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13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서예(書藝)- 1
광화문 현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붓글씨 이야기가 나왔는데, 글씨 쓰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을 대개 ‘서예학원’이라고도 한다.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이면‘영어학원’이고, 음악을 가르치는 학원이면‘음악학원’이라고 하는데, 붓글씨를 가르치는 대부분의 학원들을 서예학원(書藝學院)이라고 한다.
붓글씨와 서예의 다른 점을 적어보려고 해본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붓글씨>와 <서예>는 그 개념(槪念)부터가 다른 것이다. 붓글씨와 서예라는 말의 뜻이나 글씨를 쓰는 방법, 즉 필법 (筆法)에 관한 것 등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서예(書藝)는 붓글씨를 맵시 있게 쓰는 예술(藝術)이고, 붓글씨는 붓으로 먹을 찍어 그냥 쓴 글씨다.
이쯤에서 <붓글씨>와 <서예>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붓글씨와 서예의 공통점은 그것에 쓰여지는 종이, 붓, 벼루, 먹 등이 서로 같음으로 붓글씨와 서예는 같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붓글씨는 ‘붓으로 쓴 글씨’라는 것에 반(反)하여, 서예는 ‘書藝’라는 글자가 말해주듯이 ‘글씨를 붓으로 쓰는 예술’이다. 달리 설명하자면, 서예는 ‘예술성(藝術性)이 담겨있는 글씨다.’라는 것이다.
각설하고, 6.25전쟁이 휴전된 다음부터, 특히 서울지역에서 번창하게 된 것 중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학원(學院)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엔 여러 가지 외국어를 비롯해, 음악, 미술, 컴퓨터, 웅변, 연예, 자동차운전 등 400여 종의 학원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6.25전쟁 직후에는 사정이 달랐다. 오늘날 학원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은 아니었다라는 말이다. 그러했었는데, 오늘날의 실정(實情)은 어떠한가?
예를 들어본다. 서예학원에 경우, 임시수도(首都)였던 부산에서의 피난살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고, 사람들의 생활형편이 점점 나아짐에 따라 문화생활의 질(質)을 높혀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수는 날이 지날 수록 늘어났다. 다른 말로 하자면, 외형적인 것을 사람들에게 돋보이게 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극단적(極端的)인 예를 들어본다.
‘강남부자(江南富者)’라는 말도 있고, ‘벼락부자’라고도 하는 졸부 (猝富)들도 생기게 되었는데, 그러한 사람들 중엔 집안에 무슨 전집(全集)이니, 총서(叢書)니, 대전(大全)이니, 또는 여러 가지 전문사전(事典)들로 채원진 고급 책장(冊欌)을 갖추어 놓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다라는 이야기다.
너무 과장(誇張)된 표현인가? 당시의 사회상(社會相)의 한 부분을 누가 비꼬아서 지어낸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붓글씨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원래 붓글씨의 주요 목적은 실용이다. 필기(筆記)가 목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서예는 실용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이 감상(感賞)할 수 있고, 심미가치(審美價値)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붓글씨와 서예를 구분(區分)할 수 있는 것은 예술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폭을 조금 넓혀보기로 한다.
6.25전쟁이 멈춘 다음, 부산이나 그 밖에 남쪽 땅 어디에선가 피난살이를 하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 사람도 있었고, 환도(還都)와 함께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도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다가 서울로 돌아갔다.
신촌에서 ‘신촌인쇄소’라는 간판을 걸고 도장포를 겸한 인쇄소를 운영하며 살게 되었는데, 나는 신문에 실린 서예전시회(展示會)광고를 보면, 거의 그러한 전시회장에 가서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한편, 1970년대 초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서예잡지 ‘書藝’와 ‘書通’이 나왔다. ‘書藝’는 서예가인 월정 정주상(月汀 鄭周相) 선생이 발간한 것이고, ‘書通’은 서예가인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선생이 발간한 것이다.
나는 1970년대 중엽에 대한민국의 서예연구단체인 동방연서회 (東方硏書會)의 김응현(金膺顯) 선생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는데, 내가 모아놓은 ‘書藝’와 ‘書通’ 그리고 동방연서회에서 쓰던 교본(敎本)인 ‘東方書藝講座’와 서예전시회장에 갈 때마다 모아둔 전시작품에 관한
설명서와 그밖에 서예에 관한 책 등을 미국으로 이주할 때 가지고 왔다.
미국에서 살려면 영어도 필요하겠지만, 한국에 관한 것 몇가지 정도는 한국을 잘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했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책들을 활용(活用)하고 있다.
미국생활을 한지 10년 쯤 지난 어느날 동내 도서관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붓으로 ‘大道無門’을 쓰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책 이름은‘KOREA’다.
한데, 그 사진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東亞日報 [1993.7.12.]에 실린 것을 이 글에 옮겨적는다.
<金대통령은 조찬후 자개농과 문방사우등이 있는 방으로 옮겨 클린턴대통령에게 ‘大道無門’ 휘호를 써주었으며 클린턴대통령 은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서예장면을 세심히 관찰. 金대통령은 “이 뜻은 어려운 일이 있을때 정정당당하게 자세를 취하면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다는 것”이라고 휘호의 의미를 설명해주자 클린턴대통령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두고 그 뜻을 생각하겠다”고 사의를 표명.>
위에 적은 것과 같은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이 글을 엮으면서 필요한 것을 대조(對照)해보기 위해 이것저것 인터넷 검색을 해보던 중,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는 것을 보았다. President Bill Clinton Watching South Korean President Kim Young-sam prepare a Calligraphy Scroll. The scroll was later presented to President Clinton, at Blue House in Seoul, South Korea. 7/11/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