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식

<2016년 2월 호된 신고식을 치루다.>


한 두해전부터 받기 시작한 광고 메일들이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와 올들어 그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은퇴자들을 위한 아파트와 콘도 광고들과 각종 은퇴 관련 상품 광고들입니다.

아직 은퇴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거니와 제 계획에 따르자면 아직 먼 훗날 이야기이므로 그런 종류의 광고물들은 곧장 휴지통행이 되곤합니다.

지난달인가는 이제 원하면  Social Security 수혜 가능한 연령이 되었다는 안내 메일도 받았답니다.  기차 요금을 비롯한 각종 공공요금의 노인 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관심이 없었답니다. 당연히 ‘은퇴 이후’라는 생각은 제 머리속엔 없었다는 말입니다.

다만, 가능성은 늘 있는 법이므로 죽어 누울 땅 한조각은 준비해 두었답니다. 물론 먼먼 훗날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러다 독한 감기에 걸린 일은 이달 둘째주 월요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만 삼주가 흘렀습니다만 여전히 약기운으로 지냅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일주일 이상 앓아본 일도 처음이거니와 약을 일주일 이상 먹어본 일도 처음입니다. 사흘 이상 전혀 먹지 못한 일도 처음이고, 이렇게 오랫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일도 처음입니다.

급기야 저혈압 증상으로 일어서다가 맥없이 작대기처럼 쓰러져 잠시 정신을 잃어 본 일도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어, 어..”하는 생각은 분명 있었는데 생각과 몸이 전혀 따로 노는 일을 겪으며 속으로 꽤나 놀라는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쓰러지며 무릎에 생긴 퍼런 멍자국을 보며 “이게 신고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년으로 들어서는 신고식 말입니다.

제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하여도 이미 노년으로 들어선 자신을 바로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2월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참 많았던 2016년 2월 한달도 저뭄니다.

마음 편한 글들을 찾아 읽다가 눈에 들어온 임어당(林語堂)선생의 가르침으로 신고식 역시 새로운 삶의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노자1<남을 아는 것은 지혜(智)라 하고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明)이라 한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 있다고 하지만, 자기를 이기는 것은 강하다고 한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부자라 하고, 자기를 이기는 강함으로 행동하는 자를 뜻(志)을 얻었다고 한다. 근원의 바탕을 잃지 않는 자는 영속할 수 있으니, 설사 죽더라도 그 바탕만 잃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장수하는 것이다.>

재미있게 살기 위하여

독감(毒感)이라더니 정말 독한 놈에게 걸려들었습니다.

약병은 커녕 바이타민 조차 곁에 두고 살지않던 제가 딱 두주째 약기운으로 지낸답니다. 초기 사나흘 앓고 하루 반짝해서 ‘감기가 그렇지 뭐’ 했었는데 웬걸, 그후 꼬박 나흘을 누워지냈었답니다. 그리고 또 하루 멀쩡해서 ‘어이구 독한 놈 만났었네’하고 이튿날이면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답니다. 헌데 정말 독한 놈을 만난 것입니다. 다시 눕고 사흘이 지났답니다.

가벼운 폐렴 증세까지 보이며 급기야 항생제를 넘기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한 수면과 휴식 뿐”이랍니다.

노인네들 한겨울 보내고 새 봄 되어 만나면 겨우내 폭싹 늙었더라는 말이 가히 남 이야기가 아닌 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비록 양은 평소 절반이라도 정상적인 식사를 즐길 수는 있게 되었으므로 하루 이틀 후면 독감과의 동거 이야기를 추억 삼을 수 있게 될 듯합니다.

누워 지내며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신영복선생님께서 남기신 “강의”와 의사 이근후선생님의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입니다.

이근후선생님의 책은 사실 암투병중인 장모님께 드리려고 구입한 것인데 제가 먼저 읽고 말았답니다.

신영복선생님의 고전강의인 “강의”를 읽으며 유영모, 함석헌, 김용옥, 강신주 등의 고전 강의와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 배우고 깨닫고 행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으므로 우선 건강하고 볼 일입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이근후선생님의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를 읽은 아주 짧은 느낌을 적어 제 가게 손님들에게 이메일 편지를 보냈었답니다. 그리고 제법 많은 분들께서 동감이라는 답을 주셨습니다. 책 제목이 좋다고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라도 건강하고 볼일입니다. 무릇 “재미”란 주관적인 것임으로  각자 “스스로”들을 위하여.

(아래글은 손님들에게 보낸 편지)


이근후지난 주간에 책을 한권 읽었습니다. 책 제목이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입니다. 50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일해오다 은퇴한 올해 81살인 한인 의사 이근후라는 이가 쓴 책입니다. 누구나 읽기 쉽게 쉬운 말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며 느낀 점들을 기록한 책입니다.(아쉽게도 영문본은 없으니 제가 소개해 드립니다.)

저자 이근후씨 내외는 12여년 전부터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제일 어른이랍니다. 2남 2녀인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다들 각자 따로 살다가 12여년 전에 모두 함께 모여 살면 어떻겠냐?는 생각으로 한집안에 모두 모여 살게 되었답니다.

이 제안은 그의 장남 내외가 먼저 꺼냈고, 다른 자녀들이 동의를 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박사 내외는 끝까지 망설이다가 함께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5 가정이 함께 사는 이 집의 구조는 매우 독특하답니다. 출입문이 각기 다를 뿐더러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구조를 지녔다고 합니다.

이근후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족들은 내 인생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바로 내 인생이다. 칙구, 제자, 동료, 환자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나고, 산에서 만나고, 봉사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수많은 인연들이 모두 나의 인생이었다.”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누구라도 얼굴을 떠올리면 그가 가진 장점이나 좋은 기질 달란트를 기억해 낼 수 있다. 내 인생이기에…”

저는 그처럼 대가족을 이루고 살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삶을 흉내낼 처지도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내 가족 얼굴 하나 하나마다 내 세탁소 손님 한분 한분에게마다 그들을 떠올리 때면 내가 좋아지는 이미지나 의미를 새겨넣는 훈련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재미있는 하루 하루들은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Last week, I read a book, entitle “I Want to Live a Fun Life until I Die.” It was written by Keun-hoo Lee, MD, who is an eighty-one year old retired neuropsychiatrist and professor.

It is a book in which he recorded what he felt, looking back over his life, in plain terms to make it easy to read. (Unfortunately, as it has not been translated into English yet, I’ll introduce it to you.)

The author, Dr. Lee and his wife head a family of three generations. His two sons and two daughters got married and moved out. But about twelve years ago, he, his wife and his children talked about an idea that all of them would live together in one house and decided to do so.

His oldest son and his wife brought up the idea, and the other son, daughters and their spouses supported it. Initially, his wife and he hesitated to consent to it, but then decided to go along.

The house in which five families live together has a unique structure. The entrance for each family is separate and different and no one interferes in what the others do.

Dr. Lee said:

“My family is my life. Not just my family, but all the people who I have met in my life are my life. Friends, students, colleagues, patients, those who I have met in traveling, hiking, and volunteering ― all those countless encounters were my life.”

“I don’t remember all of their names, but if I recall any of their faces, I can recollect his/her virtue, good disposition, or talents. Because they are my life…”

I don’t think that I can afford to lead an extended family in a house like him or to imitate his extraordinary life.

Having said that, I think that I can train myself to carve in my mind the good perceptions and images which match every face of my family and every customer of mine.

I wish that you will have a fun life every day this week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뉴욕 나들이 후기

어제 딸아이 사는 모습 좀 보고 오느라고 뉴욕을 다녀왔답니다. 아이가 연휴면 종종 집에 오느터라 자주 가보지는 않는답니다.

뉴욕 맨하턴 나들이에서 제가 즐기는 몇가지가 있답니다. 주차비에 치이고, 맨하턴에서 차 사고를 한번 당한 이후에는 맨하턴 나들이는 언제나 기차 아니면 버스를 이용한답니다. 우선 그 교통 수단의 편안함입니다. 버스나 기차나 오고가는 시간에 누리는 편안함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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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턴 한인거리에 있는 서점 방문과 한식당에서 누리는 한끼 입맛의 호사와 곁들이는 소주 한잔의 즐거움 등이 나들이를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랍니다.

지난 가을에 뉴욕 나들이를 했을 때는 서점이 리모델링 공사중이라 문을 닫아 그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놓쳤었답니다. 딸아이에게 서점이 공사를 끝내고 다시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여서 내심 알라딘을 통해 구입하려던 책들을 이번 나들이 몫으로 미루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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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과 판매 서가에 꽂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책방과의 차이는 맛이 다름에 있지요. 같은 책을 구입해도 정말 맛이 다르답니다.

새로 꾸민 서점의 모습에 실망이라기 보다는 안타까움이 밀려 왔습니다. 우선 규모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 들었답니다. 그렇게 줄인 나머지 공간은 화장품 매장과 의류 매장으로 꾸며져 있었답니다.

그렇게 줄어든 공간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증폭시킨 것은 서가에 진열된 책들이었습니다. 웬 요리책들이 그리 많이 꽂혀있던지요. 좁은 공간에 거의 한 섹션을 이루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맹목적인 기독교 서적들과 자기 개발서들이 주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서점 비즈니스의 현실을 들어내고 있었답니다. 저만해도 서점 나들이는 그저 이따금 누리는 재미일 뿐, 아마존이나 알라딘이 편한 것을요. 그나마 서점을 그렇게 유지하려는 주인장의 아픔을 느꼈다할까요.

서점 방문에 앞서 들렸던 macy 백화점에서의 느낌도 새로운 것이었답니다. 사실 저는 뉴욕 macy 백화점 안에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아내와 딸아이가 샤핑을 할 때면 저는 늘 따로 놀곤 했었는데 이번엔 함께 했답니다. 늙어가는 징조일겝니다.

매장에 들어가서 제가 놀란 것은 매장 일층 로비를 장식하고 있는 치장들이었습니다. 중국의 춘절 곧 우리 설날을 중국풍으로 드러낸 장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2, 3, 4층으로 올라가면서도 똑 같은 느낌을 받았답니다. 바로 빨간색을 주조로 한 치장들이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어제 서점에서 사온 책들을 훑어 보다가 눈에 들어온 대목입니다.

『논어』의 이 화동론(和同論)은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와 동은 철저하게 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IMG_20150426_082042얼마전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강의’ 162-163쪽에 실려 있는 말입니다.

세상은 늘 변하고 시대의 대세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딱히 자본주의의 변화 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또는 한국 이라는 국가 단위 공동체도 부단히 변해갑니다.

점점 설자리 잃어가는 서점 주인과 쇠락해가는 macy 뿐만 아니라  동(同)의 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이 사회가  화(和)를 주창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이는 밤입니다.

어느 섣달 그믐

단지 몇 달 사이인데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뉴욕행 버스를 타노라고 차를 터미널 인근 주차장에 대었더니 평소와 달리 티켓 대신에 동전만한 플라스틱 칩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데 칩을 잃어버리면 거의 세배가 넘는 금액을 물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차를 대놓고 아내와 저는 작은 다툼을 벌렸답니다. 아내는 칩을 가지고 가자는 쪽이었고 저는 차에 두고 가자는 쪽이었답니다. 암튼… 늘 그렇듯…

외지인 뉴욕에 도착해서는 몇 달 사이 어리버리 노인네가 된 우리 부부는 살가워질 수 밖에 없었답니다.

모처럼 만난 딸아이는 우리 부부가 노인네라는 것을 직파한 모양입니다. 매사 집에 있을 때와 다르게 침착하고 꼼꼼히 애비 에비를 챙기는 모습이었답니다.

어느새 딸아이가 툭!

아내와 어머니보다 더 윗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섣달 그믐이었답니다.

돌어오는 길 우리 부부는 다 큰 딸아이 이야기로 “쎄쎄쎄…” 하다가…

다시 주차장에 이르러 그 놈의 칩 때문에… 다시 다툼을…

그렇게 우리들의 일상을 돌아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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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 매표소 한글 안내를 보며… )

*** 사족 : 차이나 타운에서 우리 세 식구가 정말 맛나게 먹고도 남은 만두와 국수 값에 비해 코리아 타운에서 먹은 순두부와 비빔밥은 거의 두배 반에 이르는값에 비해 서비스도 그에 역비례였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