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단상(斷想) 4 – 변하는 사회상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10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광복 70년을 뒤돌아보니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변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세상은 달라졌다. 크게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 … 국토(國土)와 민족의 분단(分斷) 이라는 소용돌이와, 작게는 일반 서민들의 살림살이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과 세태(世態)도 많이 변했다.

8.15해방의 감격도 채 가시기 전에, 뜻밖에 몰아쳐온 국토분단의 비극, 그런 것에 더하여 동족(同族)끼리 서로 가슴에 총뿌리를 겨눠야 했던 6.25동란(動亂)의 대혼란기를 격었다. 그 뿐만 아니고, 4.19 혁명과 5.16쿠데타 등 정국의 큰 분기점을 이어오는 동안 사람의 마음과 세태가 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해방과 더불어 밀물처럼 쏟아져들어온 서구문명(西歐文明) 과 사상(思想)은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생활풍습 등에 큰 변화를 일으켰 고, 예로부터 전해져온 한민족(韓民族)의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의 가치관 등을 뒤바꾸어 놓았다.

서구문명(西歐文明)과 사상(思想)을 잘못 인식하여 맹목적으로 모방 하고 오도(誤導)한 나머지 방종에 가까운 자유주의사상(自由主義思想) 이 만연되 나가고 있었다. 특히 전란(戰亂)의 소용돌이와 끝없이 계속 되는 정국(政局)의 심한 변화를 겪어오는 동안 소박하기 그지없던 민심(民心)과 세태(世態)가 각박하고 메말라졌다.

광복70년 — 이제 구세대(舊世代)들은 반성의 기회로, 신세대(新世代) 들은 지난 과거를 거울삼아 새로운 지표(指標)와 <삶>의 가치관(價値觀) 를 설정해야 할 시기를 맞은 것 같다.

8.15해방 후 그 땅에서 있었던 사회풍조(社會風潮)의 단면(斷面)들을 간추려 이야기 해 보기로 한다.

그러한 시대를 겪지못한 사람들에게는 공상과학소설인 TIME MACHINE에 나오는 것과 같은‘과거와 미래의 시간 여행을 한다는 공상적 기계를   타보는 것이다.’라고 하면 될 것이다.

첫째로 미군들이 그 땅에 들어온 다음, 양(洋)자가 붙은 말이 꽤 쓰이게 되었다.

8.15 당시에는 신문이나 잡지 등 인쇄물에 쓰인 글짜가 오늘날 쓰이고 있는 그러한 것과는 달랐다.  가장 큰 차이라면  그 당시에는 <한자(漢字)가 많이 섞여 있었다.>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글 전용 정책으로 한자 교육을 받지 아니하고 자란 세대들 에게는 별도(別途)로 한자를 배우지 않는 한, 당시 인쇄물들을 읽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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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한자교육의 필요성(必要性)을 말하는 사람들 이 있지만, 지금 한국어 글에서는 별로 한자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대부분의 학술 서적에서도 한자 사용을 줄이고 있는 편이다.  그러하지만, 나는 이글에 한자를 드문드문 섞고 있다. 한자(漢字)를 배우지 않은 한글세대가 이 글을 다 읽는다면, 이 글을 통해서도 한자 몇가지 정도는 배울 수 있게 될 것                            경향신문 (1950년 6월 13일자)                           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야기의 본줄기로 돌아갈 것이니,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앞에 적은 것처럼, TIME MACHINE을 타고 그 시대를 한번 둘러보시라!

이제부터 [洋]자가 붙은 말 몇가지를 골라 이야기해 보기로한다.

양풍(洋風)이라는 말도 그 중에 하나인데, 여기서는 이야기 내용으로 보아 American style, 즉 ‘미국식’ 또는 ‘미국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불려왔던 그 땅에 8.15 이후 ‘미국바람’이 퍼지기 시작했다. 동방예의지국이란 ‘예의(禮儀)를 잘 지키는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한국을 가리켜 이르던 말이다. 원래 한국은 그러한 평(評)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나라였었다.

한데 그러던 땅에 왜풍(倭風)이 들어와서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다음, 그 자리에 양풍(洋風, 미국바람)이 들이닥쳤다. 물론 나라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東方禮儀之國과는 아주 거리(距離)가 먼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8.15와 함께 미군들이 그 땅에 들어온 때부터 시작하여, 6.25  라고 하는 난리를 겪는 동안, 그리고 <잘 살아보세>와 <하면 된다>라는 것들이 뭇 사람들을 <禮儀之國>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로 만들어 놓았다.”라고 하면 자나친 말이 될까?

이런 이야기를 적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6.25 때 이야기다. 부산에서 살 때, K-9 비행장 근처에 우동교회 (佑洞敎會)라는 피난민 교회가 있었다.  당시박선택 목사가 담임으로 있던 곳이다. 나는 원래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육국병원에 있을 때 같은 병실에서 지내던‘김주찬’이라는 친구를 알게 된 것이 동기가 되어 교회엘 다니게 되었다. 한데, 어느 주일예배(主日禮拜) 설교시간에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일제시대에는 다꾸앙 냄새나는 설교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요즘엔 버터 냄새나는 설교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

말속에 뼈가 있다. 그 말을 응용하여 나도 한마디 적는다.

“요즘은 돈냄새 풍기는 목회자(牧會者)도 있더라,”

내 말이 틀렸나?  교역자(敎役者)들 중엔 치부병(致富病)에 걸린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직접 설명하기엔 거북한 말이지만 이왕에 [洋]자가 붙은 말을 꺼냈으니  적는다.

첫째로 <갈보, 양갈보, 또는 양공주>라는 말이 있다. 한데, 그것은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여자를 속(俗)되게 이르는 말이다.

홍등가 (紅燈街, red light district)나 기지촌 (基地村, military campside town) 등에서 생계를 위해 웃음과 몸을 파는 여자를 지칭하는 천박(淺薄)한 그런 말을 조금이나마 순화하기 위해 창녀(娼女)라고도 하고 매춘부(賣春婦)라고도 하는데, 갈보이든, 창녀이든, 매춘부이든, 여자가 몸을 판다는 점이서는 조금도 다름이 없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직설적(直說的)이고 노골적(露骨的)인 표현 대신으로 쓰이는 말이 있다.

<직업여성(職業女性)>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인데, 오늘날에는  관공서나 무슨 회사 등에서‘일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는 뜻 말고, 주로 유흥업소 등에서 도덕적으로 용납(容納)할 수 없는 퇴폐적(頹廢的)인 일에 종사하는 여성을 완곡(婉曲)하게 이르는 말로도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이야기에 나온‘양(洋)이란 서양의, 서양식, 서양 것, 등의 뜻이 있는 말로서, 앞에 적은 양갈보나 양공주를 비롯해 양담배, 양주, 양춤, 양코배기등, 양(洋)자가 붙은 여러 가지 말이 쓰여졌다. 바꾸어 말하자면, 8.15 해방과 함께 그 땅에 불어온 것은 미군들과 함께 상륙한 이른바 서구바람인 양풍(洋風)이었다.

거리에는 앞에 설명한 소위 <양공주>들이 생겨났다. 종래(從來)에는 남녀유별(男女有別)이 있어 부부들도 함게 거리에 잘 나다니지 않던 사람들에게는 양공주(洋公主)들이 미군들과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대할 때 몹시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러나, <유행과 새바람>이란 민감한 것으로 어느새 그러한 것이 사람 들 눈에 익어 자연스럽게 보였고, 한국 젊은이들도 그러한 풍습에 젖어들어 건전(健全)하게 교제(交際)하는 연인(戀人)들 사이에서도 스스럼없이 그러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사교춤>이라는 댄스도 미군들과 더불어 그 땅에 상륙한 후, 댄스바람 이 번지고 있었다. 댄스의 열풍(熱風)은 이른바‘자유부인’들을 낳았고, 특히 전란(戰亂) 을 통한 식생활(食生活) 해결의 어려움과 함께 여성들 중엔 정조(情操)를 경시(輕視)하는 풍조(風潮)도 있었다.

나는 6.25전쟁 때 부산서 피난살이를 했고, 휴전(休戰) 후 서울로 되돌아가, 신촌에서 거의 30년을 살았다.

나는 신문에 실린 연재소설(連載小說)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중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  1954년에 발표된 자유부인 (自由夫人, 정비석[鄭飛石}작)이라는 소설이 바로 그 작품인데, 그것은 6.25전쟁 이후 일부 계층에 퍼진 서구(西歐) 풍조를 묘사한 소설로, 그 작품이 신문에 연재(連載)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波紋)을 불러일으켰고, 책으로 만들어진 그 작품은 1950년대에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알려져 있다.

download소설 ‘自由夫人’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문(波紋)을 일으켰고, 사회적 으로 큰 논란(論難)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 들의 비리(非理)를 파헤치고, 국가의 이익을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작가 가 치안국(治安局)에 소환되는 일화(逸話)를 갖고 있기도 한 소설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유당(自由黨)시절에만 그런 일이 있었겠는가? <춤바람>이나 정경유착(政經癒着)>은 그 후에도 흔하게 쓰인 말이다.

정경유착(政經癒着)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계(政治界)와 경제계(經濟界)가 서로 자신의 이익을 얻으 려고 서로 깊은 관계를 가져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던가?

일제통치 아래`폐쇄(閉鎖)된 사회에서 억압만 받아오던 한국인들은 그러한 자유화(自由化) 물결이 그저 좋아만 보여 무한정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정치적 사회적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다. 그런 속에서 암살(暗殺), 정치세력다툼, 공산주의자들의 테러, 폭력의 난무 등 해방초기의 정국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휴전직후 55년도엔 처녀 70여명을 농락한 세칭‘박인수(朴仁秀)사건’ 이라는 것이 있었고, 각 결혼식장에서는 피로연을 댄스파티로 대체하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6.25전쟁 때, 국운(國運)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빽>만 있으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뺵의 위력(威力)>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만큼 세상은 <빽>에 약했고 어수룩하기 그지없었다.

60년대를 돌아본다.

60년대 초부터 경제성장(經濟成長)이니, 국민소득증대(國民所得增大)니 하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고, 그러한 말과 함께 생활 수준이 차차 향상 되면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배금사상(拜金思想), 즉 돈이면 무엇이 든지 된다는 생각은 기업윤리(企業倫理)의 타락과 공무원들의 범죄 행위(犯罪行爲)와 탈세(脫稅)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사치성이나 도피성 이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조리(不條理)를 낳았다.

말하자면,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가 판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식(西歐式) 생활의 모방성향이 늘어남에 따라, <호화 아파트>, <자가용족>, <바캉스>라는 말도 쓰이게 되었고, 극단적 표련으로는 <도둑촌>과  <호화 주택촌(豪華住宅村)>이라는 유행어까지 쓰이게 되었다.

아무튼, 극단적인 빈부(貧富)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의식(葛藤意識)과 우열감 내지는 불신풍조(不信風潮) 등이 생긴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뭇여성을 돈으로 매수하여 향락한 박동명(朴東明) 사건은 배금사상에서 비롯된 부조리(不條理)의 단면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것뿐만 아니다. 최고, 제일, 일류, 고급, 그냥 고급은 신통치 않아 최고급이 아니면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 최고병(最高病)이나 일류병(一流病)에 걸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병은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전념되어, 일류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집을 뛰쳐나가 방황하거나, 나쁜 길로 빠져드는 아이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한 배금병 / 배금주의와 일류병은 심지어 한국 교회에도 감염되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일류병과 사치병(奢侈病)은 날이 지나갈수록 더욱 나라 안에 퍼지고 있었다.

로렉스 (ROLEX), 몽블랑(MONT BLANC), 나폴레옹 코냑(Napoleon Cognac),   조니 워커(Johnnie Walker), 샤넬 (CHANEL) 등이 아니면 거들떠보려고 도 하지 않는 졸부(猝富)들도 생겼다.

그러한 일류병과 사치병은 교육적으로는 일류학교(一流學校) 지향열 (指向熱)이 만연되어 자식들을 어떻게든지 출세시켜야겠다는 부모들의 과열과 허영으로 이른바 <치맛바람>이란 유행어와 함께 어릴적부터 벅찬 과외활동을 강요하는 풍조(風潮)까지 빚었다.

그런 것에 더하여, 범죄(犯罪)의 대형화 또는 조직화와 인질사건 (人質事件) 등 강력사건의 증가 등도 그러한 갖가지 부조리한 사회풍조(社會風潮)의 외형적 영향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되새겨보는 지난 70년 동안의 사회풍조, 그것은 한국의 내일을 위해  정비(整備)하고 고쳐야 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앞에 적었듯이, 60년대 들어서부터 <경제성장> <국민소득증대> 등의 기치와 함께 생활 수준이 차차 향상되면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배금사상(拜金思想), 돈이면 무엇이든지 된다는 생각은 기업윤리 (企業倫理)의 타락(墮落)을 비롯해, 공무원 범죄(公務員犯罪)와 탈세 (脫稅) 등, 사회적으로 여러 방면에 부조리(不條理)가 생겼다.

***영화 자유부인(1956년 작, 상영시간 2시간 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