것은 아니다. 지나친 포만감은 매우 불편해 하는 편이라 늘 조금 덜찬듯하게 먹는다.

이런 내게 금식이나 단식이니 하는 말들은 애초 아무 연관이 없다. 내 스스로 예수쟁이라고 떠들고는 다니지만 ‘금식기도’니 ‘단식기도’니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안식일에 밀이삭을 훑어 먹는 제자를 넉넉한 눈으로 바라보는 예수의 모습이 내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들이나 단식을 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못하는 나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여길 때가 많다.

물론 아주 어릴 적엔 금식도 해 보고 단식도 해 본 경험이 있다만 모두 스물살 즈음의 일들이었고, 생활인이 되고난 후엔 단연코 단 한번도 없다.

그런 내가 오늘, 한끼도 아니고 만하루 세끼 식사를 거르려고 결심을 한 까닭은 모두 사람들을 잘못 만난 탓이다. 지금 내가 먹고 사는 일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일로 맺어진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 세월호 사건과 유가족들을 잊지말자고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가운데 미시건에 사는 사람들이 먼저 릴레이 단식을 제안했다는 것이고, 뉴욕 뉴저지를 돌아 인근 필라델피아 사람들이 연이어 동조했다는 것이다.

지난 16일부터 한국 광화문광장에서  ‘사생결단을 내기 위한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힘을 보태자고 그리 하였다고 한다.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유경근씨는 17일 단식에 임하는 글을 그의 페북에 올렸다.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저는 어제(17일)부터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사생결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사생결단을 내기 위한 단식’이라는 뜻입니다. – 중략 – 호기있게 “사생결단식”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사실 많이 두렵습니다. 2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건강 때문이기도 하고, 장기간 단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도 저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결국 두 야당이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침몰시키는 데 정부여당 못지않은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가 20대 국회의 야당에게 바라는 것은 ‘개돼지’ 취급당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정치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동안 수많은 유무명 인사들의 단식행위에 대한 소식들을 들어왔지만 거기에 동조를 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이번 일이라고 별다르지 않았다. 비록 주위에 아는 이들이 하루씩 릴레이 단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이고, 어려운 일들 하네, 수고가 많네.” 정도의 치사를 던지는 것으로 내 몫은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늦은 저녁 한 사내의 이름이 떠올랐고, 그 사내가 죽던 세상보다는 그래도 지금이 많이 나아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내가 하루 세끼 거르는 일도 좀더 나은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위해 박수정도 쳐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더해졌던 것이다.

내 또래 사내의 이름은 광주사람 박관현(朴寬賢)이다. 그는 만 29살이던 지난 1982년에 50일 동안 이어진 옥중단식 끝에 짧은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당시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시인 김남주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읊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박관현 동지에게
– 김남주

혼자서 당신이 단식을 시작하자  / 물 한모금 소금 몇 알로 / 사흘을 굶고 열흘을 버티자 /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 배고픈 저만 서럽제 그러며

밤으로 끌려가 어딘가로 끌려가 / 만신창이 상처로 당신이 돌아오자 / 돌아와 앓는 소리 끙끙으로 사동을 채우자 /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 맞은 저만 아프제 그러며

물 한모금 소금 몇 알로 / 끼니를 때우고 스무 날 마흔 날을 참다가 / 심근경색으로 당신이 숨을 거두자 /어떤 이들은 당신을 웃었습니다 / 죽은 저만 불쌍하제 그러며

그러나 나는 보았습니다 / 그들이 냉수 한 사발로 타는 목 축이고 /남은 물 그 물 손가락으로 찍어 세수하고 / 세수한 물 그 물로 양치질하고

여름이면 철창 밖으로 고무신을 내밀어 빗물을 받아 / 갈증을 풀던 그들이 / 당신의 죽음 그 덕으로 철철 넘치는 대야물에 세수하고 / 따뜻한 물로 십 년 묵은 때까지 벗기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 낮이고 밤이고 일 년 삼백예순 날 / 햇살 한 줄기 제대로 못 구경하던 그들이 / 푸르고 푸른 오월의 하늘 아래서 / 입이 째지도록 하품을 하고 /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친 듯 기지개를 켜는 것을

나는 또한 보았습니다 / 주면 주는 대로 먹는 게 제 분수라 여기고 / 때리면 때린 대로 맞는 게 제 분수라 여기고 /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었던 그들이 / 간수한테 대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 반말을 한다고 항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식이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 야단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루아침에 / 썩은 배추가 싱싱한 상추로 둔갑하여 / 그들의 식단에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박관현 동지여 / 우스운 당신 한 사람의 죽음으로 / 만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싸우는 인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2016년 이 문명의 세월에 중년의 한 사내가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 곡기를 끊고 싸우는 까닭은 허망하게 죽어 간 자식의 한(恨)과 그 한으로 응어리진 살아있는 애비의 원(怨)을 풀고자 함이 아니다. 다시는 그런 한과 원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시절 박관현에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할만큼 외로웠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유경근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를 위해 비록 하루 세끼지만 끼니를 거르며 힘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어찌 손뼉박수만으로  족하랴.

하여 나도 몸짓으로 박수를 보내려 한다. 더는 단식 같은 일이 반복되는 세상이 끝났으면 하는 바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