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따금 읊조리며 좋아하는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의 관점(觀點Point Of View)이라는 시입니다.
추수감사절 만찬은 슬프고 고맙지 않다 /성탄절 만찬은 어둡고 슬프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칠면조의 관점으로 만찬 식탁을 바라본다면.
주일만찬은 즐겁지 않다 /부활절축제도 재수 없을 뿐 /닭과 오리의 관점으로 / 그걸 바라 본다면.
한때 나는 참치 샐러드를 얼마나 좋아했었던지 /돼지고기 가재요리, 양갈비도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식탁의 관점에서 /식탁을 바라보기전까지는.
Thanksgiving dinner’s sad and thankless/ Christmas dinner’s dark and blue/ When you stop and try to see it/ From the turkey’s point of view.
Sunday dinner isn’t sunny/ Easter feasts are just bad luck/ When you see it from the viewpoint/ Of a chicken or a duck.
Oh how I once loved tuna salad/ Pork and lobsters, lamb chops too/ ‘Til I stopped and looked at dinner/ From the dinner’s point of view.
똑같은 사건이나 현상을 바라보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음을 표현한 내용입니다. 칠면조 곧 머리 나쁜 경우를 빗대어 말하는 닭과 같은 목에 속하는 조류입니다. 이런 칠면조가 아닌 사람들의 관점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사관(史觀view of history )이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이 관점 역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유심사관(唯心史觀)이나 유물사관(唯物史觀), 식민사관(植民史觀)이나 민족사관(民族史觀), 민중사관(民衆史觀)이나 영웅사관(英雄史觀) 등등은 모두 같은 역사를 보는 다른 관점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들입니다.
사람살이가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들이 있을 수 있고, 그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서로 부딪혀 싸우곤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릇 역사란 그 다른 생각들끼리 다투고 충돌하면서 살아온 사람살이의 이야기인 셈이지요.
그 이야기들을 어떤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기록하여 다음세대들에게 가르쳐 넘겨 줄 것인가 하는 문제 이른바 교육, 바로 역사교육입니다. 다음세대들을 위한 역사교육을 위한 도구 가운데 하나가 역사교과서인데 이즈음 그 교과서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혹시 이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가운데 초중고 또는 대학시절 공부했던 한국사 교재 말고(물론 다 잊어버린 것들이겠지만) 어떤 종류의 한국사책이라도 최근에 읽어 본 책들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또한 최근 뉴스화 되고 있는 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내용들을 접하고 있는 매체들 곧 신문이나 방송 나아가 SNS까지 어떤 성향의 매체들을 통해 이에 관한 소식들을 받아드리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른바 친일이니 종북이니 누군가에 의해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 각자 서로 다를 수도 있는 생각들을 굳히게 된 요인들을 찾아내 보자는 말입니다.
자! 이쯤 제 머리속에 굳은 생각들을 만들어낸 요인들을 먼저 밝혀봅니다. 이른바 제 나름의 사관(史觀)이요, 국사교과서 논쟁을 바라보는 생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여년 전인 1887년 일본의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은 사학과를 개설하고 조선사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하기 위한 사전 포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때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한반도 침략후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해 《조선사(朝鮮史)》,《조선사료집진(朝鮮史料集眞)》,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등 역사서를 편찬 발간합니다. 이른바 식민사관의 역사서들입니다.
대단히 애석하게도 이런 역사인식은 경성제국대학으로 이어졌고 해방 이후 남쪽 역사 교육의 큰 줄기를 이루게됩니다.
해방 이후의 긴 이야기는 접습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런 식민사관과는 다른 역사관이 있다는 소리들이 학계 또는 이 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게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제 정신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당연히 있어 마땅한 다른 소리들이 나타났던 시기입니다.
그런 소리들을 모아 펴낸 제법 방대한 결과물 중에 하나가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일련의 저작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라는 관점이 잘못되었다며 세상에 나온 책이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입니다. 2006년도 일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필자 가운데 몇 분들에게서 교육을 받았고, 또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필자 한 분과는 같은 학교에서 함께 교육을 받았고 함께 행동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모두를 존경하고 서로 다른 생각들 역시 존중한답니다. 물론 제가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지만 말입니다.
사관은 다를수 있고, 다른 것이 존중 받는 동시에 서로 다툴 수 있어야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회입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가운데 그래도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는 까닭은 아직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민주주의와 인민이 없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엔 그래도 아직은 민이 살아있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입니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곧 단일한 사관을 만들어 다음세대를 교육(세뇌)하려는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에서 자꾸 북을 쫓아가려는 종북분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안타까움으로 몇 자 적어보는 것인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오늘의 모습은 130여년 전과 70여년 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랍니다.
너무나도 제 잘난 무지 탓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