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단상(斷想) 2 – 말(言語)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8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8.15 단상(斷想) 2 – 말(言語)

해방이 된 다음, 일본어가 그 땅에서 물러가고 대신 영어가 그 자리에 들어와서 미군정이 펼쳐지고 있는 동안 한국의 공용어(公用語)로 쓰였다.

말하자면, 일본이 강제로 한국에 퍼뜨려 놓은 일본어는 썰물처럼 그 땅에서 빠져나가고, 속된 말로 꼬부랑 말과 꼬부랑 글씨라고 하는 영어가 밀물처럼 밀려온 것인데, 코쟁이라고도 불리는 미군들이 말하는 것을 한두마디 알아듣고 그대로 비슷하게 흉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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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서울 동대문 – 어느 미군이 찍은 사진 1

지금은 신문이나 잡지에도, 뉴스 방송에도, 텔레비젼 연속방송극에도, 거리에 즐비한 상가(商街) 간판에도 영어가 쓰이고 있다.

<상가 간판에도 영어가 쓰이고 있다.>라고 한 것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한다.

미군정 시대가 지나가고 대한민국이 탄생되어 회갑(回甲)을 지냈건만 아직도 그 땅엔 외래어(外來語)의 어문일치(語文一致) 또는 언문일치 (言文一致)에 관하여 정리할 것이 꽤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외래어(外來語)란 말하자면 외국어가 국어 속에 들어와서 국어처럼 쓰이는 것인데, 특히, 한자어(漢字語)를 제외한 여러 외국의 말이 국어화(國語化)한 것으로서 <들온말>이라고도 한다.

그러한 <들온말>에 관하여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디지털카메라시대인 요즘엔 볼 수 없지만, 필름카메라시대에는 유원지 나 관광지 등에 있는 매점들 중엔 필름을 파는 곳도 있었다.

영어로 film인 그것을 위에 적은 것차럼‘필름’이라고도 하고,‘필림’ 이라고도 하며, 또는‘휠름’이라고도 한다.

이런 것도 있다.   Center에 관한 이야기다. Center는 축구나 농구 등의 경기(競技)에서 center line, centering 등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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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서울 동대문 – 어느 미군이 찍은 사진 2

한편, center는 무슨 상호(商號) 뒤에 흔히 붙이는 말이기도 한데 예를 들면 xx분식 센터, xx치킨 센터, xx스포츠 센터, xx심부름 센터 등이다.  그러한 center에서 온 말이 센타, 쎈타, 센터, 쎈터 등으로 쓰이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한데, 그러한 외래어도 한국에 토착되어 쓰이고 있다면, 그것도 일종의 국어다.

그러한만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을 위에 적은 센타, 쎈타, 센터, 쎈터 처럼 여러가지로 쓰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하여간, 오늘날엔 그 예를 낱낱이 다 열거할 수 없을만큼 영어가 판을 치는 세상으로 변했지만, 해방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군정시대 때 영어통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대개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때 해외유학을 했거나, 아니면 국내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라고 하면 될 것이다.

당시 그 정도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시절에 대지주 등 부유하게 살던 집안 출신으로서 해방 전엔 친일을 했고, 해방이 된 다음엔 친미 행위를 한 사람들이었다’라고 할 수 있다.

영어를 아는 한국인들이 모두 그러했다는 것은 아니고,“해방 당시나 또는 해방 후 얼마 동안은 오늘날처럼 영어를 아는 한국인들이 많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다.

어찌 되었건, 군정 당국은 점령지를 통치하는데 언어장벽(言語障壁) 이라는 걸림돌이 생겨서 영어를 아는 한국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고, <통역정치(通譯政治)>라는 것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은 영어가 한국의 공용어는 아니지만, “그 땅에서 흔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 영어다.”라고 할 수 있는데, 크게는 국가기관에서부터 작게는 일반 가정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생활 주변에 영어가 즐비하다.

물론 콩글리쉬(Konglish)를 포함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콩글리쉬(Konglish)라는 말이 나온 김에 ‘가라오케’이야기를 적는다.

1970년대 이후부터 쓰이고 있는 <가라오케>라는 말은 일본어와 영어의 합성어(合成語)이다.   <비어 있다>는 뜻의 일본어인 ‘가라 (空)’와 오케스트라(orchestra) 의 ‘오케 (orche)’를 합쳐서 만든 일종의 조어(造語)다.

말하자면, 사람이 연주하는 대신 기계가 합성하는 반주음에 맞춰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계나, 그 기계를 설치한 술집 등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러한 <가라오케>라는 말이 오늘날엔 영어사전에도 나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여간 태평양전쟁이 끝난 다음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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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서울  – 어느 미군이 찍은 사진 3

지금 내가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는 것은 가라오케의 뜻이나 콩글리쉬 에 관한 긴 설명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니고, 태평양전쟁 이후 조수 (潮水)처럼 한국에 밀려들어온 영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꺼내본 것이다.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국어라고 하던 땅에서 조선총독부 자리에 걸려 있던 일장기(日章旗)가 내려지고, 성조기(星條旗)가 올라갔다.

바꾸어 말하자면, 일본이 그 땅에 뿌려놓은 일본어 대신 영어가 들어 온 것인데, 그 당시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내 자신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적는다. 앞에서 이미 밝힌 것처럼, 나는 태평양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난 30년 세월을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

한데,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나에게 하나의 외국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나에게 하나의 외국이다.”라고 했는데, 가령  내가 한국 어느 국제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하려면, 나는 국적법(國籍法) 때문에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하거나 출국하게 된다.  내가 태어났고 자랐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 병역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적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이 나에게 외국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런 것 뿐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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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서울

지난 30년 동안 모국방문을 한 것이 모두 네 번인데(네 번째는 2004년) 다녀올 때마다 한 달을 넘긴 적이 없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지난 30년 동안에 내가 한국에서 먹고 자고 한 날 수를 합하면 100 일쯤 된다는 이야기다.

10년 전에 다녀온 것이 나의 마지막 모국방문이 될 지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지난 날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내 눈앞을 스쳐 지나 간다.

하여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요즘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속도가 전보다 더 빠르지 않은가?  그러하니, 2004년에 내가 직접 보았던 한국은 오늘날의 한국이 아니라 는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미합중국 시민이기 때문에 이렇게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고, 요즈음 고국(故國)에서 들려오는 각가지 소식들 중엔 나에게 너무나 생소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8.15 당시 이야기를 계속한다.