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기도회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17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조찬기도회

교회용어사전 (Glossary of Christianity, 서울,생명의말씀사,2013)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예배 및 예식’이라는 제목이 있고, 그 제목 안에 국가조찬기도회 <國家朝餐祈禱會, National prayer breakfast>라는 항목이 있다.

우선 조찬(朝餐)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본다. ‘조찬(朝餐)’, ‘조반(朝飯)’, ‘아침 밥’  또는 그냥‘아침’이라고 하는 이런 말들은 모두 같은 내용의 말이다.

한데, 내 경험이나 생각으로는 ‘조찬(朝餐)’보다 ‘조반(朝飯)’이 낫고, ‘조반(朝飯)’보다 ‘아침 밥’이나 그냥 ‘아침’이라고 하는 말이 훨씬 실감 (實感)나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아침, 점심, 저녁 …… 이렇게 끼니 때마다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환경(環境)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해보는 말인데,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에 하나 였던 때가 있었다. 배고픔을 참으면서 지낸 것이 무슨 자랑거리일 수도 없고, 굶주림을 겪은 것이 내놓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겪었던 사실이니 적어보는 말이다.

일제 때,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6.25 전쟁 때에도 먹는 것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채 남북을 막고 있는 철조망은 6.25 전쟁 때문에 생긴 것인데, 그 전쟁 때 반찬 없는 주먹밥을 먹으며 전쟁터를 누비던 때가 있었다. 그러한 전장(戰場)에서 목숨을 잃었거나 전상자(戰傷者)가 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혹자(或者)는 말하기를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라고 하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다 지나갔고 케케묵은 6.25 때 이야기를 궁상(窮狀)맞게 꺼집어내어 들먹일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간에, <國家朝餐祈禱會, National prayer breakfast>에 나온 ‘breakfast’라는 말은 break와 fast의 합성어(合成語)다.

  • Break(깨뜨리다) + fast(음식을 먹지 않음) = breakfast

곧 “밤 사이에 먹지 않은 것을(단식한 것을) 깨고, 음식을 먹는다.”라는 뜻이다.

  • 24시간을 3등분한 여덟(8)시간 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저녁밥을 먹은 시간과 아침밥을 먹는 시간과의 간격(間隔, 시간적인 동안)이 아침에서 점심까지,  또는 점심에서 저녁까지보다 더 길기 때문에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설명이 있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국가조찬기도회’에 관한 것을 적으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국가(國家)가 무엇인가?

국가는 일정(一定)한 영토(領土)를 가지며, 거기에 거주(居住)하는   다수인(多數人)으로써 구성(構成)되어 하나의 통치조직을 갖는 단체, 즉 나라다.

따라서 ‘국가는 통치권(統治權), 영토(領土), 국민(國民)의 3 요소로써 성립된다.’라는 것이 국어사전의 해설이다.

이쯤에서 ‘국가조찬기도회’에 관한 몇가지 이야기를 골라서 간략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cats‘국가조찬기도회’는 1966년 3월 8일 옛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회 대통령조찬기도회’가 모태(母胎)이며, 1976년 제8회 때부터 국가조찬기도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2003년부터 사단법인으로 되었는데, 그 이름부터가 아주 거창(巨創)하다.

“(사)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KOREA NATIONAL PLAYER BREAKFAST”

그 기도회는 국민화합(國民和合)과 경제활성화(經濟活性化) 또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하여 기독교단체에서 해마다 주최 하는 아침기도회다. 그 기도회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계의 요인(要人)들과 한국 개신교의 저명한 성직자(聖職者)들이 함께 기도도 하고 아침밥도 먹는 행사다.

위에 적은 것만으로는 그 모임에 관한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신정권(維新政權) 이후 본격적으로 정교유착(政敎癒着)을 하게 된 것이 바로 1966년부터 시작된 국가조찬기도회다.>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그러한 정교유착(政敎癒着)은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유신정권을 지원하는 형태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5.16 쿠데타로 시작된 박정희 정권(政權)을 찬양(讚揚)하는 내용이고, 그러한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형태였다.>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정치계와 경제계가 서로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되는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정치인과 종교인들 중 에도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정교유착(政敎癒着’이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정교유착을 하는 인사(人士)들은 기독교 성직자로서의 본분(本分)을 망각(忘却)했거나 아니면 저버린 사람들이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기독교(개신교)의 경우, 성직자(聖職者)란 ‘종교교단(宗敎敎團) 내에서의 예배<제례(祭禮)의 집행>, 신도(信徒)의 교육, 교단의 운영 등을 지도 또는 담당하는 직업의 사람이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인데, 그렇다 면, 위 해석에서 말하고 있는 <종교교단>이란 무엇인가?

  • 종교(宗敎)란 무한절대(無限絶對)의 초인간적(超人間的)인 신(神)을 숭배(崇拜)하고, 신성(神聖)하게 여겨 선악(善惡)을 권계(勸戒)하고 행복(幸福)을 얻고자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 교단(敎團)은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종교상(宗敎上)의 신앙(信仰)과 제례의식(祭禮儀式)을 같이하는 동질적(同質的)인 사회집단(社會集團)이다.

한데 오늘날엔 개신교 성직자들 중, 자신의 본분을 저버리고 사는 사람 들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있다.    내면적(內面的)인 것뿐만 아니고, 외형(外形)에도 그런 면(面)이 있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60 ~ 70년대의 물량주의(物量主義)와 권력지향풍조 (權力指向風潮)로 사회적 규범이 깨어지고, 가치관의 붕괴로 인한 혼돈 상태도 드러나고 있다.>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초대형교회>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아주 큰 교회> 라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의 수가 1만명 이상 되는 교회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국가조찬기도회에 관한 이야기를 적다 보니, 초대형교회라는 말이 나왔다.

대통령조찬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기도회가 오늘날엔 사단법인 대한민국조찬기도회 (KOREA NATIONAL PLAYER BREAKFAST)로 되어 있고, 그 조직규모가 거창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20조 제2항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는 조문(條文)이 있는데, 그것이 논란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     정교유착(政敎癒着)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서 이번 이야기를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