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아침입니다.
먼동이 트기전 동네 한바퀴를 돌며 들었던 새들의 노래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소리들은 늘 그렇게 지저귀고 있겠지만, 제 듣는 귀는 오늘처럼 아주 특별한 날에만 열리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영영 듣지 못하고 한해를 보내기도 했겠지요.
뒤뜰 개나리 흐드러진 이 아침에 부지런히 4월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소식 하나 나눕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
지난해 11월 14일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민중 총궐기 대회’라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날 밤, 만 68살의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오늘 이 순간까지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로 누워 있습니다.
농민 백남기씨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까닭을 그의 딸 백민주화씨는 “쌀값이 너무 많이 떨어져 다른 농민들을 대변해서 그 자리에 말을 하려고 갔던” 것이라고 합니다.
백민주화씨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우리 아빠는 그냥 70세 농민이다. 아빠는 쌀 값이 개 사료보다 싸다, 제발 쌀값을 올려야 한다, 그 말을 하려고 간 건데.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 나이에 서울까지 보성에서 5~6시간 거리인데 거기를 가셨겠나. 우리 아빠가 왜 거기를 나갔는지는 어느 언론에서도 보도하지 않고 니네 아빠가 앞에서 폭력시위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폭탄을 써서 니네 아빠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거다. 아무도 본질은 모르고 있다. 폭력시위가 초점이 아니다. 10만명이 넘게 서울 그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백남기씨가 그날 있었던 대회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약을 지키라”는 지극히 원칙적인 요구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녀가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 공약 가운데 농가와 농민들을 위해 80 kg 쌀값을 21만원대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약속을 했던 시점의 쌀값인 17만원 보다 더 떨어진 15만원인 현실을 알리고 싶어했던 것이 그가 그날 밤 그 자리에 있었던 까닭이라고 합니다.
그와 한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백남기씨를 “흥 많고 성실한 사람. 서둘러 밀을 뿌리고 다음 날 전국농민대회,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은 아내와 함께 밀농사 등을 짓고 된장, 고추장을 담그며 평생을 땀 흘리며 살아온 사람. 자기 농사뿐만 아니라 이웃 농민들과 더불어 살며 우리 농업 살리기에 매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백남기 – 위키백과는 그의 이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947년에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에서 태어났다. 1968년에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 운동을 했다가 박정희 정부시기에 2회 제적을 당해 천주교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했다. 1980년 서울의 봄때 복교해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1980년 5월초까지 계속 민주화운동을 벌였지만 5·17 쿠데타로 비상계엄이 확대되면서 계엄군에 체포되었다. 중앙대학교에서 퇴학되고,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72년에 대학에 들어갔던 저는, 농민 백남기씨와 젊은 시절 이력이 비슷한 많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에 매우 익숙한 편입니다.
개중에는 제 잇속와 제 배속 채우노라 얼굴상까지 바뀐 사람들도 많지만, 농민 백남기씨처럼 “흥 많고 성실하게. 가족과 함께 평생을 땀 흘리며. 자기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며 공동체를 살리기에 매진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더 많답니다. 적어도 제가 풍문으로라도 아는한 말입니다.
백남기씨처럼 농민으로 살아온 사람들도 있고, 더러는 노동으로, 상업이나 기업인으로, 언론인 또는 학자로, 더러는 종교인으로, 정치인으로 살아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하고 살아왔던 젊은 시절처럼 흥겹게, 성실하게, 이웃과 더불어 공동체를 살리자는 크고 작은 생각과 실천을 이루며 살아온 이들은 비단 백남기씨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이 세대들은 어느덧 환갑에서 칠순 나이에 이르른 노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살아오며서 때론 진창에 빠지기도 하고, 돌이켜 비난받아 마땅한 실수도 저지르기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믿고 지키고자하는 원칙과 상식만은 지키고자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이 세대에 분명히 분명히 숱하게 있답니다.
그리고 한국 정치인들 가운데 이 세대로는 이해찬이 손 꼽을만 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농민 백남기선생께서 “흥 많고 성실하게. 가족과 함께 평생을 땀 흘리며. 자기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며 공동체를 살리기에 매진하며” 살아온 사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후대에게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세대의 시대정신을 고집스럽게 이어온 이해찬의 정치역정이 멋지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다시 이해찬을 위하여.
*** 행여라도 이 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세종시 유권자 또는 그 곳 유권자를 아는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백남기와 함께 ‘이해찬’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적으로 소수이고, 힘이 열악한 집단에서 자신들의 권익을 지켜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좋은 전략을 가지고 힘을 모아 함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시안 정치참여 단체인 ’80-20’는 오는 6월 7일에 있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아시안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캘리포니아 거주 아시안계 미국인들에게 예비선거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소수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선거에 임한다고 생각하는 집단일수록 전략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방법을 널리 알려야 할 것입니다.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6월 7일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예비선거 결과를 결정지을 수 있다
다음은 그 방법이다. 단지 다음 사실들을 합해보라.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주장함으로써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기 위하여 자신의 의무를 이행한다면, ‘80-20’의 계산이 옳다고, 당신은 동의할 것이다.
사실:
결과!
‘80-20’의 지지로, 캘리포니아주 예비선거 후, 버니 샌더스가 탄력을 되찾거나, 힐러리 클린튼이 샌더스를 물리칠 것이다. 따라서, ‘80-20’의 지지는 양 선거진영 모두에게 반드시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상기 사항은 대통령 후보 양자에 대한 ‘80-20’가 소지하는 협상 파워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당신의 도움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 혹시 당신이 캘리포니아주 거주자가 아니라도, 이 이메일을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친척, 친구들에게 전송함으로써 여전히 도움을 줄 수 있다.
AsAms can dictate the outcome of CA Democratic presidential primary on June 7th
Here is how. Just put the following facts together. You shall agree that 80-20’s calculation is right, provided that all CA AsAms voters will do their duty to fight for their children’s future by asserting our political clout.
Facts :
RESULT!
With the endorsement of 80-20, after the CA primary, either Bernie will regain his momentum, or Hillary will knock Bernie out. So winning 80-20’s endorsement is a MUST for both campaigns.
The above is 80-20’s bargaining power with both presidential candidates. But it can only succeed with your help. If you don’t live in CA, you can still help by forwarding this email to your relatives and friends in CA.
교회력으로 고난주간입니다. 예수께서 그가 걸어온 3년 동안의 공생애를 마무리 지었던 마지막 한 주간입니다.
마가가 남긴 예수 이야기를 또 다시 곱씹어봅니다.
16장으로 이루어진 마가복음은 거의 1/3이 넘는 장수를 예수의 마지막 한 주간에 대한 이야기로 채우고 있습니다.
마가가 전하고 싶었던 예수의 모습은 바로 고난주간이라고 부르는 예수 생애 마지막 한주간 동안 보여준 예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갖게하는 까닭입니다.
마가가 전하는 예수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들(마태, 누가, 요한)이 전하는 예수 이야기와 조금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작이 틀립니다. 마태는 족보 이야기로, 누가는 예수 탄생 이야기로, 요한은 태초의 말씀 이야기로 시작을 하지만,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이라며 그의 이야기를 “복음 이야기”로 규정 짓고 시작합니다.
마가는 예수가 3년 동안 갈릴리를 중심으로 행하였던 사역과 말씀,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보여주었던 행태를 통해 “복음(福音, Gospel)” 곧 기쁜소식을 전하려 했습니다.
마가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고난주간을 전하는 부분이거니와 그 가운데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모습으로 드렸던 기도하는 장면이 아닐까합니다.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 마가복음 14 : 34 -41
그러나 그의 기도는 얼핏 헛되 보였습니다. 그 밤부터 시작하여 예수는 절대 고독을 맛보다 끝내 십자가에 달려 죽습니다.
그가 겪었던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뭇 신자들, 환호하던 군중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고통 속으로 몰아 넣었던 것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던 하나님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렇게 예수는죽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래도 예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여인들조차 부활하신 예수를 무서워하며 도망하는 모습을 그리며 그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 마가복음 16장 1절 – 8절
*** 마가복음은 본래 16장 8절에서 끝났고 9절부터 20절 까지는 후대에 첨가했다는 널리 인정되는 설에 따라
마가 이야기는 이렇게 끝내도 예수를 통한 복음이야기는 오늘도 여전히 이어지거니와, 예수 이야기는 틀림없는 복음이야기라는 믿음의 고백이 유효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오늘도 그를 버리고 그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그를 철저히 외면하는 갈릴리현장 바로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먼저 오셔서 그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마가의 예수 이야기는 그렇게 모두가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거니와, 이어져 갈 것입니다.
어제 미니 슈퍼 화요일 경선을 고비로 미국 대통령선거 레이스도 종반으로 접어드는 모습입니다. 공화당의 트럼프와 민주당의 클린턴으로 각당의 후보가 압축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오늘자 US Today는 아직 게임이 끝난게 아니라는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은 숫자 계산 때문에, 민주당은 공약 때문에 이 레이스는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다. This is going to take a while — for Republicans because of math and for Democrats because of message.” 라는 분석보도는 사뭇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비록 어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하이오 주에서 이 지역 주지사인 존 케이식 후보에게 패배한 트럼프는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과반숫자인 매직넘버 1237명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크게 문제 될 것 없을 듯 한데, 그를 반기지 않는 공화당 주류들이나 반대론자들은 오는 7월 Cleveland에서 열리는 공화당 중재전당대회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듯합니다.
민주당은 힐러리로 굳혀져가는 모양새이지만 버니 샌더스의 지지층들이 워낙 강고한 결속력을 보이고 있어 이 둘 사이에 각종 정책현안들에 대한 이견을 어떻게 좁혀 나갈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는 분석입니다. 공화당과는 달리 슈퍼 대의원제도가 있거니와 그 슈퍼 대의원 숫자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샌더스가 후보 지명권을 획득하기엔 아무래도 무리일 듯합니다만 결속력 강한 샌더스의 지지자들을 끌어들일만한 정책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샌더스의 모험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미국을 위해 좋겠다는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이미 많은 부분에서 샌더스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클린턴이 안정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적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답니다. 무엇보다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면에 있어서 현재 양당을 통틀어 모든 후보자들 가운데 가장 적임자가 아닐까하는 측면에서도 클린턴 지지를 하고 있답니다.
클린턴 지지에 앞서 절대 되어서는 안되겠다싶은 인물이 트럼프입니다. 샌더스보다 더욱 호불호가 강한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민 일세로 이 땅을 살아가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기피대상 일호입니다. 특히 그가 종교를 앞세워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증오대상을 적시하여 표적화하고 시민들의 현실 불만과 채워지지 못한 욕구가 마치 그가 만들어 놓은 증오대상들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호도하는 정치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론적인 이유에 앞서 자칫 그가 증오대상으로 쳐놓은 그물에는 내 아이들과 후대들이 걸려들 가능성도 있겠다는 염려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입니다.
힐러리의 후보 지명과 당선 보다는 트럼프의 대권 꿈을 막아내는 것이 유권자로서 제 몫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는 이즈음이랍니다.
한국 역시 총선을 코앞에 둔 선거정국입니다. 이민 온후 인터넷으로 세상이 연결되기 전, 십 수년 동안 한국내 뉴스들 특히 정치뉴스는 접할 기회가 없어 거의 잊고 지냈지만, 이젠 안 보려고 하여도 눈앞에 펼쳐지는 게 그 곳 뉴스들입니다.
그러나 떠나온지도 워낙 오래전 일이거니와 선거권 조차 없는 사람이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듯하여 비록 생각이 있다하여도 말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요 며칠 사이 뉴스에 자주 오른 두 인물 곧 이해찬과 정청래 기사를 보며 한마디 해보고 싶어 몇 자 적어 본답니다.
제가 한국 뉴스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던 무렵 낯설게 다가왔던 직업군들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정치 평론가”라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몇 번 듣다가 “아! 저러고도 먹고 살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해 본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러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즐겨 듣는 편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처음 몇번 듣다가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인물들 가운데 고성국과 이철희가 있습니다. 사실 이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제가 들어 본) 평론가들의 논점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이기는 놈이 장땡”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네들은 (특히 진보연하는 이들) 우선 논평의 대상을 양비(兩非)의 잣대로 재단해서 올려 놓습니다. 그리곤 이기는 놈이 옳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어찌보면 이런 재단과 주장은 정치평론가들만의 것만이 아니라 이즈음 한국 사회를 움직이고 이끌어가는 모든 영역의 이른바 식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도구가 아닌가 합니다.
이야기 폭이 넓어지고 길이가 길어지기 전에 이해찬과 정청래로 마치려고 합니다. 두 인물 모두 소속된 정당 공천에서 배제되었고, 이해찬은 해당 정당을 나와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서고, 정청래는 당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백의종군하겠다는 뉴스입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결정을 보며 “둘 다 모두 옳은 판단을 하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답니다. 이 둘은 모두 한국사회에 만연되어 팽배한 “이기는 놈이 장땡”이라는 암묵적 시대정신에 “아니오”라고 반기를 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이 소속한(했던) 정당의 대표인 김종인은 “이기는 놈이 장땡”이라는 논리로 이들을 배제 시켰습니다.
이해찬은 이러한 배제논리를 절차와 명분을 무시하고 이기는 놈이 장땡이라고 우기는 “불의”라고 규정하고 평생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불의와 싸우겠다고 언명하였습니다.
반면 정청래는 “비록 당 지도부가 자신을 버렸지만 자신은 당을 버릴 수 없다”며 “이기는 놈이 장땡”이라는 논리로 자기 이익에 따라 소속당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태에 일침을 가하며, 지는 것 같지만 이길 수도 있다는 새로운 도전을 하였습니다.
이해찬이 규정한 불의와 맞서 이길런지, 정청래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할런지 그 결과는 모를 일입니다.
결과야 어떻든, 두 사람의 선택을 보며 공자선생께서 말씀하신 정명(正名)을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정치인이 정치인다운 모습 말입니다.
그 보다 더 모를 일들은 넘쳐납니다. 제가 트럼프 치하의 미국에서 살 수도 있을 터이고, 이해찬과 정청래가 실패한 사회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한국인들이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트럼프를 구원자와 구세주로 여기며 오늘도 환호하는 미국인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은 것처럼, 정치술사들과 식자들의 놀음에 빠져 오늘도 지역타령으로 날을 지새며 ‘이기는 놈이 장땡’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한국인들의 숫자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족>
수 년전에 사십년 가까이 벗 삼아오던 담배와 헤어진 이후, 사십년 넘게 소주 – 하드리커 – 와인으로 변하며 제 곁에서 함께 했던 술과도 최근에 헤어졌답니다. 반주 삼아 마시던 와인조차 끊어 버렸답니다. 헤어진 몇 가지 이유들이 있는데 그 중 으뜸은 ‘가는 날 깨끗하게 떠나는’ 준비를 해야 할 나이에 들어섰다는 생각이었답니다.
우리 또래 한국 정치인들 가운데 가장 올곧게 정명(正名)의 길을 걸어 온 것처럼 생각되어지는 이해찬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올들어 금주로 절약한 돈이나마 후원하려고 합니다.
이제 정치인다운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는 정청래를 후원하는 날을 기다리며….
넋두리 – 참 쓰기 싫었고 쓰기 힘들었던 글입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으면서 지역 동포사회 교회들이 함께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고, 그런 소망을 각 교회에 전달해 보자는 의견이 필라세사모 모임에서 나왔었습니다. 그런 뜻을 각 교회에 전달하는 편지작성이 어찌어찌 제 몫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어서 참 힘들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들어 주신다는 믿음과 단 한사람, 단 한 교회만이라도 함께 해 주었으면 하는 기도로 써 본 것입니다.
기도 부탁 드립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던 수난과 고난을 되새기는 기간에 귀 교회와 목사님께 기도해 주십사는 부탁의 말씀을 올립니다.
무엇보다 먼저, 수난과 고난을 딛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첫 징표를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과 하나님의 은총이 목사님과 교회위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는 필라델피아 인근에 살면서 두해 전 이맘 때 한국에서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그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끊이지 않고 있는 필라세사모(‘세월호를 잊지 않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약칭입니다.)에 속한 기독교인들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들에 대한 서로 다른 수많은 소문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2년이라는 세월은 늘 오늘의 문제로 바쁜 사람들에게 잊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아직도 아픔을 안고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들은 “아직도 아픔을 안고 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나는 전능하신 분께 말씀드리고 싶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다.>고 한 욥의 고백처럼 지금 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저희들처럼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두해 전 4월 16일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고로 자식과 가족을 잃기 전까지 말입니다. 물론 사건과 사고로 인해 자식이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그들 뿐만이 아닙니다.
저희들은 지난 두해 동안 유가족들이 지내온 모습들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던 여느 사람들과 다른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네들은 그들이 겪은 비극적 상황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주먹을 쳐들며 항거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어져가는 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체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어지는 아픔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희망은 믿는 우리들에게 성서적 언어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사야 11:3-5>
<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계시록 21: 3-4>
바로 그들이 희망하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목사님과 교회가 드리는 기도와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업들이 많고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저희들이 드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오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두해 째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튿날은 주일입니다.
원컨대 바로 그 주일(4/17)에 자식과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어가지만, 하늘을 향한 원망이나 항거, 또는 삶의 체념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하여 귀 교회가 함께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지금 울고 있는 사람들 – 바로 세월호 유가족들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필라세사모 기독인들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세월호 사건 및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소식을 원하시면 전화 000-000-0000, 또는 이메일 [email protected] 주시면 자료들을 보내 드립니다.
냉이무침, 가지무침, 가지튀김, 사골 도가니탕, 녹두빈대떡, 아구찜, 마파두부, 깐풍기, 깐쇼새우, 유산슬, 난자완스 – 지난 주말에 제가 만들었던 요리들입니다. 요리의 완성도나 맛에 대한 평가는 접어 두고, 제 손으로 만든 음식들로 누군가를 대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 좋은 주말이었답니다.
이따금 음식 만드는 일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한 오륙 년 전부터 입니다. 누가 시켜서는 아니고, 그저 제 스스로 내켜서 시작한 일이랍니다.
지난 주말에 식탁에 둘러 앉은 이들에게 한 오륙년 전에 제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연유를 설명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며 웃음을 끊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제 두아이들 이었답니다. 아들과 딸아이는 아마도 애비가 자기들을 위해서, 아니면 엄마를 위해서 음식을 시작한 일이거니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깊은 뜻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고, 입이 짧은 제 식성 때문이었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내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식투정이나 부리는 사내는 아니었답니다.
아마 그 무렵의 일이었을텐데 어머님께서 이따금 만들어 보내주시는 음식들에서 제가 어릴 적 느꼇던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지 못하곤 하였답니다. 어머니께서 늙으신 탓도 있겠지만 제 입맛이 그만큼 변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내의 손맛에 만족하기에는 제 입맛은 늘 까탈스러웠답니다.
그러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 스스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본것이 오늘에 이르른 것이랍니다.
제가 음식 만드는 일을 크게 고무시키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을 겁내지 않게 해 준 이들은 다름아닌 제 아내와 아이들이랍니다. 식구들이 던지는 “맛있다”는 한마디에 설거질도 당연한 일이 되곤 하였답니다.
그리고 한 달포 전 일이랍니다.
부모, 처부모를 비롯하여 누님댁, 여동생네, 조카들 등등 대가족이 가까이 모여 살고 있는 덕에 가족 대소사가 끊이지 않는 집안이랍니다. 이런 연유도 있거니와 제 별난 성격 탓도 한 몫하여 이제껏 제 생일상은 차려 본 적이 없답니다. 해마다 아내가 던지는 “어떻게?”하는 물음에 “그냥 넘어가!”하는게 제 대답이었답니다. 비록 환갑, 진갑 다 넘긴 나이지만 “아직 애인데… 무슨 생일상을…”하며 넘어가곤 했답니다.
그러다 달포 전에 제가 아내에게 던진 소리랍니다.
“생각해 봤는데….이번 내 생일은 내가 상차려서 부모님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어.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나이로 모두 구순을 넘기셨고, 장인도 그만 하시고, 장모도 병 잘 이겨 내시고 있고…. 나도 이즈음엔 늙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고….. 모두들 아직 건강할 때…. 내가 만든 음식으로 상 한번 차려서 보내는 것도 뜻이 있겠다 싶어서….”
아내는 스스로에게 모험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건만 흔쾌히 동의를 해 주었답니다.
그래 토요일에는 처부모님과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 내외분을 모시고 제 생일상을, 이튿날인 일요일에는 부모님들과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들 내외분들을 모시고 제 생일상을, 그 다음날엔 형제들과 함께…. 그렇게 거한 생일을 보냈답니다.
이런 저런 뒷일들을 도와준 아들딸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평소 교회도 잘 나가지 않는 저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저희 가족들을 위해 귀한 시간 내주신 목사님들 내외분께 감사를…무엇보다 진짜 모처럼의 효도를 흡족하게 즐겨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한 삼주 동안 독감으로 고생을 했었는데, 때 맞추어 감기도 떨어져 계획대로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 주신 제가 믿는 신(神)에게도 감사를…
(딸아이가 일주일이 지나서야 보내준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부모님들이 아니라 제가 좋았나봅니다.)
이즈음 어린 아이들도 이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세대들이 초등학교에(당시는 국민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입에 달고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1.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2. 새나라의 어린이는 서로서로 돕습니다/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3. 새나라의 어린이는 몸이 튼튼합니다/ 무럭무럭 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의 ‘새 나라의 어린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1945년 해방된 이후 처음 발간된 <어린이 신문> 첫면에 발표된 것입니다. 해방된 새 나라에 대한 소망은 바로 좋은 나라였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 불렀을 어린아이들은 이제 여든 나이에 접어 들었고, 60년대 초반 이 노래를 불렀던 제 또래들도 어느새 육십대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 세대들에게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이어야만 했습니다. 저라고 별반 다르지 않아서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늘 앞서 있습니다.
제게 ‘우리나라’는 두개입니다. 하나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제 인생의 절반을 보낸 나라 ‘대한민국’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뼈를 묻을 곳이자 인생의 또 다른 절반을 보내고 있는 ‘미국’입니다.
저는 이 두개의 ‘우리나라’가 모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거니와, 비록 부족한 부분들이 많더라도 ‘더 좋은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며 삽니다.
윤석중선생은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 덕목들로 <나라의 구성원들이 ‘자기 일에 충실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자기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 이익에만 눈멀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는 것들>을 꼽고 있습니다. 보통 시민들이 지키며 살고자하는 평범한 덕목들입니다.
제가 보고 느끼기로는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이러한 평범한 덕목들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시민들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나라’가 될 개연은 매우 높은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사는 제게 제목이 <나쁜 나라>인 영화 포스터는 매우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뭔가 잘못된 제목 같아서 입니다.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보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사건 이후 지내온 1년 6개월의 세월을 다큐멘타리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저는 세월호 유가족 육성 기록집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가슴에 묻은 열 세명의 유가족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입니다. <자식을 잃은 충격으로 몸과 정신에 새겨진 깊은 상처들, 자식을 잃은 깊은 상처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넘은 지독한 그리움, 배신과 분노, 절망, 모욕, 또 다른 한편 도움을 준 사람들 그리고 깊은 깨달음> 등을 토해낸 기록입니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 유가족들이 저처럼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 이후 그들은 <더 이상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외면했던,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진실을 통렬히 깨달>았고, <평범한 자신들의 삶을 성찰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읽으며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은 여전히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자식을 가슴에 묻고 <평범한 자신들의 삶을 성찰 할 수>있는 유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만 ‘좋은 나라’이고, ‘더 좋은 나라’이어야만 하는 대한민국이나 미국에 차고 넘쳐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권력’, ‘나쁜 정권’, ‘나쁜 언론’, ‘나쁜 종교’, ‘나쁜 자본’들입니다.
영화 <나쁜 나라>는 분명 ‘좋은 나라’이어야만하는 대한민국을 지칭한다기 보다 바로 이런 ‘나쁜 권력’, ‘나쁜 정권’, ‘나쁜 언론’, ‘나쁜 종교’, ‘나쁜 자본’에 대한 기록일 것입니다.
‘나쁜 권력’, ‘나쁜 정권’, ‘나쁜 언론’, ‘나쁜 종교’, ‘나쁜 자본’이 지속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지배하는 사회는 아무리 <좋은 나라>를 지향한다하여도 종국에는 <나쁜 나라>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경고도 있을 터입니다.
그리고 ‘나쁜 권력’, ‘나쁜 정권’, ‘나쁜 언론’, ‘나쁜 종교’, ‘나쁜 자본’을 선택하며 사는 사람들은 결국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외면하는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지 못하는, <평범한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지 못하는 국민들일 것입니다.
진정 대한민국과 미국이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뉴저지와 필라델피아에서 상영되는 영화 <나쁜 나라> 관람 안내를 드립니다.
1) 뉴저지 체리힐 지역
2) 필라델피아 지역
*** 입장료는 무료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