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18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진짜와 가짜
8.15 광복 이후, 우리네 생활 주변에서 흔하게 쓰이고 있는 말 중에는 <진짜>와 <가짜>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가?
- <진(眞)짜>는 글짜 그대로 <참>이다. <거짓이 아닌 것>, 또는 <옳고 바름>이다.
- <진(眞)짜>는 사실(事實)이나 진리(眞理)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 <가(假)짜>는 <진(眞)짜>의 반대(反對)말이다.
- <가(假)짜>는 진짜처럼 꾸민 것 또는 진짜가 아닌 것이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도 있는데, <사이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根本的)으로는 아주 다른 것이다.
어찌 되었건, <사이비종교>라는 말도 있고 <사이비과학>이라 는 말도 쓰이고 있다.
진짜와 가짜라는 이야기를 엮어보려고 끄집어낸 말이다.
찰리 채플린 (Charlie Chaplin, 1889 ~ 1977 영국인, 희극배우, 영화감독, 제작자)은 1914년에 첫 영화를 발표한 이래 무성영화 (無聲映畵, silent film)와 유성영화(有聲映畵)를 넘나들면서 ‘가짜 목사 (The False Priest)’ 등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런 것뿐만 아니고 그는 콧수염, 실크모자, 모닝코트, 지팡이 등으로 분장(扮裝) 또는 위장(僞裝)한 그의 인상(印象)을 사람들에게 심어줌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사람이며, 1975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부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작위(爵位)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 한 가지 적는다.
어느 날 찰리 채플린이 한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그곳에서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채플린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대회를 구경했다.
경연자(競演者)들은 모두 외모부터 진짜 채플린처럼 분장을 하고 나와서 채플린 특유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채플린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그 대회에 출전하여 자신이 평소에 하던 그대로 연기를 했는데, 채플린은 3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대회 출연자들 중엔, <진짜 채플린>보다 더 실감나게 연기를 한 <가짜 채플린>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던 것이다.
한데, 사실은 채플린 특유의 몸짓과 말투와 그의 처진 눈썹과 짧은 콧수염 등은 채플린의 원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본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콧수염 등으로 변장(變裝)한 얼굴과 특이(特異)한 그의 행동 등만 본 사람들에게는, 변장한 채플린의 얼굴과 말투와 행동 등이 그의 진짜 모습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꾸민 것이 아닌 그의 본얼굴은 그 당시의 꽃미남이라고 해도 될만큼 잘 생긴 민낯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찰리 채플린은 앞에 적은 것처럼 콧수염, 실크모자, 모닝코트, 지팡이 등으로 그의 인상(印象)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에, 그러한 그의 독특(獨特)한 것들, 말하자면 꾸민 것들이 그를 상징(象徵)하는 특징(特徵)처럼 되어 있다.
그렇게 꾸민 채플린을 흉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은 본 모습이 아닌 사람(채플린)을 흉내내는 사람들(가짜 채플린)도 있었다라는 이야기다.
이쯤에서 말머리를 돌려보기로 한다.
<5.16 쿠데타>에 관한 이야기를 적으면서, 맨 끝 부분에 나와 동갑인 몇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한데, 희극배우 배삼룡(裵三龍)도 나와 동갑이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배삼룡의 본명은 배창순이다. 춘천에서 보통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에서 유학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 후 귀국하여 1946 유랑악극단 ‘민협’의 단원으로 지내게 된 그는 어정쩡한 그의 모습을 빗대어 극단 선배들이 <삼룡>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배삼룡>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1969년 텔레비젼 MBC방송국이 개국되면서 그는 <웃으면 복이 와요> 등에 출연하여 우스운 짓이나 말로 남을 잘 웃기는 모습을 선보이며 그의 전성기(全盛期)를 달렸다. 그러한 배삼룡은 말을 더듬거나 바보스럽고 비실대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비실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무대생활만 한 것이 아니고, <형님먼저 아우먼저>, <출세작전>, <요절복통 007>, <아리송해>, <형사 배삼룡>, 등 희극영화에도 출연 하여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에 등장한 신군부(新軍部)의 “희극은 수준이 낮은 것이다” 라는 말을 듣게 되어 배삼룡은 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 음료사업을 시작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미국으로 가서 얼마 동안 살다가 귀국했다.
1960 ~ 1970년대 서민들의 <삶의 애환(哀歡)>을 웃음으로 달래주었고, 그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오게 했던 배삼룡을 가르켜 말할 때, <비실이 배삼룡>이라고 하거나 <바보 배삼룡>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배삼룡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했던 배삼룡은 여러 해 동안 병석에서 투병생활(鬪病生活)을 하다 가 2010년 2월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항년 84세를 일기(一期)로 이 세상을 떠났다. 한편, 서민들에게 큰 웃음을 남기고 간 희극배우 배삼룡은 2003년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문화훈장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짜와 가짜>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가짜 콧수염>을 달고 <가짜 행동> 등으로 사람들을 웃긴 찰리 채플린과 <비실이>와 <바보>가 대명사(代名詞)처럼 되어버린 배삼룡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채플린이 콧수염 등으로 가장(假裝)을 했던 것처럼, 배삼룡의 바보짓도 그가 진짜 바보였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박사와 장군>이라는 이야기를 적으면서 “지금은 가짜 박사도 있는 세상이다.”라는 말을 적었는데, 오늘날엔 <가짜>가 <진짜>를 뺨칠 정도로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8.15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짜>라는 말과 <가짜>라는 말도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 중에 하나다.”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적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슨 가짜가 있다는 말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6.25전쟁 때, 전선(戰線)을 누비며 적군(敵軍)과 싸우다 전장(戰場)의 이슬로 사라져 목숨을 잃게 된 젊은이들도 있고, 나처럼 사지(四肢)가 멀쩡하던 사람이 적탄(敵彈)을 맞고 정상적(正常的)인 몸을 가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생겼다. 달리 말하자면, <전사자(戰死者)>들도 많았고, <상이군인(傷痍軍人)> 이라고 불리게 된 사람들도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전상자>들을 <상이군인>이라고도 하는데, <가짜 상이군인> 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가짜 상이군인 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음과 같은 말도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가짜 목사, 가짜 박사, 가짜 의사, 가짜 형사, 가짜 기자, 가짜 학력. 가짜 문서, 가짜 화폐, 가짜 이력서, 가짜 자동차 번호판, 가짜 양주(洋酒), 가짜 한우(韓牛), 가짜 고추가루, 가짜 콩나물, 가짜 참기름, 등등 …
서울 남대문시장에 있는 어느 참기름가게 앞에 다음과 같은 말이 적힌 간판이 붙어 있다고 한다. “정말 순 진짜 참 기름만 팝니다.”
<깨>는 <참깨>도 있고 <들깨>도 있다. 그러므로 참깨로 짠 기름은 참기름이고, 들깨로 짠 기름은 들기름이다.
한데 어찌 된 것인지, <참기름>이라는 말 자체(自體)에 <참>이 들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이 부족하여 수식어(修飾語)를 더 붙인 것일까? 같은 내용의 수식어를 세(3)개씩이나 덧붙인 것이다. 얼마나 <가짜>가 많으면, 그런 간판도 생겼을까? ‘가짜가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말이다.
<거의 같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비슷하다>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XXX와 비슷한 사람, 또는 이것과 저것은 모양이 비슷하다. 하지만, 엄밀(嚴密)하게 따져보면, <거의 같다>는 것이나 <비슷하다> 라는 말은 <조금도 틀림이 없이 같은 것이다>라는 뜻은 아니다.
<거의 같다>라는 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이 같은 것>과는 그 말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한말(舊韓末)의 정치가이며 독립운동가인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 님의 일화(逸話) 하나를 이 글에 옮겨 적는다. 그는 어느 강연장에서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 제삿날이 다가와서 제사에 쓸 제물을 사러 장엘 가려고 하는데, 마침 그의 친구 한 사람이 자기도 장엘 간다 고 하기에, 그 친구에게 제물로 쓸 물건을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그 친구는 무엇을 사오면 되겠느냐고 부탁한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고기 같은 것 한 근과 사과 같은 것과 배 같은 것 몇 개씩 하고, 북어 같은 것도 좀 사고 ……… ” 그런데 그 때 묵묵히 강연을 듣고 있던 청중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며 크게 웃었다.
바로 그때, 이상재님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서 청중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무엇이 그렇게 우습단 말입니까? 사과면 사과, 배면 배지 거기에 웬 <같은>이라는 말이 붙느냐? 정말 우스운 사람도 다 보겠군. 그래서 웃어댄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절대로 웃을 일이 아닙니다. 우리 다같이 한 번 생각해봅시다. 각자 나는 지금까지 과연 안팍이 모두 진실된 사람이었나, 아니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았나 한 번 살펴 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결코 사람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답게 살도록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고개를 숙였고, 그 강연장의 분위 기는 어느새 조용하고 숙연해졌다고 한다.
월남 이상재님이 청중들에게 던진 그 말씀은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주는 경구(警句)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