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2016년 초하루도 저무는 시간입니다.

노부모님들께 얼굴 내밀어 짧은 새해 인사를 드린 후 집에서 쉬며 하루해를 보냅니다.

늦은 저녁에 Henry David Thoreau를 찾아 손에 들었습니다.

civil-disobedience-2150여년 전에 마흔 다섯 짧은 삶을 누리다 간 사내가 숲속이나 감옥에서 남긴 말들이 2016년 초하루 제 맘속에서 살아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오늘 도시속에서 제가 바라보는 세상이나 150여년전 매사추세츠 월든 호수가에서 쏘로우가 바라보았던 세상이나 별반 다름이 없기 때문일겝니다.

짧은 미국 역사속에서 손꼽을만한 미국의 정신(精神) 가운데 한사람인Henry David Thoreau의 말이 여전히 유효한 2016년을 시작하면서, 그가 이미 파악했던 내가 살아가야하는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방향을 곱씹어 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매일 반나절을 사랑하는 마음에 가득 차서 숲속을 산책한다면,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러나 만일 숲을 밀어내어 평평한 땅으로 만드는 투기꾼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그는 부지런하고 진취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If a man walks in the woods for love of them half of each day, he is in danger of being regarded as a loafer. But if he spends his days as a speculator, shearing off those woods and making the earth bald before her time, he is deemed an industrious and enterprising citizen.) – Walden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단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양심을 가진 단체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 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I think that we should be men first, and subjects afterward. It is not desirable to cultivate a respect for the law, so much as for the right. The only obligation which I have a right to assume is to do at any time what I think right. It is truly enough said that a corporation has no conscience; but a corporation of conscientious men is a corporation with a conscience. Law never made men a whit more just; and, by means of their respect for it, even the well-disposed are daily made the agents of injustice.) –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40년 전에 제게 Henry David Thoreau의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이즈음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민이 되지 말고 국민이 되어야 한다”며 노망을 부리지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