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추석 – 이야기 셋(秋夕三題)

1.

이민생활에서 한국명절은 그저 추억일 뿐일 때가 많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대도시는 그래도 명절 기분을 좀 맛보는 곳들도 있겠습니다만, 딱히 작정하고 만나지 않으면 한인들과 맞부딛히고 살지 않는 시골에서는 ‘오늘이 추석?’하고 지나치기 십상이랍니다.

다행히 친,처가 노부모님들이 모두 가까이 사시는 덕에 한국 명절이면 인사는 드리고 산답니다. 더더군다나 오늘처럼 일요일이나 여기 휴일이 명절과 겹치는 날이면 당연히 가족들이 모여 밥상을 나누게 된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이런 저런 일들로 그저 ‘오늘이 추석이라네요.’라는 인사로 그냥 지나간답니다.

못내 송구스런 생각에 최근 수년래 제 취미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 요리에 나서보았답니다. 엊저녁에 손질해 둔 쇠갈비와 사골들로 갈비찜과 사골국을 만들어 보았답니다.

오후에 아버지 어머니와 장인 장모를 찾아 갈비찜과 사골국으로 우리 내외 재롱 잠시 떨다가 돌아왔지요.

제 아무리 백세 시대가 눈 앞이라 하여도 제가 이미 환갑을 지나고보니 부모님들을 뵙고 돌아오는 길,  ‘내년 추석도…’라는 기도는 제법 절실한 것이랍니다.

2.

지난 일년 사이에 만난 벗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알던 친구들도 있지만 지난 일년 사이에 새롭게 만난 벗들과 함께 새로움을 느낀답니다.

딱히 단체라고 이름 지을 수는 없지만 그저 우리끼리 ‘세월호를 잊지 않는 필라 사람들’, 약칭으로는 ‘필라 세사모’라고 부르는 모임에서 만난 이들입니다.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랍니다.

일테면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공명’하려고 애쓰는 이들의 모습 – 바로 제가 배우는 점들이랍니다.

지난 주간 전세계에 으뜸 뉴스들로 퍼진 것들 중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미 소식입니다. 교황의 방미 일정 가운데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세계 가정 대회’였습니다.

교황의 필라 방문 일정에 맞추어 오래 전부터 이들이 준비해 온 것이 있었답니다.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아파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베풀던 교황의 행렬을 되새기며, 2015년 오늘도 ‘여전히 아플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소리를 대변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백만에 가까운 인파들 속에서 ‘SEWOL’이라는 피켓을 든 채 열명도 안되는 ‘필라 세사모’ 회원들의 기도와 외침은 교황의 행렬 속에서 모기소리보다도 작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몸짓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쯤, 제 믿음이랍니다.

제게 배움을 주는 이들의 몸짓이 비록 교황에게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제가 믿는 신 곧  ‘들으시는 하나님’은 이미 들었다는 믿음이랍니다.

이 믿음이 가족을 잃고 두번 째 맞는 추석을 보내는 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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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일입니다. 예수쟁이이므로 성서를 펼쳐봅니다.

‘들으시는 하나님’을 웅변해 주는 성경책은 단연 창세기입니다. 히브리인들이 고백했던 신의 모습입니다.

창세기 16장과 21장에는 비주류였던 하갈의 소리를 듣는 야훼 하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부르든간에(유태, 이슬람, 카톨릭, 개신교)  하나님은 고난과 고통 가운데 외치는 모든 아픈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시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추석 – 우리들이 조상을 찾는 까닭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거기에 닿아 있는 것입니다.

*** 무릇 역사란  ‘그 들음에 대한 응답’이 기록되는 일일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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