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20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셋째 이야기 세월여류 (歲月如流)
인생행로 (人生行路)
사람은 누구나 제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環境)과 여건 속에서 나름 대로 살아가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시간을 세월(歲月)이라고도 하고,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는 뜻으로 세월여류(歲月如流)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내가 태어났고 여남은 살 때까지 살던 곳인 경기도 용인 땅, <유실> 이라는 마을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내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이날까지 지내온 것을 생각해보니, 그러한 느낌이 더욱 새롭다.
<세월여류>라는 말에 공감(共感)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여류)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펼쳐보기로 한다.
아주 간단하고 쉽게 말하자면, 인생(人生)이란 목숨을 가진 사람의 존재(存在), 또는 그 사람의 목숨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기간도 인생이라고 한다.
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라는 노래가 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다. 우선, 그 노래의 가사부터 적고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 구름이 흘러가 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 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 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위에 적은 가사처럼 사람이 한 세상 살아간다는 것은 <나그네 길> 같은 것이고, <빈 손으로 태어났다가> <빈손으로 돌아 간다>라는 것을 부정 (否定)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째서 그렇다는 것인가?
쉽게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든지 이 세상을 떠날 때, 이삿짐 나르듯이 무엇을 가지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살다가 언제 가든 간에, 태어날 때 공수래(空手來)한 것 처럼, 떠날 때에도 공수거(空手去)한 다는 뜻 아니던가?
그러한 것을 부정(否定)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에서 적었듯이 인생(人生)이란 목숨을 가진 사람의 존재(存在), 또는 그 사람의 목숨이고,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기간이다. 한편,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인생>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앞에 적은 <하숙생> 가사처럼 <인생은 나그네 길>과 같은 것 이고, <인생이 고달프다>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富貴)와 영화(榮華)를 누리면서 장수(長壽)한다고 하더라도, 늙고 병들어 저 세상으로 갈 때에는 너나없이 누구나 빈손으로 가지않던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 이렇다할만한 이름을 남기고 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거나 남의 손가락질을 받을만한 짓은 하지 않으면서 살다 가는, 그러한 인생길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누구 앞에서라도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한 세상 살다 갈 수 있게 된다면, 그러한 것 보다 더 보람있는 [삶]은 없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다.
‘구순(九旬)’하면 나도 남의 일처럼 살아왔건만 어느덧 올해(2016년) 만 90살이 되었다.
오늘날의 내 생활 주변(周邊)을 살펴본다.
내 삶의 종착점(終着點)이 시시각각 (時時刻刻)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끼니 때마다 주는 밥 먹고 우두커니 허송세월(虛送歲月)만 하면서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한 뜻에서, 오늘도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면서 내 나름대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스물 다섯 살, 한창나이에 사지(四肢)가 멀쩡하던 사람이 삽시간에 자유롭게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것이 내 운명(運命)인 것을 ……
젊디젊은 나이에 지팡이를 짚어야 걸어다닐 수 있는 처지가 되다니 …
이방원(李芳遠,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의 ‘하여가(何如歌)’라는 시조(時調)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렇게 산들 어떻고 저렇게 산들 어떠한가”라고.
그 말을 응용하여 나도 한 마디 적어본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한가 나라의 부름 받고 맡은 제자리 지키다가 몸을 다치게 된 것을 …
그래도 나는 행운아(幸運兒)다. 그 난리 속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戰死者)들도 있고 나보다 더 심하게 몸을 다친 전상자(戰傷者)들도 있다.
한데, 이렇게라도 살아있지 않은가 말이다. 얼마나 다행(多幸)인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와 함께 생각해볼 것이 있다. 그것은 고려 충신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에 관한 긴 이야기를 하려고 끄집어 낸 것은 아니고, 내 고향인 용인에 정몽주선생의 묘가 있다는 것을 적기 위해 늘어놓은 이야기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정몽주선생묘가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1호인 그 묘가 있는 곳인 <모현면>은 내가 살던 곳인 <포곡면>과 인접(隣接)해 있는 곳이다.
<인생행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내 고향 땅에 있는 정몽주 선생묘 이야기까지 나왔다.
어찌 되었건, 지금 이 글에 적고 있는 이야기 제목처럼 <인생행로>라는 말 말고도, <인생>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생파(人生派)라는 말도 있도, 무슨 인쟁관(人生觀)이니, 인생철학(人生哲學)이니 하면서 아주 거창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접어두고, <인생극장(人生劇場)>이라는 이야기 하나 적고, 인생행로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전에는 극장에 가서 영화나 연극을 볼 수 있었다. 한데, 요즘에는 굳이 극장엘 가지 않아도 그런 것을 볼 수 있다. 텔레비전만 틀어놓으면, 어디에서든지 영화나 연속극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가정의 일상생활을 다룬 것을 안방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여 <안방극장>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편, 미국에서는 그런 연속극을 비누회사에서 그 회사의 제품을 선전 하는 광고와 함께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고 해서 SOAP OPERA라고도 한다.
대개 가정주부들을 상대로 방영되는 것인데, 남녀간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것이 많다.
나는 전에 서울 서대문 네거리 근처에 있는 동양극장 앞을 지나다닌 적이 있었다. 주로 연극을 공연하고 있던 그 극장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그 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의 제목과 공연기간이 적힌 간판이 극장 앞에 걸려 있는 것을 본 생각이 난다.
그 간판에는 그 연극에 나오는 주연남녀배우를 비롯해 배우들의 이름과 몇 막(幕) 몇 장(場)짜리 연극이라는 것도 적혀있었다.
연극에는 관객을 웃기는 희극(喜劇), 음악으로 이루어지는 악극(樂劇), 종교를 주제로 하는 종교극(宗敎劇), 거의 난투장면을 주로 하여 꾸민 활극(活劇), 역사상 어떤 시대의 일을 가지고 만든 시대극(時代劇), 대사의 전부나 혹은 그 일부를 노래로 하는 가극(歌劇), 슬픈 이야기로 엮어져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비극(悲劇), 사회의 죄악이나 불합리한 점을 풍자하는 내용이 담긴 풍자극(諷刺劇)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연극이 극장무대 위에서 조명과 음악 등의 도음을 받아가며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한데, 배우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그런 극장 말고, 인생극장(人生劇場) 이라는 것도 있다.
<인생극장>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이 세상을 하나의 <극장>이라고 가정(假定)하고,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인생살이를 하나의 극(劇)으로 비유해서 한 말이다.
거기에는 인생의 불행과 비참한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여 파멸(破滅), 고통(苦痛), 죽음 등으로 인생의 끝을 맺는 비극도 있고,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며,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뜻을 다른 사람에게 깨우쳐 줄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며 막(幕)이 내려지기도 한다.
극장무대에서 하는 연극은 그 무대를 가리는 막(幕)이 몇 번이고 내려 가기도 하고, 올려지기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무대가 가려지기도 하고, 보이게도 되어 있다. 그러나, 인생극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생살이>는 <단막극(單幕劇)>과 같은 것이다.
일반 극장에서는 극을 관객들에게 모여주기 전에 리허설(rehearsal)이 라고도 하는 예행연습(豫行演習)을 배우들이 한다. 그러나, <인생극장>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한번 지나가면, 그 장면(場面)은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그런 만큼, <인생극장>에서의 연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상을 살 만큼 살아온 나이가 지긋한 사람, 한 집안을 이끌어가는 가장(家長), 연장자(年長者), 상급자(上級者), 크고 작은 갖가지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집단(集團)의 우두머리인 장(長) 등등의 경우, 그 연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훌륭한 연기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야 될 것이다.
그러한 역(役)을 맡게 되었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나 ‘조롱거리’가 되는 수도 있고, 또는 남에게 해(害)를 끼치 게도 되며, 덕(德)이 되지 못하게 되는 수도 있다.
<인생극장> —— 우리네 인간(人間)들이 한세상 살아가는 것은 너나 없이 누구나 인생극장(人生劇場)이라고 하는 단막극(單幕劇)에 출연 (出演)하는 배우들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