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대하여

어제밤 이후 제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제가 그 생각을 무어라 불러야는지 딱히 이름지어 부를 수가 없었답니다. 제 머리속과 가슴을 꽉채운 어떤 생각이 있기는 한데 “그건 바로 이거다”라고 이름지어 말할 수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월요일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 ‘어떤 생각’이 그냥 느낌으로만 뱅뱅 돌 뿐이지, 생각이 영글어 표현에 이르는 지경에는 닿지 못했답니다.

그러다 하루가 지난 이 밤, 옛 선생님의 가르침 하나 문득 떠올리면서 그 생각을 무어라 이름 지어야 하는지를 찾아내었답니다. 바로 “아름다움”이랍니다.

저는 어제밤 <접속 – 세월호가족과 재외동포 온라인 만남>이라는 온라인 화상 모임에 함께 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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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임에는 한국에 계신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비롯하여 미국, 캐나다, 독일 등지의 19개 도시에서 참가하신 약 백여명에 가까운 동포들이 함께 했답니다.

비록 컴퓨터나 휴대폰 화상을 통해 얼굴을 맞댄 것이지만, 마치 실제 한 공간에서 만나고 느끼는 것 같은 시간을 함께 했답니다.

어제밤, 거의 두시간을 넘긴 만남속에서 함께했던 이들은 마치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이어진 모습으로 하나가 되었었답니다.

그 순간들의 느낌들을 하나로 엮는 생각이란  바로 “아름다움”이었답니다.

사실 어제밤 함께했던 이들이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은 아픔이었답니다.

그리고 어제밤 모임은 그 아픔이 ‘너’만의 것이 아닌 ‘나’와 ‘우리’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던 동시에 그 아픔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저들을” 향하여  “끝내 너희들도 우리가 되리라”고 함께 외쳐보자고 만든 자리였답니다.

그렇게 아파하는 자들의 모임이었지만 모임에 참석했던 우리 모두는 웃음을 잃을 수 없답니다.

바로 어제밤, 아파하는 우리들이 함께했던 그 웃음에 대한 생각을 “아름다움이다”라고 말씀하신 이는 함석헌선생님이시랍니다.

<그러나 정말 아름다움은 어디 있는지 아느냐? 도리어 강한 대조에 있지 않느냐? 푸른 잎에 붉은 꽃, 시커먼 구름에 반짝이는 샛별 모양으로. 감격을 하지. 비극이 무엇이냐? 극단의 대조 아니냐?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을 맞대놓음으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비극이다.우리 마음은 하나됨을 얻는 때에 가장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하나될 수 없는 것을 맞대놓고 거기서 하나됨을 찾으려 하는 때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바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세월호에 맺힌 한이 이미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한 “잊혀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아름다운 일들을 이어가는 새로운 걸음들을 이어갈 것입니다.

5.16 쿠데타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16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5.16 쿠데타

한국 현대사에서‘<4.19혁명>은 이승만 박사를 연상(聯想)할 수 있는 말이고, <5.16 쿠데타>의 주인공은 박정희 장군이다.’라는 것이   초등학교 학생용으로 만든 국어사전에도 실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 이야기의 제목으로 정한 내용을 엮어 나가기 위해, 우선 그런 설명부터 이 글에 옮겨 적고, 5.16 쿠데타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펼쳐보기로 한다.

<사일구(4.19) 혁명(四一九革命)>

1960년 4월, 12년 동안에 걸친 이승만 정권의 독재 정치와 3.15 정.부통령 선거의 부정에 항거하여 학생과 시민이 들고일어난 일.

<오일륙(5.16) 군사정변(五一六軍事政變)>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소장을 비롯한 청년 장교들이 장면 내각을 뒤업고 정권을 장악한 일.

                  (초등학생 학습 국어사전 (주) 교학사, 1999. 7. 10)

위에 적은 것처럼 <5.16 군사정변>이라고도 하고, <5.16 군사혁명 (軍事革命)>이라고도 하는 <5.16 쿠데타>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朴正熙) 소장을 중심으로 일단의 청년 장교들이, 4.19의거 이후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인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일으킨 군사혁명 이다.

이로써 민주당의 장면(張勉)정권이 무너지고 군사혁명정부가 생겼는데,    2년 동안 그들의 군정(軍政)이 실시되었던 것이다.

5.16군사쿠데타01

다시 설명하자면, <장면 내각(張勉內閣)> 또는 <장면(張勉)정권>이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다음부터 박정희의 군정이 생길 때까지  그 중간에 있었던 정권이다.

이야기를 잇기 전에 World Book, Inc에서 펴낸The World Book Encyclopedia의 1988 판에 실린 박정희에 대한 기록을 소개한다.

Park Chung Hee (1917-1979) served as president of South Korea from 1963 to 1979.

He had taken power as head of the nation in 1961 after leading a military revolt against the civilian government.

In 1979, Park was assassinated by the head of the country’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Park, controversial leader, helped establish many new industries in South Korea and the country’s economy grew rapidly under his rule.

On the other hand, Park’s government greatly restricted individual rights.

For example, the government made illegal to criticize the president or the constitution, which gave the president almost unlimited power.

Park had many people imprisoned for criticizing his policies.

He declared that harsh rule was needed to guard against attack by North Korea.

Park was born in Sonsan-gun, a country in North Kyongsang Province.

In the early 1940’s he attended military academies and served in the Japanese Army.   (중간 생략)

Park became a Korean Army captain in 1946 and a general in 1953.

After leading the 1961 military revolt, he headed the military government for two years.

In 1963, Park resigned from the army and was elected president by the voters to head a new civilian government.

He was reelected by the voters in 1967 and 1971.

In 1972 and 1978, Park was reelected college made up of persons loyal to him.

위와 같이, 백과사전에 실린 박정희 대통렁이 남긴 행적(行蹟) 중엔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Park’s government greatly restricted individual rights.

For example, the government made illegal to criticize the    president or the constitution, which gave the president almost unlimited power.

Park had many people imprisoned for criticizing his policies.

위에 옮겨적은 설명만으로도, <5.16 쿠데타>의 주인공인 박정희 장군의 인간성(人間性)이 어떠하다라는 것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출세(出世)에 대한 욕망(欲望)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는 보기드문 변신(變身)의 달인(達人)이라는 것이 세간(世間)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혁명공약(革命公約)>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한데, 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변질(變質)되어 버렸다.

예를 들면 공약 3번 중, <이 나라 사회(社會)의 모든 부패(腐敗)와 구악(舊惡)을 일소(一掃)하고>라는 말이 있는데, 구악(舊惡) 대신 <신악(新惡)>이 생겼고, 그 신악의 위세(威勢)는 구악을 뺨칠 정도였다.

그런 것 뿐만 아니었다.

공약 6번은 어떠했나?

<……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 >이라는 공약(公約)을 약속대로 실행(實行)했던가?

박정희 소장과 육군사관학교 8기생인 김종필(金鍾泌) 중령 등이 주도 (主導)한 쿠데타 세력은 그들과 합세한 일단(一團)의 병력과 함께 1961년 5월 16일 새벽에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군사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혁명공약을 발표했다.

5.16 쿠데타의 주역(主役)인 박정희 장군 …… 이미 앞에 적었듯이 그는 <출세(出世)에 대한 욕망(欲望)이 남달랐고, 변신(變身)의  달인(達人)이라는 것이 세간(世間)에 알려진 사람이다.

  •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때,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였던 박정희는 교사직을 사임하고, 일본의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滿洲國) 신경군관학교 (新京軍官學校)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다.
  • 일본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것을 맹세했고, 창씨개명할 때 100 퍼센트 일본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꾸기까지 했던 박정희 —   그는8.15 해방을 맞아 광복군(光復軍)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귀국한다.

그는 귀국한 다음, 대한민국을 위해 남긴 그의 업적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는 자신의 욕망(欲望)을 위해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고, 결국은 한 나라의 독재자가 되었던 것이다.

박정희가 주도(主導)하는 제4공화국 헌법을 <유신헌법(維新憲法)>이 라고도 한다.   한데, 그 법에는 긴급조치(緊急措置)라는 것이 있다.

긴급조치(緊急措置)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과 같은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하듯이, 둘러대기에 따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긴급조치>라는 것은 그 당시 박정희가 장기집권(長期執權)의 꿈을 꾸면서, 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만들어낸 수단과 방법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말로(人生末路)를 재촉하는 법이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말도 있고,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도 있는데, 박정희 —–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World Book, Inc에서 펴낸 1988 Edition The World Book Encyclopedia 에 실린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설명을 생각해본다.

In 1979, Park was assassinated by the head of the country’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이 설명문에 나온 ‘the head of the country’s Central Intelligence Agency.’의‘the head’라는 표현은 당시 중앙정보부 김재규(金載圭) 부장을 가리킨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엮으면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등, 저명(著名)한 인사 (人士)들의 이름도 적었다.   한데 그들 중 이승만 박사만 빼고, 그 밖에는 모두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에 적고 있는 <김재규(金載圭)>라는 그 이름은 내 마음 속에 늘 있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박정희가 <혁명공약>을 어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세 번이나 집권기한(執權期限)을 연장(延長)했고, 유신헌법이라는 것으로 집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한데, 박정희 대통령이 휘두르는 그 엄청난 권력을 김재규가 막아낸 것이다.

김재규 …… 그가 어떠한 의도(意圖)로 (예를 들면, 정권 탈취 등) 박정희를 죽였든 간에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사건이 생긴 다음, 박정희 독재가 무너졌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역사(歷史)에 가정(假定)은 있을 수 없다.   이미 이루어진 것은 되돌릴 수 없거나 되돌리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엮기 위해 한 가지 적는다. 박정희도 갔고, 김재규도 갔다.   한데,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安家) 술판에서 벌어진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런 글을 쓰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쏜 김재규 장군도 1926년생이다.  5.16 주체(主體)의 한 사람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1926년생인데, 그의 구순(九旬,90세)에 관한 글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참고 : 위에 적은 <90세>란 한국의 전통적인 계산법에 따른 것임)

1926년생인 그들은 모두 내 나이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나서 적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