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4일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민중 총궐기 대회’라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날 밤, 만 68살의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오늘 이 순간까지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로 누워 있습니다.
농민 백남기씨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까닭을 그의 딸 백민주화씨는 “쌀값이 너무 많이 떨어져 다른 농민들을 대변해서 그 자리에 말을 하려고 갔던” 것이라고 합니다.
백민주화씨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우리 아빠는 그냥 70세 농민이다. 아빠는 쌀 값이 개 사료보다 싸다, 제발 쌀값을 올려야 한다, 그 말을 하려고 간 건데.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 나이에 서울까지 보성에서 5~6시간 거리인데 거기를 가셨겠나. 우리 아빠가 왜 거기를 나갔는지는 어느 언론에서도 보도하지 않고 니네 아빠가 앞에서 폭력시위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폭탄을 써서 니네 아빠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거다. 아무도 본질은 모르고 있다. 폭력시위가 초점이 아니다. 10만명이 넘게 서울 그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백남기씨가 그날 있었던 대회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약을 지키라”는 지극히 원칙적인 요구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녀가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 공약 가운데 농가와 농민들을 위해 80 kg 쌀값을 21만원대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약속을 했던 시점의 쌀값인 17만원 보다 더 떨어진 15만원인 현실을 알리고 싶어했던 것이 그가 그날 밤 그 자리에 있었던 까닭이라고 합니다.
그와 한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백남기씨를 “흥 많고 성실한 사람. 서둘러 밀을 뿌리고 다음 날 전국농민대회,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은 아내와 함께 밀농사 등을 짓고 된장, 고추장을 담그며 평생을 땀 흘리며 살아온 사람. 자기 농사뿐만 아니라 이웃 농민들과 더불어 살며 우리 농업 살리기에 매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백남기 – 위키백과는 그의 이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947년에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에서 태어났다. 1968년에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 운동을 했다가 박정희 정부시기에 2회 제적을 당해 천주교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했다. 1980년 서울의 봄때 복교해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1980년 5월초까지 계속 민주화운동을 벌였지만 5·17 쿠데타로 비상계엄이 확대되면서 계엄군에 체포되었다. 중앙대학교에서 퇴학되고,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72년에 대학에 들어갔던 저는, 농민 백남기씨와 젊은 시절 이력이 비슷한 많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에 매우 익숙한 편입니다.
개중에는 제 잇속와 제 배속 채우노라 얼굴상까지 바뀐 사람들도 많지만, 농민 백남기씨처럼 “흥 많고 성실하게. 가족과 함께 평생을 땀 흘리며. 자기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며 공동체를 살리기에 매진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더 많답니다. 적어도 제가 풍문으로라도 아는한 말입니다.
백남기씨처럼 농민으로 살아온 사람들도 있고, 더러는 노동으로, 상업이나 기업인으로, 언론인 또는 학자로, 더러는 종교인으로, 정치인으로 살아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하고 살아왔던 젊은 시절처럼 흥겹게, 성실하게, 이웃과 더불어 공동체를 살리자는 크고 작은 생각과 실천을 이루며 살아온 이들은 비단 백남기씨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이 세대들은 어느덧 환갑에서 칠순 나이에 이르른 노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살아오며서 때론 진창에 빠지기도 하고, 돌이켜 비난받아 마땅한 실수도 저지르기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믿고 지키고자하는 원칙과 상식만은 지키고자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이 세대에 분명히 분명히 숱하게 있답니다.
그리고 한국 정치인들 가운데 이 세대로는 이해찬이 손 꼽을만 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농민 백남기선생께서 “흥 많고 성실하게. 가족과 함께 평생을 땀 흘리며. 자기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며 공동체를 살리기에 매진하며” 살아온 사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후대에게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세대의 시대정신을 고집스럽게 이어온 이해찬의 정치역정이 멋지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다시 이해찬을 위하여.
*** 행여라도 이 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세종시 유권자 또는 그 곳 유권자를 아는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백남기와 함께 ‘이해찬’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