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일 일기(日記)

오늘 아침에 루이지애나(Louisiana)에서 세명의 경찰관이 피살되었다는 보도이다. 잇단 미국내 총기 사건 소식들 뿐만 아니라 며칠전 프랑스의 대혁명 기념일에 일어났던 프랑스 니스테러 사건을 비롯한 지구촌 사건 사고들은 끊이지를 않는다.

보고 듣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보이고 들리는 한국내 뉴스들에 이르면 이즈음 찜통 열기에 이는 짜증이 더해진다. 개 돼지에서부터 종놈, 상놈에 이르게까지, 2016년 이 문명의 세월을 조선시대가 아닌 고대로 되돌려 살아가려가는 무뢰배들을 향해 치미는 화 때문이다.

오늘은 모처럼 필라델피아 나들이에 나서 다민족, 다문화 일치를 내세우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한국마켓 장을 보고 돌와왔다.

다민족, 다문화를 내세운 교회에서도 한인교회 또는 전통적인 미국인들 교회들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였다.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라는 이는 사람들의 신앙 깊이를 여섯 단계로 나누어 신앙발달 단계를 설명한바 있지만 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 수준도 그곳에 맞출 수 있을 듯하다.

파울러가 말한 겨우 두번 째 단계인 신화적이고 문자적인 단계(mythic-literal faith)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회들의 모습에 이젠 조금 지치기도 한다.

한국마켓 장을 보러 갔다가 찜통 더위 속에서 세월호 소식지를 배포하고 있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반가움도 잠시 이내 답답함으로 변했다. 무지하고 뻔뻔하게 자기밖에 모르는 내 나이 또래 사내의 목청 높은 소리 때문이었다.

그 자리를 급히 떠난 까닭은 내게 일행이 있었다기 보다는 “이 나이에 내가 뭘…”하는 주눅이 앞섰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돌아와 습관으로 성서에게 묻는다.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신을 향해.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를 주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