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진정한 이타성(altruism)을 촉진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의 관점을 취하면, 그가 가상의 인물이라도, 그 계층에게 공감을 확대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다른 생명체들의 경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들의 고통이 덜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 현상이 부분적으로나마 인도주의 혁명에 기여했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이다.” –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1002쪽에서-
내 기억력이 아직 믿을만한 것이라면 그를 두차례 만났었고, 그나마 수인사를 나눈 일은 딱 한번 뿐이다. 함께 차 한잔 나눈 적이 없으니 그가 나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 듯이 나 역시 그를 잘 모른다.
그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며 아직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있고, 엔지니어(이것도 정확치 않지만)로 회사 생활을 하며 이따금 해외출장을 다니곤 한다는 것이 내가 아는 권선생의 전부이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미국사회에서 전형적인 회사원으로 중산층에 속한 중년이다. 그저 ‘내가 아는 한’ 말이다.
그런 권선생과 나는 지난 일여년 동안 거의 매주 한차례씩 두어 시간 동안 자리를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주제는 단 한가지였는데 “세월호”였다. 그것은 온라인 화상 모임을 통해서였다. 그러므로 권선생과 나는 서로간에 아는 것은 거의 없지만, 단 한가지 “세월호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는 서로를 꿰뚫고 있다고해도 크게 엇나간 말이 아니다.
권선생은 이번 여름휴가를 가족들과 함께 한국방문으로 보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한국방문을 하는 일이 매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무렴,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민이든 해외파견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모국을 떠나 살면서 온가족이 함께 모국 방문을 하는 일이 결코 쉽거다나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리고 어제, 나는 권선생이 올 여름휴가를 보낸 한국방문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온라인 모임을 통해 함께 하는 친구들과 함께.
그는 작심한 사람처럼 한국방문 동안의 많은 시간을 “세월호”와 함께 하였던 듯하다. 광화문과 안산을 갔었고, 그 곳 풍경들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모국방문 중 내내 스친 사람들과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는 아파했다.
“광화문 광장의 분수대는 찌는 더위를 식혀주는 시민들의 놀이터였어요. 이런저런 사람들의 놀이와 쉼의 공간인 것 같았어요. 제가 뉴스에서 보듯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누리고 있는 공간은 초라하기까지 하였고 사람들의 관심도 별로였어요.”
“일부러라도 지하철을 많이 탔는데요. 제가 있는 동안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은 딱 한사람 보았을 뿐이예요.”
“안산에서는…. 그냥 휑한 커다란 주차장이랄까요, 달구어진 사막같이 열기만 있고 사람은 없는…. 제가 꽤 오래 그 곳에 있었는데 추모객은 고작 두 명 뿐이였어요.”
“제가 참 마음이 아팟어요. 걸린 현수막들이 참 오래 되었다는 느낌 때문이었지요. 저 오래된 현수막들을 처럼 사람들이 다 잊어버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도 역시 엄마였어요. 물론 생활전선 최일선에 있는 아빠들은 벌어 먹고 사는게 우선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저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들은 좀 지쳐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들은 달랐어요. 그녀들은 목숨을 내놓은 것 같았다고 할까요.”
나는 권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참 착한 사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즈음 내가 읽고 있는 책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티븐 핑거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그것인데, 권선생은 바로 그 착한 본성을 내게 깨우쳐 주는 듯 하였기 때문이다.
스티븐 핑거는 “세상은 점점 폭력적이고 나쁜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라는 사람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지으며 “사람들은 폭력성과 꾸준히 싸워왔고, 점점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그렇게 세상이 바뀌어 가는 이유 중에 첫번 째로 ‘감정이입(empathy)’을 꼽는다.
다른 사람들, 특히 처지와 환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서로 겪는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감정이입(empathy)’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세상을 선한 쪽으로, 좋은 쪽으로, 비폭력적인 쪽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얼굴 크기만큼이나 두꺼운 스티븐 핑커의 책속의 숱한 증거들보다 권선생에게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일하면서 권선생의 아픔을 조금 덜어낼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것인데, 그것은 비단 권선생의 아픔이라는 보다는 ‘세월호’라는 말이 아직도 아픔으로 들리는 그 무수할 해외의 숱한 권선생들의 아픔을 덜어낼 방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광화문이나 안산에 있는 오래고 낡은 현수막 옆에 새 현수막을 다는 일이다.
새롭게 다시 세월호의 아픔을 되내기는 말을, 해외에사는 각자의 지금 고향의 이름으로 말이다.
우선 나부터 하나 시작하고 볼 일이다. 권선생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